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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미쳤니 제값 주고 사게”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기승 (NEWS+ 1997년 5월29일치)

전세계적으로 확산 - 사무용 절반은 가짜… 베트남 등은 ‘해적판 소굴’ 

    예컨대 「아래아 한글」로 유명한 한글과컴퓨터사가 1년만에 매출액을 두배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한다고 가정하자. 다음에서 가장 현실성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① 광고 물량을 전해보다 2배 이상 늘린다.
②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적극 개발한다.
③ 다른 소프트웨어 기업들을 인수, 합병한다.
④ 검찰 및 관련기관에 소프트웨어의 불법, 무단복제 단속을 강력히 요청한다.

    이상론에 기댄다면 답은 마땅히 ②번이 돼야 할 터이다. 그러나 정답은 ④번이다. 만약 검찰과 관 련기관이 제대로 단속만 한다면 매출액은 2배가 아니라 3배 혹은 4배까지 치솟을지도 모른다.

    그 게 현실이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소프트웨어의 70%가 「해적판」이다. 10개 중 7개가 가짜라는 얘기다. 이것도 95년에 견주면 나아진 편이다. 95년에는 76%가 불법 무단복제 된 소프트웨어였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해적판 소프트웨어의 범람은 전세계적인 문제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최근 미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회」(BSA)와 「소프트웨어출판협회」(SPA)가 팔을 걷어붙이고 해적 판 소프트웨어와의 전쟁을 선포한 배경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870만원짜리 진품 1만원에 복제품 거래

    BSA와 SPA는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5억2300만개의 사무용 소프트웨어가 이용된 것으로 추산한 다. 문제는 그중 약 2억2500만개가 해적판이었다는 사실이다. 거의 절반이 불법 무단복제됐다는 얘기다. 더욱이 이 숫자는 95년의 1억8700만개보다 20%쯤 더 늘어난 규모다.

    이를 돈으로 따지면 112억달러(약 9조7400억원)에 이른다. 95년의 133억달러보다 줄어든 액수지만 이는 불법 무단복제 사례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소프트웨어의 가격이 전반적으로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해석 이다.

    동유럽은 해적판 소프트웨어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곳으로 꼽힌다. 이 지역의 소프트웨어 중 8할 이 해적판이다. 가장 양호한 곳으로 꼽힌 북미 지역의 28%에 견주면 거의 3배나 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 해적질로 인한 금전적 피해 규모는 북미 지역이 27억달러로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나라별로 그 「성적」을 따져보는 것도 제법 흥미로운데, 베트남이 99%로 단독 1위의 불명예를 안 았으며 불가리아가 98%로 2위, 인도네시아와 중국이 각각 97% 96%로 그 뒤를 이었다. 오만 (95%) 파키스탄(92%) 엘살바도르(92%) 러시아(91%) 등도 그에 못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96년의 자료는 소프트웨어의 불법 무단복제가 여전히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임을 보여준다』고 켄 워시 SPA 회장은 말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세계 경제를 주도해갈 성장산업이다. 110억달러에 이르는 피해액을 도외시하는 것은 육상선수의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매달고 마라톤을 뛰게 하는 것과 같다』

    지난 몇년간 해적판 소프트웨어의 초점은 주로 음악과 영화산업에 놓여 있었다. 「국제지적재산권 협회」(IIPA)에 따르면 지난 96년 한해 동안만도 무려 35억달러의 손실액이 불법 무단복제로 인해 발생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도 급격히 바뀌고 있다. 전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간 개인용컴퓨터 (PC)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CD 제작기술 때문이다.

    약 5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플로피디스크에 담겨 팔렸다. 한 프로그램당 5~20개씩 되는 플로피디스크를 일일이 복제하자면 여간 번거롭고 힘든 작업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도 CD롬이 대중화하면서 간단히 해결됐다.

    이제는 CD레코더를 이용해 CD롬 한장만 복제하면 간단 히 끝난다. 한때 몇백만원대였던 CD레코더의 가격이 60~70만원대로 떨어져 개인이 해적판 소프 트웨어 기업을 차리는 일조차 가능해졌다. 한해 200만개의 디스크를 찍어낼 수 있는 고성능 모델 도 3억5000만원 안팎이면 마련할 수 있다.

    소비자들 처지에서 보자면 해적판 CD롬의 유혹은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다. 미국에서 개당 299달 러(약 26만원)에 판매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부터 개당 1만달러(약 870만원)나 하는 오토캐드에 이르기까지 해적판을 이용하면 채 1만원도 들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CD롬 한장에 30~40개의 프로그램을 담아 팔기도 한다. 이때에도 가격은 5만원 안팎. 몇백만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소프트 웨어가 그 10분의 1, 혹은 100분의 1도 안되는 헐값에 거래되는 것이다.

인터넷 확산이 소프트웨어 복제 부채질

    BSA는 세계 60개국에 핫라인을 설치하고 불법 소프트웨어를 근절하려 노력해 왔다. 각국 정부와 경찰에 대한 교육에도 공을 들였다. 특히 정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해적판 소프트웨어가 장기적으 로는 그 나라의 경제와 소프트웨어 산업에 해악이 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해 왔다. 그러나 그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난 2월, 미 로스앤젤레스의 세관원들은 홍콩에서 들어온 컨테이너를 압류했다.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컨테이너에는 620만달러(약 54억원)어치의 해적판 소프트웨어와 350만달러의 현금, 자동소총과 권총 등이 들어 있었다.

    『불법 소프트웨어를 유통시키는 사람과 마약중개 돈세 탁 등에 관련된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그리 새삼스러운게 아니다』고 에릭 스미스 IIPA 회 장은 말한다.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도움을 받아 세계 각지의 공장들을 뒤져온 BSA의 관측도 이와 다르지 않다. 총기류와 마약류, 해적판 소프트웨어 등을 유통시키는 사람들이 세계의 주요 범죄조직과 연계돼 있다는 것.

    이들의 대응은 불법 소프트웨어에 대한 법률이나 단속이 강화될 때마다 발빠르게 변주된다. 예컨 대 「삼합회」의 영향권에 있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판매점들은 더 이상 대량으로 CD롬을 들여놓지 않는다. 대신 수요자가 있을 때마다 「퀵서비스」 등으로 직접 배달하는 방법을 쓴다.

    상점에 설치 된 감시 카메라는 손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어느 때 들이닥칠지 모르는 단속반을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소프트웨어 감시 기관들은 요즘 중국 홍콩 싱가포르 일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광주 카오슝 길 림 마카오 등에서 불법 소프트웨어가 대량 생산되기 때문이다. BSA와 경찰은 최근 길림에서 하 루 2만장 생산능력을 갖춘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공장을 적발했다.

    BSA와 SPA, 미 무역대표부 등의 적극 공세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3년 전부터 큰 유행을 이루기 시작한 인터넷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회원국들이 모여 저작권법의 범위를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소프트웨어에까지 확대하자는데 합의했지만 인터넷의 특성상 이를 단속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 다. 더욱이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정보나 자료는 공짜」라는 인식이 뿌리깊다.

    소프트웨어의 불법 무단복제는 국내 기업들에도 난치병에 가깝다. 감시와 단속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일반 PC이용자들(End-User)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낫는다. BSA나 SPA,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고민도 거기에 있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