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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비늘

빈 집

가끔 들러 배우고 종종 감동하곤 하는, 블로그로 알게 된 분의 블로그에서, 빈 집들의 사진을 봤다. 그 중 한 집이, 내가 태어나고 예닐곱 해를 살았던, 내 기억 속의 그 집과 흡사했다. 바로 이 사진. 그리고 사진 아래 글은 그곳에 단 댓글.

빈 집. 그리고 허물어져 가는 기억. 출처: http://blog.naver.com/namuahn/70112703144

 
빈 집은 늘 쓸쓸해 보입니다. 다 허물어져 가는 집도 그 안에 사람이 살면 무너지지 않는다고 하지요. 그러다 사람이 뜨면 곧바로 무너져 내린다고... 집에도 어떤 정기랄까 생명이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 살던 곳이 전기도 들어가지 않는 시골이었습니다. 역시 댐이 생기면서 집이 물에 잠겼는데, 잠기기 직전, 어떻게 알았는지 온집안에 노네기며 갖은 벌레들이 자심하게 출현하더군요. 뒤뜰의 밤나무와 감나무, 집을 둘렀던 개나리 울타리가 다 그 물에 잠겼습니다. 높은 지대로 집을 옮겼지만 정이 들지 않았고, 한두 핸가 있다가 이사를 떠나 이젠 기억조차 아슴합니다. 이민 오기 전에 잠깐 들렀지만 제 어린 기억 또한 물속에 잠겨버렸지요. 

여행을 다니면서 참 아름답고 평화롭고 고즈넉한 풍경을 만나면 '아 이런 데서 살고 싶다'라고 잠깐 바람을 품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더 진전시키면 답은 대체로 비현실적이다, 불가능하다로 바뀌지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이겁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먹고 살 건데? 대개 평화롭고 한가롭고 고즈넉한 동네는 인구가 적게 마련이고, 따라서 경제도 어렵습니다. 시쳇말로 '자연으로 돌아가자'라고 정말 모질게 마음 먹고 자급자족하는 기분으로 산다면 모르겠으나, 그런 모진 경험이나 노하우를 전혀 갖지 못한 제가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지극히 회의적입니다. 

저 농촌의 풍경도, 그저 그림으로만, 먼 발치에서 보는 사람의 눈에는 평화롭고 안온하기 그지 없겠으나, 그 속에 깃든 간난신고는 말도 못하겠지요. 여북하면 자기 뿌리를 뽑아 대처로 떴겠습니까. 

저는 이민 와서 하도 자주 이사를 다닌 데다 변변한 친구조차 제대로 사귀지 못하다 보니, 어디 낯선 데서 '여기 살아볼까?' 하고 고려할 때, 그럼 지금 사는 곳의 이웃은? 친구는? 하는 질문은 그 고려 대상에서 빠져 있습니다. 참 우울한 대목입니다. 한국에서 사귀고 알았던 사람들과는 그럼 중뿔나게 간곡하냐면 또 그것도 아니게 됐습니다. 세월 탓이고 거리 탓이고 게으름 탓이지요. 뿌리 뽑아 캐나다에 와서 뿌리를 내리려 하나,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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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그리고 이것은 내가 좋아하는 기형도 시인의 시 '빈집' 전문 (1989년). 사랑을 잃어버린 자의 서글픔과 상실감을 빈집에 견주고 있는데, 여기에서 사랑이 꼭 이성 간의 사랑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댐 건설로 수몰돼 잃어버린 그 집을, 그 집과 관련된 기억을, 추억을 대입해도, 감성은 여전히 각별하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