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답장은 줬어?'
"아, 아직..."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편지를 찾는다. 이제 줄 때가 됐다는 판단이다. 성준이가 예년보다 일찍, 서둘러서 산타 클로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갖고 싶은 레고 장난감이 너무 많은데 그걸 엄마 아빠가 다 사줄 리도 없고, 더구나 비싸다고 말하면 살짝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데, 결국 기댈 언덕은 연중 최대 축제인 크리스마스이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알아서 주시는 것 같은 마이티 산타 할아버지가 아니겠는가.
아래 편지는 지난 10월 중순에 성준이가 쓴 편지. 열심히 코치는 하지만 수신인에 대한 배려와 허사가 너무 없이 즉각 본론으로 들어가, 나는 레고 리퍼블릭 건쉽이 갖고 싶다고 요구한다. 이 제품은 더 이상 만들지 않기 때문에 산타가 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아빠가 일러주니까 " 임페리얼 트룹 트랜스포트"도 괜찮다며 대체 선물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편지를 부쳐 주겠다며 회사로 가져왔고, 산타가 된 심정으로 아래와 같이 답장을 썼다.참 편지를 일찍도 썼구나, 그리고 너는 레고를 퍽도 좋아하는구나, 늘 착한 어린이는 아니었다는 솔직한 고백이 좋다, 하지만 너는 착한 아이야,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엄마 아빠 동준이 형과 더불어 잘 지내라,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계속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노력한다면 크리스마스에 꼭 들러서 선물을 놓고 가마, 물론 너랑 네 형이 꿈나라에 갔을 때, 하지만 어떤 선물을 줄지는 알려주지 않겠다, 기다리는 재미가 사라질테니... 뭐 그런 내용. 그런데 써놓고 보니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운운하는 글의 표현이나 단어가, 내가 평소에도 자주 쓰는 것이어서, 혹시 성준이가 눈치 채는 게 아닐까 살짝 불안해 졌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나, 하고 블로그를 뒤져보니 2년 전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편지 봉투에 넣어놓기만 했지, 실제로 밖에서 누군가가 부쳤다는 표시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아내가 부랴부랴 우표를 찾아보니 공교롭고 다행스럽게도 저런 산타 우표가 나온다. 그리고 스탬프도 장난감 기차 스탬프를 재활용.
잠자리에서 '베드타임 스토리'를 읽으려는 찰나, 엄마가, "어,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우체통 소리 같애. 나가봐"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성준이는 멈칫멈칫하면서도 아빠가 뒤에 따라오는데 힘이 나는지 문을 열고 우체통을 연다. 비 내리는 소리 요란한 밖은 깜깜한 밤이다. "뭐야? 뭐야? 누가 보낸 거야?" 아빠도 호들갑. "새앤타~!" 성준이가 송신자의 이름을 보며 나지막히, 하지만 흥분감이 여실한 목소리로 알려준다.
방으로 돌아와 읽기 시작. 편지지의 바탕 그림을 보며 킥킥 웃는다. 산타 할아버지가 피서 중이야! "것봐, 내가 그랬지? 편지가 너무 일러서, 산타 할아버지는 휴가 중일지 모른다고..."
제법 긴 편지를 또박또박 읽는다. 그리고 자기가 착하고 똑똑한 어린이인 것을 잘 안다고 했더니 짐짓 감동한 눈치. 그리고 크리스마스 전날 밤에 꼭 들러서 선물을 - 무슨 선물인지 모르지만 - 주고 갈 거라는 내용에 안도와 기대의 표정이 역력해진다. 다 읽고 나더니 잠시 침묵. 그리고 나지막히 속삭인다. "Thank you, Santa."
엄마와 아빠는, 아직까지 산타를 믿는, 믿어주는, 성준이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런 날이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We will thoroughly enjoy this while it la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