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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의 '철학 서한 혹은 영국에 관한 편지'


원서 제목: Philosophical Letters or Letters Regarding the English Nation

한글 제목 (가제): 철학 서한 혹은 영국에 관한 편지

지은이: 볼테르

영역: 프루던스 L. 스타이너 

출간일: 2007년 3월1일

출판사: 해켓 퍼블리싱 컴퍼니

종이책 분량: 158페이지


개요

편지의 형식을 빌린,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 볼테르의 영국 관련 에세이, 혹은 비평.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거의 적대적 관계였고,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임에도 볼테르는 전반적으로 영국의 정치, 종교, 문화, 과학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물론, 곳곳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직접 비교하면서 종종 영국의 제도, 영국의 지성, 영국의 종교 등이 프랑스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용기 있게 주장함. 그 때문에 볼테르의 ‘철학서한’은 당대 프랑스 사회에서 커다란 논쟁과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금서의 굴레를 썼고, 심지어 프랑스 의회는 책을 모두 태워버리라는 극단적 적대감까지 드러냄. 그 결과 볼테르는 파리를 떠나, 로레인(Lorraine)이라는 이름의, 당시까지는 아직 프랑스에 통합되지 않았던 소규모 독립국과 프랑스의 국경 근처에 있는 시레(Cirey)로 도피해야 했음. 그러나 이후 ‘철학서한’은 그 내용의 명철함과 시대를 앞선 볼테르의 선지적 견해, 그리고 볼테르 특유의 위트 있고 유머러스한 문체 때문에 당대의 베스트셀러로 환영 받음. 18세기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볼테르의 통찰을 잘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이 믿는 바를 용기 있게 설파하는 지식인의 전범을 보여주는 고전.


해설

1733년과 1734년 영어판과 불어판으로 동시 출간된 ‘철학서한 혹은 영국에 관한 편지’는 볼테르의 뜻하지 않은 영국 체류 경험에서 비롯했다. 1726년 프랑스의 명문 귀족 출신인 슈발리에 드 로앙과 언쟁을 벌이는 바람에 바스티유 감옥에 갇힌 그에게 영국으로 망명한다면 풀어주겠다는 조건이 제시된 것이다. 볼테르는 3년 가까이 이어진 망명 생활 동안 영국의 다채로운 정치, 사회, 문화 양상을 체험하고 관찰할 기회를 얻었고, 알렉산더 포프, 조너선 스위프트, 윌리엄 콩그리브, 조지 버클리, 새뮤얼 클라크 동 당대 영국의 여러 작가, 지식인들과도 교류했다. ‘철학서한 혹은 영국에 관한 편지’는 그러한 여러 체험과 관찰, 숙고의 결과물이다.


‘철학서한’은 모두 스물다섯 장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첫 네 장은 영국의 퀘이커 교도에 대한 내용(제1-4신)이고, 영국의 국교 (제5신), 장로교 신자들 (제6신), 소치니파 교도 혹은 반(反) 삼위일체론자들 (제7신), 영국 의회 (제8신), 정부 (제9신) 등에 대한 내용이 다음 편지들의 주제로 등장한다. 


이어 상업 (제10신), 천연두 접종 (제11신), 재상까지 지낸 영국의 유명 지식인 베이컨 (제12신), 존 로크 (제13신), 데카르트와 뉴턴의 비교 (제14신), 인력(引力) 체계 (제15신), 뉴턴의 광학 (제16신), 무한대와 연대기 (제17신), 비극 (제18신), 희극 (제19신) 등 그야말로 박물학적 주제들이 볼테르만의 시각으로 그려지고, 문학을 장려하는 귀족들의 사례 (제20신), 로체스터 백작과 월러라는, 당대에는 유명했겠지만 지금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두 인물에 대한 글 (제21신), 그리고 알렉산더 포프와 당대의 몇몇 유명 시인들에 대한 평가 (제22신)가 이어진다. 


문인들에게 마땅히 표해야 할 존경 (제23신), 프랑스와 비교한 영국 학계의 풍토에 대한 글 (제24신)에 이어, 블레즈 파스칼의 대표작 ‘팡세’에 대한 볼테르의 신랄한 비평 (제25신)이 대미를 장식한다. 그리고 부록으로 1728년에 쓴 것으로 짐작되는 ‘영국에 관한 편지’에 대한 구상과 제안서가 딸려 있다. 



볼테르의 ‘철학서한’은 흥미롭다. 문체는 경쾌하고 간결하며, 어휘는 평이하고 친근하다. 어려운 논리와 난해한 어휘로 지식인인 체하는 ‘포즈’도 없다. 논지도 전반적으로 직설적이다. 때때로 은유를 쓰기도 하고, 짐짓 모르는 척, 혹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한 몸짓 – 아니 글투 –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웬만한 독자라면 볼테르의 진짜 의도를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도록 그저 얄팍한 베일만을 쓰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상업과 상인을 천대하지 않고 도리어 권장하고 존중하는 영국의 풍토를 프랑스의 상황과 견주면서 혼잣말 하듯 내놓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다. 


‘그렇지만 나는 어느 쪽이 나라에 더 유용한지 알지 못한다: 왕이 언제 기침하고 언제 침실로 드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장관 대기실에서는 노예처럼 굴면서도 밖에서는 짐짓 고귀한 척하는, 파우더 바른 가발을 쓴 귀족인지, 아니면 나라를 살찌우면서 자신의 회계실에서 수랏과 카이로 같은 먼 지방까지 주문서를 보내며 세계의 복지에 기여하는 상인들인지…’ 


볼테르의 글은, 아니 불어로 쓰인 그의 글을 번역한 프루던스 스타이너의 영문은 더없이 평이하면서도 맛깔스럽다. 아마도 당시의 여러 정치 사회 풍토와 현실의 사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그것을 자신의 주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볼테르의 민활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볼테르의 글에서 또 하나 돋보이는 부분은 근래에 와서 자주 애용되는, 서로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형용사/부사와 명사/동사를 조합함으로써 때로는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참신성과 시각성을 독자들에게 안겨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성직자들의 ‘경건한 의도’ (pious intentions)라거나, 무력 정복의 ‘눈부신 오류’ (dazzling folly), ‘숭고한 착각’ (sublime illusions), 혹은 파스칼에 대해 ‘숭고한 인간혐오론자’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볼테르의 글이 거의 300년 전에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낡았다거나 구태의연하다는 느낌대신 더없이 현대적이고 참신하다는 느낌으로 읽히는 이유 중 하나로 그처럼 시대를 앞서간 문장 구성력을 들어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볼테르는 또한 역사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나 인물을 단 한두 마디로 요약해 내는, 발군의 문재를 이 책에서 종종 과시한다. 가령 ‘그는 극장을 창조했다’ (He created the theatre)라는 말로 셰익스피어의 문학사적 성취를 요약한다거나, 뉴턴에 대해 마치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표현하듯 ‘그리고 뉴턴이 나타났다’ (This man has come)라는 말로 그의 과학사적 의미를 정리하는 식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교하는 대목들에서도 그는 남다른 민활성과 재치를 과시한다. 이를테면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를 ‘프랑스의 라블레’, 알렉산더 포프를 ‘영국의 부알로’, 윌리엄 콩그리브를 ‘영국의 몰리에르’로 표현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편지들은 시간의 시험대 앞에서 그 유효성을 속절없이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예컨대 천연두 접종에 대한 글이나 뉴턴의 인력과 광학을 설명하는 대목, 그리고 지금은 그 문학적 영향력을 상실한 여러 작가와 시인들에 대한 상찬, 퀘이커 교도나 영국의 종교 제도에 대한 글들이 그렇다. 또 영국의 작가와 시인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직접 불어로 번역해 프랑스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대목들이 후반부에 나오는데, 한국어로 번역할 때 이 부분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작지 않은 고심거리가 될 것이다.


글의 내용은 곳곳에서 300년 가까운 세월의 더께를 숨기지 못한다. 따라서 볼테르의 ‘철학서한’을 마치 21세기에 씌어진 글인 양 당대성을 느끼면서 읽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당대의 사회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한 상태에서, 3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갔다고 가정한 상황에서 볼테르의 글을 읽는다면 그의 여러 편지들은 – 스물다섯 장 모두는 아니어도 – 돌연 현대성을 회복한다는 점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가령 영국 사회의 천연두 접종을 이야기하면서 그를 배척하는 프랑스 사회의 풍토를 비판하는 볼테르의 글은, 글이 씌어진 시기가 1734년이고 제너의 종두법이 처음 나온 것이 그로부터 60년도 더 지난 1796년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읽으면 그의 엄청난 선지적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뉴턴에 대한 상찬,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에 대한 찬사도 마찬가지다. 글에 담긴 내용의 현재성 부족 – 혹은 결핍 – 은 이른바 ‘고전’들이 지닌 필연적 운명이라고 친다면, 독자들의 의무는 그 글들에 여전히 남아 있는 저자의 지력, 아직 그를 이해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를 향해 자신의 신념과 생각을 거침없이 발언하는 용기, 시대를 앞서간 지적 통찰, 그리고 그의 문장들 곳곳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위트와 유머와 매력을 읽어내는 것이 될 터이다. 그런 면에서, 볼테르의 ‘철학서한’은, 한국에 아직 모범적인 번역본이 없다면 충분히 소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