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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공항에 갇히다 - 오리건 주 포틀랜드 여행 엿새째(월)

포틀랜드는 물론 오리건 주에서 가장 큰 신문 '오리거니언'. 여행지에서 맛보는 큰 재미 중 하나는 그 지역의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것이다. 오늘 아침 신문에 마라톤 기사가 크게 나왔다. 사진에 나온 여자부 우승자가 포틀랜드의 전직 육상선수다.


아침, 성준이가 베개 밑에서 투니(캐나다의 2달러 동전을 부르는 말)를 발견하고 좋아하는 모습. 이의 요정이 자기 이를 가져간 대가로 놓고 간 돈이기 때문이다. 


평화로운 일상은 거기까지. 타고 갈 알래스카 항공사에 난리가 났다. 7시40분쯤 미국 동부 어디쯤에선가 광 케이블이 잘려 항공사의 모든 전산망이 마비된 것. 항공사의 카운터 주위로 사람들이 장사진을 쳤다. 컴퓨터는 다운됐고, 항공사 측은 속수무책, 참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기술과 문명은 사상 유례없이 진보했지만 도리어 그런 진보는 특정 기술이나 장비에 대한 의존성을 턱없이 높여 놓았고, 그 때문에 어느 한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버릴 위험성도 더 커졌다. 정전과 전산망 마비는 그런 기술의 역설, 진보된 문명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가장 큰 사례인 것 같다. 아래 신문 보도의 사진에서처럼, 알래스카 항공의 포틀랜드 공항 매니저가 나와 "전산망이 정상으로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적어도 3시간에서 8시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양해해달라"라고 말하는 게 이들의, 우리의 대응이었다. 공항에 갇혀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 혹은 그게 더 길어져 근처 호텔에서 하루를 묵어야 하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는 현실적 가능성이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기사. 전산망이 회복되었다는 이 기사를 볼 무렵, 우리는 어렵사리 다른 항공사(에어캐나다)의 다음날 탑승권을 구한 뒤, 알래스카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보상 티켓으로 공항 근처 호텔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아침 여덟시부터 오후 2시30분까지 6시간 이상을 공항에 갇혀 있어야 했다. 


공항에서 기다리는 우리 가족.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오늘 캐나다로 갈 방법이 없었다. 알래스카 항공편은 모조리 불통, 다른 항공사의 티켓을 재구입할 경우 1인당 1000불을 호가했고, 그나마도 라스베이가스나 콜로라도 주 덴버를 경유하는 밤 비행기(red eye) 편뿐이었다. 이보다 더 무력한 상황이 또 있을까 싶었다. 차라리 렌터카를 빌려 집까지 달려볼까 하는 상상까지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일까지 휴가를 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도 우연이라면 우연. 임시로 묵게 된 공항 옆 호텔이 또다시 '레드 라이언'이다. 거기에 딸린 레스토랑에서,  알래스카 항공이 제공한 음식 쿠폰으로 피자와 파스타 등으로 저녁을 먹었다. 내일 아침 6시55분 비행기는 예정대로 이륙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