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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黑山>


"저녁에 빛들은 수평선에 내려앉았다. 수평선은 눈동자 속의 선이고 물 위의 선이 아니라는 것이 물가에서는 믿기지 않았다. 시야의 끝에서 물과 하늘이 닿는 허상이 펼쳐졌으나, 닿아 있는 자리에서 물과 하늘 사이는 비어 있어서 수평선은 아무런 선도 아니었고 그 너머에 또 다른 수평선이 지나갔다."


김훈의 소설 <黑山> (학고재)을 읽었다. 한국에 한 달 남짓 다녀 온 후배 편에 구했다. 그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김훈이라는 이름을 보고 부탁했다. 김훈은 글쓰기와 글읽기에 관한 한 나의 우상이다.



<黑山>은 그 제목만큼이나 어둡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제목은 중의적이다. 정약전이 유배된 흑산도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절망과 고통, 격절을 상징한다. 


원양으로 가는 배들에게 흑산은 마지막 섬이었고, 하얀 바다와 잇닿은 검은 바다의 섬이었다. 흑산의 검을 흑黑 자가 단 한 개의 무서운 글자로 이 세상을 격절시키고 있었다. 섬에 처음 들어왔을 때, 정약전은 그렇게 느꼈다. 백성의 피를 빨고 기름을 짜고 뼈를 바수고 살점을 바르고 껍질을 벗기는 풍습은 육지나 대처와 다르지 않았으나 태어나서 품 팔아서 먹고 또 죽는 방식은 달랐다. 박민剝民의 제도와 방식이 같다 하더라도 섬은 아득히 멀어서 간여할 자가 없었고 물과 바람에 얽힌 사슬을 풀어낼 수가 없었다. 정약전은 흑산의 검을 흑 자가 무서웠으나, 무서움은 섬에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흑 자의 무서움은 당대 전체에 대한 무서움과 같았다. 정약전은 그 무서움의 안쪽을 스스로 들여다보았는데,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의 흔적이 거기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듯도 했다.


나는 처음 제목을 봤을 때 김훈 선배가 무협 소설을 쓰셨나? 했다. 김훈의 부친이 당대의 인기 무협소설가 아니었나. 그 정도로, 후배에게 이 책을 사다 달라고 부탁할 때까지도 책의 내용에 무지했다. 웹을 뒤지면 금방 나올텐데 그럴 생각을 못했다. 그냥 읽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김훈의 책을 누가 평한들 내 성에 차지는 않을 거라는 예단도 있었다. 물론 김훈의 문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중언부언에 만연체, 과장된 비장함이 넘치는 고어체 그것도 틀린 지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김훈의 문체는, 컴퓨터 자판으로는 절대로,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문체라는 것. 그처럼 유장하게 흐르면서 중첩하고 휘돌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두겹 세겹 감싸는 문장은, 모든 것을 즉자적이고 스타카토 식으로 몰아대는 키보드 작업으로는 불가능하다. 원고지에 꾹꾹 눌러쓰고, 썼다가는 지우개로 지워 다시 쓰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거기에 새로운 생각을 잇고 붙이는, 피나는 '육필' 작업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 문장이다. 컴퓨터를 이용한 글쓰기와, 원고지 위에 한 자 한 자 손으로 글씨를 채워넣어 문장을 완성하는 글쓰기가 얼마나 다른지는, 웬만큼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대목이다.



<黑山>은 그 탄압 받는 이, 죄없이 피 흘리는 이, 무고하게 맞는 이, 부당하게 죽임을 당하는 이, 뼈 빠지게 일하고도 굶어죽는 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죄없는 어쩌면, 힘 없고, 반항할 줄 모른 게 죄였을까? – 백성들이 갖은 방법으로 수탈되고 고통 받는 '박민剝民'의 장면은, 김훈의 짐짓 담담한 문체 때문에 더욱 소름끼치게 실감된다.


흑산도로 유배간 정약전과, 그의 조카사위이자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인 황사영이 자주 등장하지만 이들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다. 주인공은 문풍세, 마노리, 조풍헌, 박차돌, 육손이, 창대, 장팔수, 아리, 강사녀, 순매, 길갈녀 등 그들과 씨줄과 날줄처럼, 혹은 가깝게, 혹은 멀게 맞물리고 연결되는 수많은 백성들이다. 부패한 정권에 끊임없이 괴롭힘 당하면서, 그저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 받는 세상을 꿈꾸는 백성들이다. 신유박해의 칼날 아래 죽어간 백성들에게, 천주교의 교리는 그런 꿈과 희망일 뿐이었다.


<黑山>의 전개와 결말은 예측 가능하다. 그 시대적 배경이 신유박해 때임을 알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黑山>을 무슨 범죄 소설이나 액션물로 생각하고 다가간 독자라면 십중팔구 실망할 것이다. 어쩌면 다 읽어내지 못할 수도 있다.


내게 <黑山>은 인간 탐구였다. 역사상 거의 언제나 부조리했던 사회, 그 부정과 부패가 유독 더 심했던 한 사회에 대한 단면도였다. 죽이고 탄압하는 자의 시각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고 탄압 받는 처지에 놓인 자의 시각으로 본 사회<黑山>은 그런 사회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대접 받는 세상을 꿈꾸다 비명에 간 수많은 백성들에 대한 헌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