다시 눈이 내린다. 하루 종일 내렸다. 라디오를 들으니 북부 온타리오 전역이 온통 눈밭이다. 그냥 눈이면 좋겠는데 여러 곳은 비까지 섞인 '불량 눈'이다. 그만큼 도로 사정이 더 안 좋다는 이야기다.
Snow covered, icy, slushy 같은 단어가 난무한다.
그래도 애들은 눈이 오면 좋다. 펑펑 쏟아지는 눈속에서, 아이들은 마냥 뒹군다.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벌인다. 행복하다.
눈이 벌써 둑처럼 쌓였다.
토론토 집에 다녀온 주말 동안 와와에는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는 이상 기상이 있었고, 그 탓에 대부분의 눈이 꽝꽝 얼어붙었다. 내 차 앞유리를 코팅하듯 덮은 두터운 눈얼음 - 표면은 눈, 그러나 유리창과 접한 부분은 얼음 - 을 긁어내느라 애깨나 먹었다.
그 탓에 도로도 울퉁불퉁하다. 제설차가 지나다니고 있으니 쌓이는 눈이야 제대로 치워지지만 그 아래 얼음으로 덮인 도로 사정은 마찬가지인 탓이다.
영화에서, 산타클로스가 나올 때면 등장하던 북극, 혹은 북극일 것 같은 눈 마을 풍경. 지금 와와가 그렇다. 그 유명한 '눈둑'도 점점 더 높아지면서, '틀거지'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
멀다! | 2004년 12월 10일 오전 9:37
'내륙의 바다'(Inland Sea)라는 별명을 가진 슈피리어 호의 망망한 풍경. 17번 고속도로 옆으로 펼쳐진 슈피리어 호수의 이미지는 카리스마 그 자체다. 압도적이다.
모든 게 너무 멀고 크다. 어제 다녀온, 와와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수 세인트-마리도 230km, 오늘 다녀온 혼페인(Hornepayne)이라는 '쥐씨알만한' 동네도 200km가 넘었다. 와와의 관할 구역으로 돼 있는 숲 한 번 다녀오는 데도 하루를 꼬박 소모해야 한다. 그것도 차를 몰고 다니는 상황에서 하는 이야기다.
도로는 말끔했다. 좌우로, 또 언덕과 바위, 나무를 뒤덮은 눈의 양으로 보건대 꽤나 폭설이 내렸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도로는 깨끗했다.
아직도 서울 살 때 생각하고, 눈이 내렸다 싶으면 완전히 발이 묶였다고 지레 짐작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도로로 나가보면 놀라울 만큼 말끔하게 눈이 치워져 있다. 적어도 눈 치우는 데는 캐나다가 Best of the best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제 와와로 돌아오는 길에, 겨울이 되어 폐장한 슈피리어호 주립공원 안내소를 잠깐 들렀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호수 풍경이 지극히 아름답고 쓸쓸했다.
멀다, 라는 느낌이 더욱 절실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기분 | 2004년 12월 10일 오전 9:42
MNR 오피스 근처, 와와 초입에 있는 Young's General Store 지붕에 얹힌 사슴 세 마리다. 크리스마스 기분 물씬 풍기는 풍경. 볼 때마다 그 코믹함에 저절로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크리스마스. 그 의미가 캐나다인들에게 얼마나 크고 깊게 다가오는지, 나는 아직도 제대로 짐작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 연휴에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
토요일 - 심심한, 맑은 날씨 | 2004년 12월 12일 오전 5:35
골드 스트리트. 와와 호숫가로 난 길이다. 사진에 보이는 빨간 지붕 집은 그 거리의 1번지이다.
와와에서 이렇게 화창한 날씨를 만난 것도 처음인 듯싶다. 햇볕이 쨍하다. 그러나 막상 밖에 나와 서 보면 쨍~하는 것은 햇볕이 아니라 찌르는 듯한 추위다. 춥다. 영하 10도에 체감온도는 영하 16도란다. 햇볕이 별로 큰 도움이 못된다. 실내에서 창밖으로 밖을 내다본다면, 아마 조금은 더 그 맑은 날씨를 편안히 즐길 수 있겠지.
늦잠 뒤 와와 부근을 돌아보았다. 와와의 위성도시쯤에 해당하는 미션(Mission)과, 거기에 있는 샌디 비치(Sandy Beach), 슈피리어 호 전망대 등을 찾았다. 오가는 길 위의 눈이 치워지기는 했지만 얼음은 그대로여서 운전하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맥파이 하이 폭포(Magpie High Falls)를 보려던 계획은 치워지지 않은 눈 때문에 결국 다음으로 미뤘다. 하긴 관광 관련 비즈니스가 10월 말을 기준으로 대부분 문을 닫은 마당인데 굳이 구석구석 인적이 드문 도로까지 눈을 치우기는 무리일 터이다.
주유소에서 기름 넣고 와와의 주유소는 토론토와 달리 모두 ‘Full Service’이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심심하다. TV도 없고, 라디오라고는 달랑 채널 2개, 비디오나 DVD를 볼 형편도 못된다. 인터넷은 다이얼업, 56kbps는 언감생심, 아마도 그 절반이나 1/3쯤 되는 속도가 겨우 나오는 것 같다. 속 터진다.
도시적 삶에 깊히 젖었던 터여서, 아마도 이렇게 궁벽한 산촌의 삶이 더 심심하고 힘겹게 여겨질 것이다. 뭔가 좀더 ‘건설적인’ 소일거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
또 눈 | 2004년 12월 13일 오전 12:04
눈, 눈. 지붕들. 그리고 적막한, 눈뿐인 거리.
출입문을 가린 블라인드를 살짝 걷고 밖을 내다보니 뿌옇다. 온통 흰빛. 또 눈이다. 또. 싸래기 눈이 바람에 어지러이 춤을 추면서 쏟아지고 있다. 또 한 십몇 cm 쌓이리라는 예보.
"Welcome to Northern Ontario~!"라고 한 동료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나는 과연 다만 올 겨울이라도 제대로 넘길 수 있을까. 쏟아붓는 눈. 거리마다 양옆으로 쌓여가는 ‘눈둑’, 인적 하나 없는 이른바 ‘다운타운’ 거리, 따라서 문 연 곳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상가.
그래, 오늘이 일요일이지. 아침 11시가 가깝다고 하지만 일요일 아닌가. 휴일. 이미 도로는 쌓인 눈으로 서걱댄다.
자연이 위험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이곳에 와서 절실히 하게 된다. (*)
와인 | 2004년 12월 13일 오전 4:42
선물로 산 호주산 레드와인 '노랑 꼬리'
점심을 먹고, 저녁 식사 초대에 뭐든 사들고 가야겠기에, 다시 다운타운으로 행차를 했다. 눈은 여전히 흩날리고 있었다. 누군가가 눈을 와와 지역에다 대놓고 퍼붓는게 아닌가 잠시 의문을 품었다.
LCBO가 문을 열었다. 와인을 자주 마시는 처지도 아니고 즐기는 취향은 더더욱 아니어서 무엇을 사야 할지 전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점원에게 물었더니 호주산 레드와인 'Yellow Tail Shiraz'를 권한다. 올해의 베스트 셀러 중 하나였다고 덧붙이면서. 또다른 추천 제품은 뉴질랜드산 화이트 와인인데 그 이름이 걸작이다. 'Cat's Pee on a Gooseberry Bush.' 맛도 맛이지만 저녁 식탁에서 웃을 만한 소재도 되지 않겠느냐고 그녀가 말했다.
늘 맥주만 선호해 온 탓에, 과연 어떤 와인들이 있는지, 그 맛은 어떤지, 전혀 관심조차 둔 바 없었다. 그러나 LCBO에 진열된 갖은 와인들을 보니 문득, 크리스마스 연휴에, 가족과 함께 그럴듯한 와인 파티를 한 번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目下 번역중 | 2004년 12월 14일 오전 9:23
당시 쓰던 컴퓨터는 고색 창연한 '파워북'. 애플은 당시까지도 인텔칩 대신 파워PC라는 칩을 쓰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두 가지 일을 한다. 낮에는 MNR, 밤에는 번역. 'Big Russ and Me'라는 책. 지은이인 Tim Russert는 NBC 방송의 주요 시사 프로그램 중 하나인 'Meet the Press'의 진행자이다. 일요일 아침에 나오는 그의 프로그램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비교적 중립적으로 잘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 호감이 갔다. 사전에 꽤 치밀하게 준비했으리라는 심증이 가는 질문들이 꽤 나왔다.
책은 재미있다. 그냥 술술 읽어갔더라면 훨씬 더 나았을 터이다. 막상 이를 한글로 옮기려니 너무나 자주, 영어에서 느꼈던 그 '맛'이 안난다. 아마 한글을 영어로 옮긴다고 해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올 것이다. 문화와 역사, 민족성이 녹아 든 그 언어가, 어떻게 같은 값으로 손쉽게 치환되고 소통되겠는가.
번역은 더디다. 시간은 점점 더 졸아붙고, 마감일은 부득부득 다가들고...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전망은 썩 밝아보이지 않는다. 하는 데까지 해보는 수밖에... (*)
베이컨 기름을 빼는 한 방법 | 2004년 12월 16일 오후 12:01
아침, 입맛이 없어 토스트를 해먹기로 했다. 대충. 잼이나 버터로는 좀 성이 안차고, 달걀 프라이에 베이컨을 얹기로 했는데...
아내가 싸준 베이컨을 접시에 얹어 전자레인지로 1분쯤 돌리고 나니 접시가 기름으로 흥건하다. 구독하는 신문이 안성맞춤으로 기름을 빼주었다.
보기에는 좀, 영어식으로 말하면 'gross'해 보일지 몰라도, 맛은 썩 좋았다. 누구랑 같이 먹는 것도 아니고,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건데, 나만 좋으면 되는 거지...
그래도 썩 아름다운 풍경은 아닌 것 같지만...
이 사진을 지워버릴까말까 하다가...사진을 다시 보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게 뭐냐?!
(보충) 얼마 뒤 아내가 끔찍하다며, 키친 타월이 바로 옆에 있는데 왜 그걸 쓰지 않았느냐고 기겁을 한다. 흠, 키친 타월의 용도가 그런 것인지 미처 몰랐다... 고 하면 안 믿겠지? ^^; (*)
저녁놀 | 2004년 12월 16일 오후 7:57
MNR 사무실에서 바라본 저녁노을.
"케빈, 정말 아름답지 않아?"
내가 앉은 자리 바로 뒤, 창가 쪽 사무실을 쓰는 Bob Pinder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내게 묻는다. 묻는다기보다는 한 번 감상하라는 제안이다. 그가 그렇게 알려주지 않으면 그로부터 등지고 앉은 내 자리에서는 그런 풍경이 연출되어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본 풍경이 바로 이 사진이다. 와와는 캐나다 횡단 고속도로인 17번의 언덕배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북서쪽으로 올라가는 고속도로와 그 주변 풍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다만 이 사무실에서는 그 사이에 자라는 자작나무 띠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노을은 참 아름다웠다. 그 노을은 날씨가 맑은 날이면 거의 어김없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의 저녁 노을은 오히려 이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다웠는데, 바로 그 시간에 회의를 하느라고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Bob은 이곳 와와 지구가 맡고 있는 네 주요 숲 중 두 곳의 수퍼바이저다. 이곳에서만 25년을 살았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적어도 수백 번은 보았을 저녁놀을 보고 또 감탄하고 흥분한다. 와와가 얼마나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인가를 강조한다. 결국은 눈이고, 마음이다. (*)
아기곰 푸(Pooh)의 고향 White River | 2004년 12월 18일 오전 1:19
"Winnie the Pooh"의 고향 White River의 초입에 선 입간판과 거대한 온도계. 그게 진짜로 작동하는 것인지는 어두워서 확인하지 못했다. 아마 진짜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는다.
어제 저녁 White River라는 동네에 업무차 다녀왔다. 집에 오니 어느새 10시가 넘었다. 왕복 200km가 넘는 길이었지만 그 동네는 와와에서 가장 가까운 곳중 하나였다.
White River라는 동네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위니 더 푸'이다. 디즈니 만화를 통해 그 오동통하고 굼뜨고 순진하고 엉뚱한 아기곰 '푸'는 이미 '월드 스타'가 된 지 오래이지만 그 뿌리가 이 동네로부터 시작된 것을 아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위니 더 푸(Winnie the Pooh)의 '위니'는 매니토바 주의 주도인 위니펙(Winnipeg)으로부터 온 것이고, 그리로 간 곰은 본래 White River에서 잡혔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이동하던 병력에 끼어있던 Harry Colbourne이 그곳에서 잡힌 어린 암콤을 20달러에 사냥꾼으로부터 사 위니펙으로 데려갔던 것이다. 위니는 그 부대의 마스코트로 사랑받았고 영국까지 따라가게 되었다.
위니를 전쟁터에까지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콜번은 위니를 런던 동물원에 장기 임대 형식으로 맡겼다. 여기에서 위니는 그를 모델로 '위니 더 푸'를 쓴 A.A. Milne과 그의 아들 Christopher Robin을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그렇게 진행된 것이다.
어제 회의가 열린 White River의 커뮤니티 센터 이름도 콜번 센터였다. 그만큼 위니 더 푸는 이 동네의 자랑이자 크나큰 관광상품인 것이다.
그러나 White River의 중추는 아무래도 임업이다. 세계 주요 목재회사 중 하나인 Domtar의 Sawmill이 바로 여기에 있고, 이것은 인구가 9백명 선을 오르내리는 이 동네에서 그야말로 젖줄이나 다름 없다.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17번 고속도로 선상을 따라 발달한 이 동네로부터, 위니 더 푸의 전원적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더욱이나 한겨울에는... 사람들은 다 순박하고 친절했지만, 실상의 삶은 퍽이나 척박한 듯했다. 여름이나 가을에는 이보다 훨씬 더 아름답겠지. (*)
보충 (2012년 1월23일): 화이트 리버는 사실상 와해되었다. 이 동네 경제의 중추인 Domtar 목재 회사가 몇년 전에 문을 닫은 탓이다. 인구가 채 1천 명이 안되는 동네에서, Domtar는 젖줄이었다. 당시 이 마을의 평균 수입이 6만5천달러에 이를 만큼 부유했던 것도 그 덕택이었다. 그러나 Domtar의 폐업과 함께 마을도 쇠퇴 일로라는 소식을 풍문으로 들었다. 이 관련 기사는 2009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