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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는 책을 정가로 살 수 있을까?


내가 근무하는 직장 근처에 '오드리 서점' (Audrey's Bookstore)이 있다 (위 사진). 요즘 보기 드문 이른바 '독립 서점'이다. 캐나다의 경우 인디고-챕터스 (Indigo-Chapters) 프랜차이즈가 서점계를 독점하고 있어서, 독립 서점이 살아남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웬만한 도시마다 독립 서점들이 한두 개씩 있기는 하지만 인디고-챕터스의 위세에 눌려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문 닫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하긴 인디고-챕터스마저 아마존닷컴 (캐나다는 아마존.ca)의 무차별 온라인 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지만... 


각설하고, 오드리 서점은 에드먼튼뿐 아니라 알버타 주에서도 손꼽히는 전통의 독립 서점이다. 1975년에 생겼으니 40년이 다 돼 간다. 에드먼튼은 물론 알버타를 연고로 한 여러 문필가들을 초청해 사인 행사도 벌인다...는 소식을 전단으로 봤을 뿐 직접 가본 적은 없다. 


이 서점에 가끔 들른다. 마음 같아서는 매일이라도 들어가 책 구경을 하고 싶지만 - 서가마다 빼곡히 꽂힌 책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때로는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 그렇게 되지를 않는다. 십중팔구...가 아니라 거의 십중십은 책 한 권 안/못 사고 빈손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괜히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서점에서 책을 사줘야 하는데, 하는 마음뿐, 실제로는 책을 집었다 놨다 집었다 놨다 고민만 하다가 그냥 제목만 외우고 나와서 아마존이나 인디고-챕터스 온라인으로 30~50%씩 할인하는 금액으로 늘 사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제, 정말 '백만 년만에', 책 두 권을 '정가'에 샀다. 그간 져 온 마음의 빚 아닌 빚을 갚는다는 심정도 있었고, 독립 서점을 돕고 싶다는 갸륵한 충정도 작용했고, 책이란 할인가가 아닌 정가에 사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새삼스럽다기보다는 느닷없는 생각도 한몫 했다. 



그렇게 해서 구입한 것은 '미국을 만든 스물 다섯 권의 책' (페이퍼백)과 '툴'(The Tools, 하드커버)이라는 일종의 자기 개발서였다 (둘다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앞 책은 서점에서 처음 봤는데 내용이 퍽 흥미로워 보여서 골랐고, 후자는 뉴욕타임스의 출판 지면에서 한 소설가가 상찬하는 글을 보고 사봐야겠다고 별렀던 책이었다. 전자는 14.6달러, 후자는 30달러. '온라인으로 사면 이보다 절반 정도만 써도 살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애써 무시했다.


회사로 돌아와 아마존으로 책을 검색해본 게 문제였다. '미국을 만든...'은 가격 상으로 2, 3달러밖에 나지 않아서 안도했으나 'The tools'는 정가와 온라인 상의 가격 차이가 너무 컸다. 이미 페이퍼백이 지난 5월에 나온 마당인 데다 값이 내가 지불한 값의 절반도 안 되는 14.5달러였다. 아이고, 내가 무슨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결국 다시 서점으로 책을 들고 갔다. 하지만 책을 반품하겠다는 말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달에 이 책의 페이퍼백 판이 나온 걸 봤다, 그것으로 바꾸고 싶다라고 말했다. 점원은 페이퍼백이 아직 들어오지 않았노라며, 앞으로 2, 3주는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반품했다. 


회사로 돌아와 'The Tools'의 페이퍼백과, 역시 최근 페이퍼백으로 나온 다니엘 카네만 교수의 화제작 'Thinking Fast and Slow' (국내선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를 아마존.ca로 주문했다. 값은 32달러. 방금 반품한 'The Tools' 하드커버 한 권 값이었다. 


누가 보는 것도, 심판하는 것도 아닌 상황을, 혼자 머릿속으로 확대 재생산하며 뿌듯해하고 찜찜해 했던 모노 드라마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 모노 드라마를 되짚어 보면서, 과연 서점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말 독립 서점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투철한 사명감과 넉넉한 주머니 사정이 뒷받침하지 않는 한 어떻게 서점에서 '정가'에 책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새삼 고개를 쳐들었다. 


[덧붙임] 독립 서점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점은 몇몇 성공 사례가 언론에 흥미롭다는 듯 보도되는 데서 역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글은 얼마전 The Atlantic에 실린, 유명 소설가 Anne Patchett이 지인들과 의기투합해 테네시주 내쉬빌에 세운 '파나서스 북스' (Parnassus Books)의 이야기 '서점의 역습'. 다분히 아마존닷컴을 스타워즈의 '제국'쯤으로 상정한 듯한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