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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리샴의 'Racketeer'


줄거리

맬컴 배니스터의 앞길은 별로 밝아 보이지 않는다. 전직 변호사였던 그는 지금 10년형을 선고 받고 메릴랜드 주 프로스트버그 근처의 연방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앞으로 남은 5년을 보내게 될 프로스트버그의 교도소가 지금까지 전전한 다른 교도소들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편안한 수감 생활을 그렇게 표현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최소 경비 상태의 개방 교도소라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그 또한 무고한 누명을 쓰고 인생을 망치게 됐다고 믿는 쪽이다. 악명 높은 사기꾼이자 고위 정치 로비스트의 노련한 해외 자금 유출 행각에 멋도 모르고 휘말렸다가 덤터기를 썼다는 것.


그런 그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온다. 연방 판사인 레이먼드 포싯이 살해되는 드문 사건이 벌어지는데, 배니스터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FBI는 사건이 사건인 만큼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지만 아무런 증거도, 동기도, 용의자도 찾지 못한 채 답보 상태를 거듭한다. 배니스터는 FBI,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대신 자신을 무죄 방면하고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넣어달라고 요구한다. FBI의 첫 반응은 물론 냉담했다. 이런 상황을 적당히 악용해 감옥을 벗어나 보려는 사기꾼들이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배니스터의 말투와 태도에서 확실히 뭔가 있다라고 직감한 FBI 측은 결국 그와의 거래에 나선다.


한 치의 진전도 보이지 못하던 수사는 돌연 활기를 띠고 용의자와 그 주변 인물들이 속속 체포된다. 배니스터는 꿈에도 그리던 자유를 얻고, 증인 보호 프로그램 덕택에 상하의 플로리다 지역을 새 인생의 정착지로 선택한다.


문제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새로운 문제가 거기에서 시작된다. 체포된 용의자는 노련한 FBI 수사관들의 심문에 휘말려 범행을 자백하지만 곧 수사관들의 압력과 속임수에 속아넘어간 것이라며 자백을 번복하는가 했더니, 다시 범행을 인정했다가, 또 다시 모든 게 다 FBI의 사기극이라며 펄펄 뛴다. 한 편 용의자는 누가 자신의 이름을 불었는지 금방 눈치채고 갱단의 일원인 형제들을 풀어 배니스터를 좇게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배니스터의 새로운 이름과 거주지가 들통나고, 정부 측은 다시 그의 신원과 행방을 바꿔야 하는 위기가 찾아온다.

 

독후감

존 그리샴의 신작이다. 그리샴은 내놓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그 이름을 올리는, 몇 안되는 마이다스의 손중 하나다. 이 소설은 왜 그리샴인지, 왜 그렇게 늘 인기일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준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책장 넘어가듯, 그렇게 술술 읽어가게 만드는 이야기 솜씨. 그리고 어렵고 따분하고 복잡할 것 같은 법 얘기를, 마치 날씨 얘기 하듯 너무나 평범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문장력. 어디 쯤에서 찔러야 독자가 깜짝 놀라거나 흥분하거나 긴장할지 정확히 파악하는 내공.


이 소설의 경우도, 위에 소개한 줄거리와 책 제목 Racketeer가 선뜻 연결되지 않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소설의 핵심은 그 다음부터다. 배니스터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의 내용이 놀랍게도 외부로 유출되는 그 순간부터다. 배니스터는, 이제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증인 보호 프로그램이고 뭐고 나 혼자 판단하고, 나 혼자 은신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미 자유인 신분이니 FBI 측으로서도 그를 막을 도리는 없다.


자 그러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버는) 모리배, 협잡꾼이라는 뜻의 ‘Racketeer’가 누구인지 대충 감이 잡히기 시작할 것이다. 배니스터가 어떻게 주변의 온갖 인물은 물론 미국 최고의 수사 기관을 감쪽같이 빼돌리면서 어마어마한 거금을 손에 넣게 되는지, 그러면서도 실제 범인은 어떻게 잡히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게 이 소설의 핵심 재미라는 얘기다.


이 소설에는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없다. 그냥 사람이다. 선과 악이 뒤섞인 보통 사람, 물욕, 명예욕에 눈먼 보통 사람, 그리고 그런 보통 사람을 교묘하고 용의주도하게 속여서 그의 전재산을 훔쳐버리는 반지빠른 사람….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에 다소 실망한 편이다. 배니스터가 FBI와 협상해 자유인이 되고, 그의 제보로 체포된 용의자가 과연 실제 범인인지 아닌지 독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대목까지는 괜찮다. 꽤 현실적이다. 그러나 배니스터가 자유인 신분이 된 직후부터 벌이는 모리배로서의 능수능란한 연극과 사기극은 영화 오션스11’ 같은 활극을 연상시킨다. 비현실적이라는 뜻이다. 실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배니스터와 그 여자친구의 콜라보에는 뭔가 허점이 많고, 그러면서도 그 짬짜미가 들통날 수도 있다고 여기게 하는 위기 요소나 에피소드가 너무 없다. 일사천리다. 그리샴이 별로 고민하지 않고, 그간의 필력을 관성적으로 발휘해 안이하게 쓴 소설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201210월의 베스트 미스터리/스릴러로 이 책을 뽑은 아마존닷컴의 판단에 나는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소설 자체의 완성도보다 그리샴이라는 인물이 주는 중량감과 흥행성에 더 무게를 둔, 한 마디로 얄팍한 상업적 판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별점은 다섯 개 만점에 세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