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얘기

성준이의 수학 여행 2


화요일 오후, 짐을 꾸리다 말고 탐험가용 모자를 쓰고 한껏 폼을 잡은 성준이.


금요일 오후 세 시를 조금 넘어서,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왔다. 성준이구나, 라고 바로 감이 왔다. 물론 엄마가 전화를 걸어서 성준이에게 통화하라고 시킨 것이겠지만... 오후 세 시에 돌아온다고 했으니 지금쯤 집에 왔을텐데, 전화를 해볼까, 아니면 집에 갈 때까지 기다릴까, 생각하던 참이었다.


"Daad~! I'm back!" 목소리에서 의기양양함이 묻어났다. 

"구임둥!! You're home!" ('Kim'을 다소 과장스럽게 바꾼 뒤에 '둥'이란 접미사를 넣은 것인데, 동준인 '디제이둥', 엄마는 '마미둥'이다 하하).

"How was your camp?"

"Great!" 그리곤 뭔가 아작아작 씹는 소리. 

"What are you eating?"

"Nachos!"

"Alone? Without me? I feel sad..."

"Don't worry dad, I'll leave some for you." 


그런 식으로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다 집에서 보자며 끊었다. 


성준이가 2박3일 간의, 따지고 보면 길지도 않은 수학 여행을 가 있는 동안, 나는 어쩔 수 없이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부모들이 느꼈을, 느끼고 있을, 그리고 죽을 때까지 느끼게 될 '지옥'을 상상했다. 가슴에 사무쳐 끝끝내 지워지지 않을, 어떤 방법으로도 치유되지 않을 상처, 뼛속 깊이 사무칠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을 상상했다. 나도 아내도, 그런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도 않았지만, 아내 또한 그런 걱정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세월호를, 그리고 수학여행이나 캠프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비극들을 어쩔 수 없이, 문득문득 떠올렸을 것이다.



블로그를 쓰다 말고 성준이더러 엄마와 포즈를 취해 보라고 주문했다. 예상대로 요런 표정!


집에 도착했다. 자전거로 마운틴 하이웨이를 힘겹게 올라오느라 헉헉대면서... 성준이가 쪼르르 달려나온다. 꼭 껴안았다. 반갑고, 고맙고, 행복했다. 자식 둔 부모의 심정이란 이런 걸까? 그와 동시에, 세월호 참사로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이 떠오르면서, 괜히 죄 지은 듯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엄마한테 수학 여행에서 돌아오는 성준이의 사진을 찍었느냐고 물었다. 못 찍었단다. 버스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했는데 아내는 그것도 모른 채 시간에 맞춰 세 시 무렵 학교에 갔더니 아이들은 어느새 운동장에 모여 있고, 일찍부터 나와 기다리던 부모들은 이미 아이들을 데리고 갔더란다. 성준이는 엄마를 보자마자 왜 늦었느냐며 - 늦은 게 아닌데 - 엄마가 자기를 픽업하지 않을 줄 알고 슬프고 무서웠단다. 그래서 울고 있더라나. 그러니 아이 달래느라 사진 찍을 경황도 없었고...


하지만 아빠를 볼 때쯤에는 이미 평소의 '허세 모드'를 회복해서, 캠프는 어땠느냐니까 좋았다, 엄마 아빠 없이 혼자 자려니 밤에 무섭지 않았느냐니까 그럴 리가 있느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집이 조금 그립기는 했다고 - I was a little homesick - 슬쩍 감정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캠핑을 갈 용의가 있느냐니까, 약간 망설이는 눈치더니, 엄마 아빠가 걱정돼서란다. 뭐시라고라? 


금요일엔 돌아오렴... 몇주 전 전자책으로 구매했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한 것은 며칠 전이다. 겨우, 조금씩 읽는다. 하지만 그것도 어렵고 두렵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제목부터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 별로 길지 않은 수학 여행, 금요일이면 돌아와야 할 짧은 여행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