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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사스카툰

발표 시작 5분전.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청중이 적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좌석이 거의 다 차서 안도했다. 발표문 제목은 '소셜미디어가 기록정보 관리에 제기하는 도전들' (Social Media and Records and Information Management Challenges). 


알버타 주의 동쪽 이웃 주인 사스카체완 주의 사스카툰에 사흘을 머물렀다. '기록 정보 관리' 쯤으로 번역될 'Records and Information Management'와 관련된 'ARMA Canada Conference'에 발표자로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행사는 일요일인 6월2일부터였지만 나는 월요일 저녁에, 마지못해 날아갔다. 


'마지못해'인 까닭은 이번 행사의 참가 비용을 직장으로부터 지원받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냥 청중으로서의 참가자가 아닌 발표자로 나서는데도, 내 직장의 CIO는 '주 밖으로 출장을 가는 경우는 차관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라는 규정에 겁을 먹고 - 혹은 자기 위로 두 단계나 더 올라가는 승인 절차를 받는 게 귀찮아서일수도 -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내 상관인 Director가 그냥 놀러가는 게 아니라 발표자로 가는 것이니 승인해달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노'였다. 나는 컨퍼런스 주최측에 이미 참가하겠다고 약속했고, 호텔까지 예약한 상태였다. 변명을 하거나 사실을 이야기하고 가지 말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결국 내 주머니를 털어 가기로 했다. 


ARMA Canada Conference가 열린 Radisson 호텔은 깔끔하고 고급스러웠다. 분위기도 좋았고, 음식도 훌륭했다. 발표자 신분이어서 참가비는 면제였다.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CIO가 승인을 내주지 않은 이유가 근거없는 억측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그리고 이 행사 참가 비용보다 두 배나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에드먼튼에서 벌어지는 컨퍼런스에 대한 또 다른 내 참가 요청은 아무 어려움 없이 승인되었다는 점만 밝혀두자. 그런 속사정 때문에, 컨퍼런스 장에서 만난 내 바로 옆 부서의 직원들이 썩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잘못은 물론 아니지만, 속이 쓰렸다. 대체 내가 무슨 부귀 영화를 보겠다고... 


행사가 열린 Radisson 호텔 (왼쪽). 


각설하고, 발표는 그럭저럭 잘 진행됐다. 청중도 많았고, 반응도 좋았다. 이런 발표 경험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겠지, 그리고 어제 오늘 듣고 배운 정보와 지식이 내 업무 지식을 더욱 살찌우겠지, 라는, 막연한 위안을 머리 속에 떠올리려 애썼다. 그 와중에도, 좀더 경험과 실력을 쌓아서 하루빨리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겠다는 욕망은 더욱 강렬해졌다. 


아래 사진들은 사스카툰에 혼자 머물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혼자 털레털레 돌아다니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했다. Wish you wer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