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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거리

캘거리 주말 동안 집을 비워야 했다. 팔려고 내놓은 집은 부동산업체에서 그럴듯해 보이라고 꾸며놓은 (staging) 온갖 장식들 때문에 도무지 마음 편하게 생활할 형편이 못되었다. '손 대지 마시오' '앉지 마시오' '기대지 마시오' 같은 경고문들로 가득찬 건물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거실의 소파는 초대형 쿠션 네 개에 점령되었고, 늘 몸을 던지듯 그 위에 앉곤 했던 동준이는 갑작스레 자리를 차지한 쿠션들 앞에서 감히 앉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마스터 베드룸 (안방) 또한 장식된 요와 쿠션, 베개들 때문에 접근 불허였다. 그걸 치우고 잠을 잔 뒤 다시 장식 상태로 복원하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이, 차라리 그걸 그대로 두고 옆 방에 요를 깔고 자는 것보다 훨씬 더 길고 고될 듯했다. 토요일 오후에 누군가가 집을 .. 더보기
물난리 어렸을 때 본 만화가 종종 떠오른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고, 작가가 고우영이었는지 이두호였는지, 아니면 다른 누구였는지도 그저 아득할 따름인데, 초능력을 가진 세 남자 - 형제 사이였던가? - 의 이야기였다. 이들은 각각 바람, 불, 그리고 물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는 결국 물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올해 유독 그 생각이 자주 났다. 물의 위력, 아니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건 사고가 유난히 많았던 탓이다. 지난 6월에는 알버타주 남부가 사상 초유의 물난리로 큰 낭패를 보았다. 미국과 접경한 소읍 하이리버는 거의 동네 전체가 물속에 잠겼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로키산맥 근처의 캔모어와 밴프도 홍수로 큰 피해를 당했다. 그런가 하면 알버타주에서 가장 큰 도시 .. 더보기
너무 힘겨웠던 캘거리 하프 마라톤 캘거리 마라톤에서 또 하프 마라톤을 뛰었다. 지난 밴쿠버 대회 때와 견주어 너무 힘든 경기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준비를 제대로 못한 탓인지, 아침에 에너지 바 두 개만 먹고 뛰어서 힘이 달렸던 것인지, 컨디션이 별로인 왼쪽 허벅지와 오른쪽 인대 때문인지... 스스로 진단하는 원인은 체력 안배와 속도 조절 실패다. 6마일(10km 어간)인가 7마일(12km)을 지나면서부터 몸에 에너지가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죽을 맛이었다. 이제 절반밖에 안 왔는데 연료 탱크가 벌써 바닥이 났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그렇게 힘들고 괴로울 수가 없었다. 모든 이들이 나를 제치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템포! 호흡! 자세! 나머지 7마일은 주저앉고 싶은 욕망과의 싸움이었다. 주변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종치고 소.. 더보기
캘거리 하프마라톤 D-7 토요일. 캘거리 하프마라톤이 꼭 일주일 남았다. 번호도 이미 나왔다. 경기 전날 행사장에 가서 번호표를 받아 오기만 하면 된다. 지난 번과 달리 이번에는 다소 걱정이 앞선다. 몸이 시원치 않은 탓이다. 이 달 초, 밴쿠버 마라톤의 여파인지, 아니면 훈련 중에 사단이 난 것인지 오른쪽 무릎 뒤 인대가 불편하다. 뛰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데, 몸을 풀기 위해 발 뒤꿈치가 엉덩이에 닿을 만큼 높이 차는 '벗킥'(butt kick)을 할 때면 약간씩 당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약한 통증이 온다. 그런가 하면 왼쪽 엉덩이 부근 근육도 여전히 뻐근하다. 너무 무리를 한 것일까? 지난 2주 동안 쉬엄쉬엄 한다고 주의를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다. 평소 뛰던 거리보다 적게 뛰었다는 죄책감 아닌 죄책감도 든다. 게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