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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회의 출근길, 버스에서 내려 2, 300 m 바다쪽으로 걸어내려가면 보이는 사무실 풍경. 일곱시 무렵이다. 뒤에 보이는 'Province'라는 표지를 단 빌딩은 밴쿠버 지역의 양대 일간지 - 하지만 모회사는 같다 - '밴쿠버 선'과 '더 프라빈스'의 건물이다. 새 직장에서 일한 지 꼭 두 달이 됐다. 아직 여러가지로 헤맨다. 일이 달라 헤매고, 직장 문화가 달라 헤맨다. 누가 누군지 파악 못해 헤매고, 어디에 어떤 양식을 써야 할지 몰라 헤맨다. 분야 자체는 '프라이버시', 혹은 '정보 프라이버시'라는 말로 넓게 포괄될 수 있으므로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 속내는 많이 다르다. 심지어 관련 법의 내용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작업의 강도와 밀도이다. 이미 모든 정책과 규정.. 더보기
밴쿠버에 닿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10시 가까이 되어 다시 도로로 나섰다. 유명 프랜차이즈인 '칠리스'(Chili's)가 호텔 1층에 있었는데, 거기에서 아침을 공짜로 제공했다. 따뜻한 음식을 공짜로 제공하는 호텔을 선호하는 이유는 비단 공짜라서뿐만이 아니라 - '공짜'라고 하지만 결국은 숙박비에 다 포함된 것 아니겠는가 - 편의성 때문이기도 하다. 짐 싸들고 차를 몰아 일삼아 식당을 찾아가는 것에 견주면 더없이 편리한 것이다. 하지만 '비용' 면에서의 효율성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가족 구성원이 네 명쯤 되면 '간단히' 먹는 아침 비용도 만만찮은 것이다. 로키산맥은 언제 어느 때 가든 그 압도적 풍광으로 사람을 압도한다. 사진은 '캐슬 마운틴.' '반지의 제왕' 속의 한 장면이 금방이.. 더보기
새알밭을 뜨다 무슨 호텔의 조명이 온통 핑크빛이냐며 비웃었던 바로 그곳에서 하루를 묵었다. 새알밭에 살면서 새알밭의 호텔에 묵을 일이 있을까 했는데, 결국 있었다. 24일 이삿짐을 다 빼고 난 집에서, 처음에는 슬리핑백으로 잠을 자볼까 고려했지만 조금이라도 짐을 줄여보자는 생각에서, 또 굳이 그렇게 불편하게 잠을 잘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서, 동네 호텔을 잡은 것이다. 퀸 사이즈 침대가 두 개 나란히 놓인 방은 쾌적했다. 그 동안 혼자 이삿짐 싸랴, 물건 처분하랴 녹초가 된 아내는 호텔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졌다. ...라고 말하면 퍽 이른 시간이었던 것 같지만 내가 에드먼튼 공항에 도착한 게 10시였기 때문에, 호텔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11시가 가까운 늦은 밤이었다. 일찍 시작하는 동준이를 먼저 학교에 데려다 주고, .. 더보기
스카이프 아내,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스카이프(Skype)를 이용해 서로 얼굴을 확인했다. 구글 토크, 페이스북 등 다른 대안도 있었지만 본래부터 써와 익숙한 스카이프에 주로 의존했다. 카메라에 얼굴 들이대는 것이 마냥 재미있는 성준이는 카메라에 종주먹을 들이대며 집에 함께 있을 때면 수시로 하는 격투 장면을 연출하곤 했다. 주로 저녁 때 전화를 걸어서 그런지 동준이는 주로 '식사중'이셨다. 행복한 콧소리가, 엄마 쪽에서는 너무 시끄러웠겠지만 내게는 제법 흥겨운 노랫가락처럼 들리기도 했다. 오늘이 이삿날이다. 아내 혼자 잘하고 있을까? 아침에 전화를 했더니 이삿짐 트럭이 와서 짐을 싣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한 시간 시차가 나는 밴쿠버의 사무실에 앉아 있다. 새 직장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돼서 자꾸 빠.. 더보기
비 내리는 밴쿠버에 오다 리치몬드의 밴쿠버 국제공항으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웨스트젯.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고, 간혹 거센 바람이 불어 기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했다. 9월29일/ 일/ 흐림, 비 약간 밴쿠버행 웨스트젯에 앉아 있다. 태평양 시간으로 오전 10시44분, 산악 시간대로는 11시44분, 점심 때다. 머리속이 멍하다. 내일부터 새 직장에 출근이다. 하지만 별다른 실감은 없다. 아직은 얼떨떨할 따름이다. 공항으로 오는 미니 밴 안에서, 성준이는 아빠만 밴쿠버에 가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자기도 같이 가면 안되겠느냐고 묻는다. 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볼 거라고 하자 금방 진정이 된다. 엄마 컴퓨터로 라퓨타에 나오는 로봇을 볼 수 있느냐고 또 묻는다. 안된다고, 아빠 컴퓨터로만 된다고 대.. 더보기
SOLD!! 드디어 집이 팔렸다. 지난 목요일 (19일) 집앞에 'For Sale' 간판을 내건 지 꼭 8일 만이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납덩이 하나 내려놓은 듯 속이 후련하다. 야호~! 아니, 만세~!라고 소리라도 마음껏 내지르고 싶은 기분이다. 아내는 집이 최종적으로 팔렸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밴쿠버의 부모님께, 또 한국의 언니들께 그 낭보를 달뜬 목소리로 전했다. 집을 과연 얼마나 빨리 팔 수 있을까, 어느 정도나 손해를 감수하고 팔아야 할까 걱정했다. 2009년 구입가는 35만3천달러. 여기에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부동산 중개료 1만5천달러를 더하면 아무리 못 받아도 36만8천달러는 받아야 그나마 큰 손해 안보고 팔았다고 할 수 있을 터였다. 이사 들어오면서 집안 전체를 마루바닥으로 바꾸느라 소비한 1만달러.. 더보기
송별회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한국인 동료들. 온타리오 주정부에서 일하면서도 단 한 명의 한국 사람도 만나지 못했는데, 그보다 도리어 더 규모가 작은 앨버타 주정부에서는 제법 많은 한국 사람들을 만났다. 이번 주 내내 점심 도시락을 쌀 일이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덜 미안했다. 지난 한 달간 집을 팔기 위해 짐 싸고, 버리고, 옮기고, 숨기고, 정리하느라 무진 애를 쓴 아내는, 어제 저녁 결국 몸살 기운을 드러내고 말았다. 지난 월요일에 집을 사겠다는 제안(오퍼)이 두 개 들어왔고, 두 제안 모두 좋은 조건이어서 더없이 다행스러워했지만, 집을 완전히 팔기 위해서는 '주택 검사'(home inspection)라는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집에 큰 하자 - 특히 구조상의 결함 - 가 없다는 주택검사 전문가의 판정이 .. 더보기
드럼헬러 캐나다의 크고 작은 도시들에는 유난히 '무엇무엇의 수도' (... Capital of Canada, 혹은 World) 같은 자가발전형 칭호가 많다. '랍스터의 수도', '나무들의 수도', '토너먼트의 수도', '와인의 수도', '미네랄의 수도, '중유의 수도', 심지어 '하루살이(shadfly)의 수도'도 있다. 드럼헬러는 '세계 공룡의 수도' (Dinosaur Capital of the World)를 자임하는데, 대개는 그 명칭이 스스로를 과대포장하게 되는 경우와 달리, 이곳만은 명실상부한 '세계 공룡의 수도'라고 할 만하다. '공룡의 계곡' (Dinosaur Valley)이라는 별칭이 시사하듯, 드럼헬러는 그야말로 공룡의 천국, 아니 공룡 화석의 보고다. 전세계 어느 곳도 드럼헬러에 버금갈 만한 양과.. 더보기
캘거리 주말 동안 집을 비워야 했다. 팔려고 내놓은 집은 부동산업체에서 그럴듯해 보이라고 꾸며놓은 (staging) 온갖 장식들 때문에 도무지 마음 편하게 생활할 형편이 못되었다. '손 대지 마시오' '앉지 마시오' '기대지 마시오' 같은 경고문들로 가득찬 건물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거실의 소파는 초대형 쿠션 네 개에 점령되었고, 늘 몸을 던지듯 그 위에 앉곤 했던 동준이는 갑작스레 자리를 차지한 쿠션들 앞에서 감히 앉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마스터 베드룸 (안방) 또한 장식된 요와 쿠션, 베개들 때문에 접근 불허였다. 그걸 치우고 잠을 잔 뒤 다시 장식 상태로 복원하는 데 드는 노력과 시간이, 차라리 그걸 그대로 두고 옆 방에 요를 깔고 자는 것보다 훨씬 더 길고 고될 듯했다. 토요일 오후에 누군가가 집을 .. 더보기
이사 스트레스 어딘가에 분명히 저장해 두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명색이 '정보 관리'(information management) 전문가라는 자가, 자기 정보도 제대로 못찾아 쩔쩔매는 꼴은 민망하면서도 우습다. 워낙 자주 이사를 다녀서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늘 다시금 괴롭고, 번거롭고, 피곤하다. 마치 처음 느끼는 감정인 것처럼 낯설게, 그렇게 괴롭고, 번거롭고, 피곤하다. 어머니는 날더러 "백말 띠라서 역마살이 끼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역마살'(驛馬殺)은 결코 좋은 말이 아니다. 한자가 보여주듯 '살'(殺) 아닌가. 게다가 역마다. 역에 대기시켜놓은 말. 언제든 어디론가 떠나야만 하는 말에 사람을 견준 것이니 그 또한 썩 좋을 건 없다. 새알밭에 도착한 이삿짐. 2009년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