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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리처 시리즈 #17 '수배자' (A Wanted Man)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 <A Wanted Man> (수배자)을, 글자 큰 '라지 프린트' 판으로 읽었다. 이 소설은 지난 9월 출간되자마자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모았다. 그만큼 잭 리처의 지명도가 - 바꿔 말하면 리 차일드의 인기가 - 높다는 뜻이겠다. 미국/캐나다와 영국에서 동시에 출간됐는데 이번에도 표지는 다르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는 영국쪽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잭 리처 시리즈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은 여기).


리처가 탁월한 헌병으로 13년을 보낸 뒤 사직서를 던지고 부랑자를 자처한 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부랑자'를 사전에 찾아보면 '부랑자 [浮浪者] - 일정하게 사는 곳과 하는 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 떠돌이, 야인'이라고 돼 있다. 그 뜻에 리처보다 더 부합하는 소설 속 주인공도 달리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다.) 


오늘도 변함없이, 리처는 미국 어느 지역의 어느 도로 가에 서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자기 딴에는 가장 친근하고 선량해 보이는 표정으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히치하이킹은 날이 갈수록 더 힘들어진다. 2m 가까운 거한인 리처의 몸집과 코뼈가 부러져 반창고를 붙인 얼굴을 보고 차를 세울 사람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리처의 삶은 날이 갈수록 더 곤고해지는 것 같다.


<A Wanted Man>에서 리처는 버지니아로 가는 길이다. 전작 <61시간> (독후감은 여기)에서 전화로만 만났던 자신의 군대 후임자에게 매력을 느끼고 꼭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몇날 며칠이나 걸릴지 모르는 길고 긴 히치하이킹을 통해 버지니아 쪽으로 향하는 길이다. 한밤중 어렵사리 차를 얻어탔는데 영 느낌이 이상하다. 회사원처럼 생긴 남자 둘, 그리고 뒷자리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여자 한 명. 처음에는 셋이 동료 사이로, 회사의 트레이닝을 받는 중이 아닌가 짐작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두 남자만 동료 사이일 뿐 여성은 그들과 무관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어쩌면 그 여성은 납치된 처지인지도 모른다...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왜 나를 차에 태워줬을까?


<A Wanted Man>은 리 차일드 잭 리처 시리즈가 지닌 거의 모든 장점과 단점, 미덕과 한계를 잘 보여준다. 장점은 물론 '재미'다. 이야기를 엮어가는 솜씨, 독자의 관심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은 여기에서도 절륜하다. 두운과 각운을 적극 활용한 차일드의 문장은 때때로 시를 낭송하듯 리드미컬하게 읽힌다. 그 재미도 상당하다. 리처가 추리하는 과정을 마치 해부학 강의하듯 차분하게 펼쳐 설명해주는 대목도 흥미롭다. 


단점은 중반 이후에 드러난다. 촘촘하고 치밀하던 플롯이 돌연 헤진 옷처럼 성긴 모양새로 변모하거나, 때로는 회복 불능의 거대한 구멍으로 전락한다 (전작 <61시간>의, 초대형 여객기가 미국의 레이다망에도 걸리지 않고 멕시코에서 날아온다는 설정이 그런 경우다). <A Wanted Man>의 경우, 사건이 점점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복잡해지다 못해 테러리스트 그룹으로 발전하면서 소설은 돌연 졸가리를 잃고 비틀거린다. 리처와 두 명의 FBI 요원이 거대한 기지 안에 똬리 틀듯 자리잡고 있는 수십 명을 상대로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지원부대가 도착하기까지는 무려 8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설정 등도 이해하기 어렵다. 


차일드의 리처 시리즈를 읽으며 느낀 사실은 소재를 좁게 짤 때, 다시 말해 리처의 적이 한 마을의 악덕 자본가거나 뉴욕의 악질 사채업자처럼 작은 규모나 범위일 때 소설의 스릴과 긴장감, 완성도도 더 높았다는 점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소재를 크게 벌려 상대를 미국으로 잠입한 테러리스트 그룹이나 미국내 자생적 테러리스트 그룹, 혹은 몬태나 주의 미치광이 민병대 식으로 설정할 경우, 소설의 완성도나 사실성, 긴장감은 현저히 떨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어느 경우든, 적어도 소설의 전반부까지는 이야기의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유지하는 힘이 상당하다는 점은 꼭 짚어야 하겠다.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꾸며내는 차일드의 솜씨 하나는 굉장하다는 말이다.


잭 리처 시리즈를 읽으면서, 특히 시리즈 후반부로 가면서, 나는 종종 리처의 마지막이 궁금했다. 아니, 걱정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리처는 과연 언제까지 부랑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리 차일드는 리처의 노년을 언제쯤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처리할까? 혹시 리처가 버지니아에서 운명의 여인을 만나 정착하는 것으로 시리즈를 완전히 종결할까? 아니, 아직은 어렵겠지, 리처가 찾아가는 여자는 이미 다른 지역으로 전보 배치됐으니... 


어쨌든 분명한 것은 리 차일드가 언제까지고 리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소설을 쓸 수는 없으리라는 점이다. 차일드와 리처의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차일드가 그리는 리처라는 인물이 당대의 시대상을 언제까지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또 독자들은 언제까지 리처에게 공감과 응원의 박수를 보낼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리처라는 인물이 갖는 당대의 유의미성 같은 것. 이 소설의 별점은 다섯개중 세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