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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vs. 전자책 vs. 태블릿

혹자는,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라고들 말한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하다. 하지만 내 체험을 돌아보며 곰곰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 못지않게 그것을 전달하는 형식 또한 중요하다라거나, 심지어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쪽으로 더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14배 루페(소형 확대경)로 본 '아마존 킨들 페이퍼화이트' (Amazon Kindle Paperwhite)의 활자. 글자의 선명도가 정말 좋아졌다는 생각이다. 루페는 과거 임업 분야에서 일할 때 수종을 가리기 위해 쓰던 것. 


캐나다가 낳은 '미디어 구루'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 '미디어는 우리 자신의 연장(延長)'이라거나, '우리는 도구(tools)를 만들고, 도구는 다시 우리를 바꾼다'라는 말도 했다. 내가 '만든다'라고 번역한 매클루언의 원문은 'shape'다. 그러니 꼭 만든다는 뜻만은 아니다. 변형시킨다거나 틀을 형성한다는 뜻도 된다. 그런가 하면 훨씬 더 직설적으로, 'We make our tools and our tools make us'라고 쓰인 곳도 있다. 


요즘처럼 절실하게, 내용 못지않게 형식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적도 달리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이란 게 도무지 믿을 게 못되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런 자각을 자주 촉발시키는 매체는 책이다. 책을 접하는 방식은 점점 더 다양하게 분화하고 있다. 종이책, 전자책 (아마존 킨들), 태블릿 (구글 넥서스 7), 스마트폰, 그리고 가끔은 노트북의 전자책 리더 프로그램...


넥서스 7 사용기

책은 고장난 아이패드?


내가 주로 이용하는 것은 종이책과 킨들, 그리고 넥서스 7이다. 말은 중국의 상형문자에서 비롯한 '책(冊)이지만, 그 내용이 킨들이나 넥서스 7을 통해 전달되는 순간, 실상은 그것은 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저 편의상 '책'이라고 부를 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솔직히 가끔 두려움까지 느끼게 되는) 것은, 책을 읽는 심리랄까 정서가, 어떤 미디엄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표나게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 차이를 좀더 정교하고 상세하게 설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설익은 채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수준이다. 그 중 가장 도드라진 대목만 꼽는다면, 정신을 집중해 깊이 있는 독서를 하기에는 아직 종이책만한 것이 없다는 점이고, 그런 사실은 앞으로도 바뀌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확신의 배경에는 킨들 (혹은 그와 비슷한 e-잉크 기반의 전자책 리더들)과 태블릿의 기능적 특성이 자리잡고 있다. 


종이 책의 활자를 확대한 모습. 그 선명도에서는 아직 킨들이나 태블릿을 압도한다. 종이의 섬세한 결 위로 인쇄된 저 활자들은 마치 각자 생명력이라도 가진 것처럼 힘있다. 


종이책의 기능과 목적은 무엇인가? 독서, 독서, 독서다. 읽기. 특히 손에 잡은 책 하나만 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기능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꽝이지만 적어도 그 이용자(독자)가 한 가지 목적과 기능에 집중하도록 '강요'하는 면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종이책만의 특성이다. 킨들은 어떤가? 독서라는 목적을 표나게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이용자(독자)의 주의를 분산시킬 여지는 여전히 많다. 책 한 권이 아닌 수십, 수백 권을 담고 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도 오디오와 비디오, 게임을, 그것도 화려한 컬러로 보여주는 태블릿보다는 낫다 (킨들용 게임도 있지만 해보면 대개는 '앓느니 죽지'다).


책의 주요 성분은 무엇인가? (그림책을 예외로 친다면) 단연 텍스트다. 종이 위든, e-잉크든, 아이패드나 넥서스 7 같은 총천연색 태블릿의 위든, 책이 텍스트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종이 형식일 때 책은 독점이다. 독자에게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책을 읽거나, 던져버리거나. 그러나 킨들로, 태블릿으로 가면서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독점에서 과점으로, 더 나아가 무한 자유 경쟁 시장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온갖 화려하고 역동적이고 유혹적인 오디오, 비디오, 게임 프로그램들과 견줄 때, 과연 책이 얼마만큼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지극히 의심스럽다. 


넥서스 7의 화면. 애플의 홍채(retina) 디스플레이에 버금갈 정도로 정밀한 221dpi (1인치 길이의 선 위에 221개의 점이 찍혀 있다는 뜻)의 선명도를 자랑하지만 10배 이상으로 확대해 보면 화면의 격자망이 여실히 드러난다. 물론 맨눈으로는 식별되지 않는다. 아이패드 미니나 다른 회사의 태블릿들에 비해서는 분명 더 정밀한 글자를 보여주지만 역시 종이책에 견줄 바는 못된다.


요즘은 아침마다 고민한다. 종이책을 들고 갈까, 킨들을 가져갈까, 아니면 넥서스 7을? 아침 출근길에는 무엇을 선택했든 책을 읽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휴식을 취한 다음이라 의지력과 집중력이 팽팽할 때다. 태블릿을 고른 경우, 책을 읽다 말고 이메일을 들여다보거나, 컬러 그림과 사진이 많은 잡지로 갈아타기도 하지만 대개는 책에 - 심지어 다소 따분한 내용인 경우에도 - 집중한다. 하지만 피곤해진 오후 퇴근길은 다르다. 하루종일 심신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소진하고 난 다음에는 흥미진진한 범죄소설 류가 아닌 한, 책에 오롯이 집중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종이책을 들고 올걸...하고 후회하는 순간이다. 


스스로 미디어에 단단히 중독되었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하고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문제는 너무나 자주, 그런 자각과 인정의 수준에서 끝나고 만다는 점이다. 정보의 폭주와 범람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 정보를 공급하는 파이프가 너무 많다는 점도 큰 문제다. 잠자리에 들 무렵, 제대로 읽거나 배운 것 없이, 디지털 정보의 늪에서 헤매다 시간을 다 흘려버렸다고 스스로 한탄할 때가 많다. '미디어 중독'을 벗어나는 것을, 혹은 '미디어 소비 시간'을 조절하는 것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