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나는 ....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지난 화요일, 경영학과 리더십 분야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이자 ‘구루’로 통하는 마셜 골드스미스 박사 (오른쪽)의 강연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에는 편해지기’(Changing What We Can Change, Making Peace with What We Cannot Change)를 들었다. 


서른 권이 넘는 그의 저서 중에 정작 읽은 것은 단 하나도 없지만 그 동안 이러저러한 리더십 트레이닝이나 경영학 강의를 통해 그의 명성은 들어 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How Successful People Become Even More Successful’ (한국에는 ‘일 잘하는 당신이 성공을 못하는 20가지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됐다)을 전자책으로 구매했지만 첫 몇 페이지를 읽다가 중단한 상태다. 


그는 에너지에 넘쳤다.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어조와 몸짓이 금방 4, 5백명에 이르는 알버타 주정부 직원들을 사로잡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빛이 나오는 듯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도 그는 한없이 편안해 보였다. 과연 어느 정도의 훈련과 연습과 공부와 경험 뒤에 저런 경지를 만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강연에서 특히 내게 큰 울림을 준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우리의 '미디어 중독'이 너무 심하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아툴 가완데의 '체크리스트 선언'(The Checklist Manifesto)를 거론하며 강조한 '매일 정해진 질문을 던지면서 꾸준히 스스로를 향상시키라'는 것. 


행사장 표지.


미디어 중독

사실 '미디어 중독'(media addiction)은 오늘 강연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갖기는 했지만 핵심 주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의 경고가 내게는 유독 인상적으로 들렸다.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의 '미디어 중독'이 정말 심각합니다. 미디어 중독으로 인해서 낭비되는 시간이 엄청나요. 재난입니다. 우리가 직장과 가정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미디어 중독입니다. 매주 50시간씩 TV를 보고, 스마트폰에 빠져 삽니다. 그러면 TV가 나쁜가요? 아니죠, 너무 좋아서 탈입니다. 아무 프로나 보세요. 시작하면 헤어나오기 어렵습니다.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 중독은 멀지 않아 약물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보다 더 큰 사회 문제가 될지 모릅니다."


그의 말이 유독 내 귀에 박힌 것은, 나 자신이 바로 미디어, 특히 인터넷에 심각하게 중독되어 있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투루 낭비해 왔는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한 번에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고, 정기적으로 인터넷으로부터 의도적으로 절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스스로를 향상시킬 것인가 - 스스로 묻고 답하기

골드스미스 박사는, 믿거나 말거나, 매일 아침 한 젊은이로부터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매일 똑같은 서른 두가지 질문을 박사에게 던진다. 예를 들면 "당신은 어제 얼마나 행복했습니까?" (1-매우 불행했다부터 10-매우 행복했다까지), "당신은 어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웠습니까?" (예/아니오), "당신은 어제 당신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좋은 일을 했습니까?" (예/아니오) 같은 질문들이다. 그 젊은이는 물론 골드스미스 박사가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이고, 그가 읽는 질문도 박사가 짠 것이다. 매일 같은 질문을 받고 하루를 반성하면서, 더 나은 하루를 보내기 위한, 그만의 '체크리스트'인 셈이다.


그는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체크리스트' 방법을 써보라고 조언했다. 질문이 무엇이든, 몇 개든 상관없다. 내용과 갯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해서, 그것을 매일 확인하고 조금씩 개선하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박사는 강조했다. 그 조언을 들으면서, 아내와 함께, 일단 10가지 간단한 질문을 만들어 시작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

답은 이미 그의 강연 제목에 나와 있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아등바등 목을 매면서 스트레스 받고 스스로 불행에 빠지기보다는, 바꿀 수 있는 것, 그런 상황에서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는 조언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하나마나한 이야기라거나 구태의연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때로는 사소해 보이는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법이다. 바로 수동적인 질문 대신 '능동적인' 질문을 던지는 습관, 혹은 태도 변화의 크나큰 영향이다.


이를테면 직원들의 참여와 사기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여론조사를 벌인다고 가정하자. 지금까지 나온 질문의 양상은 압도적으로 '수동형'이었다. '이번에 발표된 직원들의 사기 진작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제 열린 프로그램 설명회에 얼마나 만족하십니까?' 같은 식이다. 이런 질문이 제기될 경우 그 대답은 대체로 주위 환경과 상황에 좌우된다. 이 질문에서 '나'는 제외되어 있다. 밀려나 있다.


하지만 질문을 '나는 ....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와 같은 식의 능동형으로 바꾸면 대답은 달라진다. '... 하기 위해'의 '...'에는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 의미를 찾기 위해/ 직원들의 참여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 긍정적인 대인관계를 맺기 위해/ 명확한 목표를 세우기 위해/ 생산적인 회의를 만들기 위해 등등. 그렇게 질문을 던지면 돌연 '나'가 그 질문의 중심에 서게 된다. '나는' 무엇을 했는가? 그저 수동적으로, '아 이 지겨운 회의 언제 끝나나' 한탄하고 머리를 쥐어뜯기만 했지, 정작 그 회의가 덜 지겹도록, 효율적으로 진행되도록, 더 나아가 생산적인 모임이 되도록 내가 노력한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은 안한 게 아닌가?


지루하기 짝이 없는 회의에서 겨우 빠져나와 자리로 돌아가면서 동료와 이런 말을 나눈다. 흔한 풍경이다. "이번 회의, 정말 지겨웠지?" "그러게...정말 이 따위 회의는 빨리 없어져야 할텐데." "대체 이런 무의미한 회의를 왜 하는거야?" 


이런 대화는, 그러나 두 사람의 패배자(loser)만을 보여줄 뿐이다. 왜냐하면 그저 뒤에서 불만만 터뜨리고 상관 험담만 늘어놔 봤자, 그로 인해 마음 상하고 스트레스 받는 것은 나 자신이지 회의나 상사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불만이나 한탄, 비아냥과는 상관없이, 그 지겹고 무의미한 - 혹은 그렇게 보이는 - 회의는 내일도, 다음 주에도 계속 열릴 것이고, 이들은 그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수동적으로 끌려들어가, 한 시간, 혹은 두 시간의 '회의 고문'을 견딜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루저'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결국 '나는 ...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라고 자문하고, 거기에서 발견된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 나서는 일일 것이다.  


어찌 보면 이미 다 알고 있었던 내용 같기도 하다. 알고 있었지만 잊었거나 머릿속 가장 자리에 방치해 두었던 것을, 강연을 통해 상기 받은 것 같기도 하다. 골드스미스 박사가 말하는 'MOJO'는, 사안을 '나'의 문제와, 내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문제로 나누고, '나'의 문제에 집중해서, 사안을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하는 적극적이고 전향적인 태도이자 정신을 가리킨다. 그 '모조'의 정신을, 태도를, 내 마음 속에서 키워봐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