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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Big Sur D-2: 기차 여행

캘리포니아 빅서 (Big Sur) 마라톤은 4월27일 일요일. 빅서가 멀지 않은 몬터레이 - 실제 주소지는 시사이드 -에 호텔을 잡았다. 가는 길은 1박2일의 기차 여행. 씨애틀과 LA 간을 운행하는 암트랙(Amtrak) 스타라이트의 4인용 침대 칸을 용케 예약했다. 3년전 샌프란시스코에 놀러 갈 때 즐겁게 이용해본 경험 (당시 글은 여기) 때문에 다시 예약한 것. 하지만 그새 두 아이가 큰 탓인지, 아니면 우리 구미가 더 까다로워진 것인지, 예전만큼 낭만적이라거나 편안하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 물론 그래도 좋았지만... 일기 삼아 여기에 적어둔다.



방 거울에 비친 얼굴 보고 아내와 둘이 장난을 친 것인데, 성준이가 저도 끼워달라고 해서 다시 찍었다. 성준이는 엄마 아빠가 하는 일엔 꼭 저도 끼어들어 훈수를 둬야 직성이 풀린다. 



4인용 침대차. 이 자리가 침대가 되고, 위에 접힌 침대를 펴서 내리면 대략 네 명이 잘 수 있는데, 어른 넷이 자기는 무리다. 두 사람 자리가 어린이 용처럼 작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마음놓고 두 다리 쭉 펴고 여행할 수 있는 교통 수단이 기차 말고 또 어디 있으랴! 비행기도 가능은 하겠지만 내가 4인용 침대 칸에 지불한 총액의 서너 배는 내야겠지. 그것도 1인용으로.



동준이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아주 편안해 했다. 밥 때 되면 밥 먹으러 오라고 방송해 주고, 점심과 저녁은 승무원이 와서 미리 식당차 예약까지 해주니 그보다 더 편한 게 어디 있을까!



성준이가 신나서 위층의 작은 침대를 펴 그 위에 올라갔다. 성준이를 재우면 딱 알맞을 크기였지만 안전벨트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결국 아래 층에 재웠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 차에 왔다. 아침 9시35분에 출발해 다음날 오전에 닿는 시간 계획이라, 우리는 점심, 저녁, 다음날 아침, 해서 세 끼를 여기에서 먹었다. 식사는 요금에 미리 포함돼 있어서, 메뉴에 있는 음식 중 가장 비싼 것만 골라 먹어도 따로 돈을 내지 않는다. 4인용 침대 칸에, 세 끼 식사에, 셀프로 무한 리필이 가능한 커피 등등을 다 포함해서, 네 명 요금이 1천 달러를 약간 넘었다. 환상적으로 싼 가격, 특히 캐나다의 VIA Rail과 견주면 몇 분의 1 수준이었다. 



성준이의 점심 메뉴는 핫도그. 다른 비싸고 맛난게 있는데도 굳이 이런 걸...



기차밖 풍경. 숲도 지나고, 공장 지대도 지나고, 터널도 지나고, 도시도 지나고, 바다도 지나고... 차창 밖 풍경이 다채롭기 그지 없었는데, 그 풍경을 좀더 만족스럽게 감상할 수 있도록 유리창도 키우고, 아니 그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리창을 깨끗이 닦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 공장 지대 중 하나...여기가 어디더라? 오리건(Oregon) 주 어디쯤인 것 같은데...



그리고 이곳은 오리건 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그리고 문화적으로도 가장 풍요롭고 다채로운 포틀랜드다. 전에 와본 적이 있어서 퍽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저런 물 탱크만 보면 꼭 카메라에 닮고 싶어진다.



여긴 유진(Eugene)이다. 미국의 육상 경기와 관련된 행사가 많이 열리는 동네다. 3년 전과 그대로인, 상점의 벽화가 여전히 소박했다. 



암트랙의 메뉴판. 겉볼안이라고, 음식 폼은 좀 덜 나도, 맛은 퍽 괜찮았다. 



저녁으로 먹은 암트랙 시그너처 스테이크... 역시 보기보다 맛 있었다. 옥수수알도, 밥알도 짜지 않아 좋았다. 기차 여행의 매력 중 하나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즐기며, 덜컹덜컹 흔들리는 리듬감 속에서, 안락하고 평화롭게 식사를 즐기는 것이 아닐지...


밤이 가까워지면서 기차는 오리건 주와 캘리포니아 주 경계를 통과하기 시작했는데, 산악 지대여서 그런가 때늦은 눈이 내렸다. 사방이 이렇게 갑작스러운 설원 풍경을 연출했다. 빠르게 지나가는, 하얀 눈에 덮인 침엽수림이 사뭇 장려해 보였다. 그렇게 밤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