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은 배가 떠나는 웨스트 밴쿠버의 호스슈베이에서 먹기로 하고 8시30분쯤 집을 나섰다. 타기로 마음 먹은 배편은 10시40분 출발. 그러나 시간이 생각처럼 여유롭지 못해서 음식을 카페에서 먹어야 할지, 픽업해 차 안에서 먹어야 할지 참 애매했다. 결국 전자를 택했는데, 시간이 하도 빠듯해 심리적으로 쫓기며 먹다 보니 음식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10달러 가까이 하는 아침 식사의 품질은 또 왜 그 모양인지... 다시는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것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달랬다. 관광지의 '바가지 상혼'은 만국 공통인 듯.
나나이모로 가는 BC페리 위에서. 배 뒤로 바닷물이 하얀 포말을 만들며 배를 따라온다. 아래는 구글 지도로 찍은 여행 일정. 집에서 출발해 호스슈 베이에서 배로 바다를 건너 나나이모의 디파처 베이에 다다른 뒤, 북서쪽으로 40여 km를 달려 파크스빌의 '타이-나-마라'(Tigh-Na-Mara) 리조트 & 스파에 2박3일간 머무른다. 사흘째 남동쪽으로 두 시간쯤 내려가 빅토리아에서 1박 한 뒤 나나이모로 다시 올라와 돌아오는 일정이다.
6월21-23일 (일-화) - 파크스빌, 퀄리컴 비치
타이-나-마라 (Tigh-Na-Mara)는 스코틀랜드 (혹은 아이리쉬?) 말로 'house by the sea' 즉 '바닷가의 집'이라는 뜻이란다. 이름 그대로 바닷가에 있다. 3만평 가까운 너른 숲속에 아래 그림 같은 통나무집들이 네다섯 채씩 무리를 지어 서 있다. 우리가 묵은 통나무집에는 소파 베드가 놓인 거실과 부엌, 방 두 개, 그리고 샤워실을 겸한 화장실이 하나 있었다. 그래도 다섯 명이 자기가 버거워 거실의 소파를 가외의 침대로 이용했다.
파크스빌과 이웃 퀄리컴 비치는 해변이 좋기로 유명해서 특히 여름에 인기가 좋다. 나는 개인적으로 해변에 남다른 매력을 느끼는 편이 못 되지만, 이곳 북미 사람들은 해변을 참 무던히도 좋아한다. 아래 사진은 그 여러 해변 중에서도 '래스트레버 해번 주립공원' (Rathtrevor Beach Provincial Park)의 일일 소풍 지역에 있는 해변이다. 물을 튀기며 뛰는 놈이 동준이, 그 옆에서 열심히 따라가는 이가 그 아빠다.
밀너의 정원과 숲
해변은 어디나 널려 있었다. 도로 하나 건너거나, 거리 한두 블럭 걸어나가면 바다고 해변이었다. 땡볕 내려쬐는 해변만 걷기보다 그늘이 더 그리웠던 우리는, '밀너 정원과 숲'(Milner Gardens & Woodland)이라는 곳을 찾았다. 마침 현지 밴쿠버섬대 (VIU) 대학생들이 무슨 이벤트 삼아 숲속 곳곳에 양철과 다양한 가정용품들로 만든 외계인들 (사실은 로봇들)을 심어 놓고, 그 외계인들이 착한 식물을 찾아 지구에 왔다는 시나리오를 더했다. 딱 성준이가 좋아할 수준. 과연 성준이는 신나서 이것 봐라, 저것 봐라, 신이 났다.
그늘이 많은 호젓한 트레일을 여유롭게 걸으며 더운 여름날 오후를 시원하게 보냈다.
외계에서 온 '식물 사냥꾼들'. 바로 이 포스터가 트레일의 초입과 끝에 서 있다.
여기 봐라, 저기 봐라, 성준이는 신이 났다. 한 번 보는 것으로는 모자라서 한 번 더, 그 코스를 돌자고 했다. 좋지! 우리도 재미있게 잘 봤다. 그래도 저렇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정성이 어디냐!
성준이는 3박4일 간의 휴가 뒤에,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는 질문에 여기가 가장 좋았다라고,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다행이다!
밀너 정원과 숲이 조성된 한 쪽은 또 이렇게 바다다. 멀리 다른 섬들이, 산들이 신기루처럼, 병풍처럼 사방을 두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저렇게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 당연하게도 - 밀너 가족의 집이 자리잡고 있다.
예기치 않게 벌에 쏘였다, 그것도 두 방이나... 숲이 많고 신기한 나무가 많아 그것들 구경하느라 벌집을 건드렸던 모양이다. 엄청 따가웠지만 참을 만했다. 어린 시절에 벌에 쏘여본 경험이 있어서 별로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잠깐 약국에 들렀다.
음식도 커피도 별미...퍼시픽 브림
여기에서 '환상적'이라 함은 카페의 인테리어나 모양새가 아니라 음식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는 뜻이다. 외지에 와서 음식 잘 하는, 그러면서도 값도 터무니없이 비싸지 않은,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으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이곳 '퍼시픽 브림'에서 아침을 먹고, 우리는 이번 여행의 절반은 이미 성공한 셈이라는 만족감에 젖었다. 음식도 별미였고, 커피도 맛있었고, 값도 착했다. 커피가 하도 맛있어서, 이곳에서 직접 볶아주는 '스피릿 베어' 원두까지 한 봉지 샀다.
우리가 아침에 갔을 때, 카페에는 경찰 여러 명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들을 보고, 우리는 음식을 주문하기도 전에, 음식 잘하는 곳을 찾았다고 직감했다.
그 옆으로 놓인 가게들도 퍽 아기자기하고 재미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의상실이 우리 눈길을 끌었다. "댁의 남편이 전화해서, 댁이 좋아하시는 건 뭐든지 사도 좋다고 하셨어요"라는, 유치하지만 그래도 재미난 문구가 걸려 있다.
그 옆 가게는 친환경적인 재료들로 물건을 만들어 파는 곳이었는데, 아래 사진으로 찍어놓은 백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본래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 아닌가 하하.
동네만 놓고 보면, 파크스빌보다 퀄리컴 비치 쪽이 더 그럴듯했다. '그럴듯했다'라는 것은 주민들의 재정 형편이 더 나으리라는 추정을 유도하는, 아담하고 예쁘고 '럭셔리'한 가게들이, 시각적으로도 꽤 잘 정돈된 다운타운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이 동네를 찾은 시각은 대다수 가게가 이미 문을 닫은 오후 5시 -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안 되는 일 아닌가! - 여서, 말 그대로 아이쇼핑 (Window shopping)만 하고 돌아왔다. 나야 아무래도 좋았지만 아내와 후배로서는 통탄할 노릇. 내일 아침에는 빅토리아로 내려가야 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