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2일 야후가 페이스북을 제소했다. 페이스북이 웹의 광고시스템을 비롯해 개인정보 설정, 뉴스피드, 메시지 서비스 기술 등 야후가 보유한 특허권 10개를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야후의 공격적 행보는 그러나 뜻하지 않은 악평의 후폭풍을 맞고 있다. 날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옛 닷컴 회사의 단말마적 몸부림에 불과한 ‘더티 플레이’라는 것이다.
야후의 소송이 눈길을 끄는 것은 두 당사자가 세간에 널리 알려진 기업이라는 점 말고도, 그것이 IT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소송이 매우 드물었던 소셜 네트워킹 분야라는 점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 침해 공방전에서 잘 드러나다시피, 모바일 분야의 특허 소송은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빈번했고 빈번할 전망이다.
야후가 소송에서 이길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별로 없다. 페이스북 측에서 잘 준비하기만 한다면 법정 공방까지 가기도 전에 법원에 의해 기각될 사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설령 야후가 이겨서 몇억 달러의 배상금을 받아낸다고 해도, 그것이 몰락 일로의 야후의 운명에 전기를 마련해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IT 커뮤니티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야후가 이번 소송으로 욕을 먹는 또 다른 이유는 타이밍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일반을 대상으로 한 주식 상장을 불과 한두 달 앞둔 시점이, 야후의 노골적인 의도를 지나치게 잘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2004년에도 있었다. 당시 상대는 구글이었다. 주식 상장이 임박한 시점에서 야후는 구글의 특허 침해를 주장했다. 구글은 결국 2억달러를 배상하기로 합의했다. 야후가 페이스북으로부터 노리는 것도 법정 공방전을 벌이기보다는 그 전에 상당 규모의 합의금을 받아내자는 것으로 풀이된다.
기술 혁신 돕기보다 옥죄는 특허 시스템
‘특허권 침해’를 깃발처럼 내세운 야후의 법정 도박은,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별로 놀라운 일로 여겨지지 않는다. 기술 혁신의 메카라고 불리는 만큼, 특허권을 둘러싼 법정 공방 또한 잦을 수밖에 없는 데다, 특허권을 둘러싼 법제에 허점이 많고, 이를 악용하는 이른바 ‘특허 괴물’(patent troll)들이 워낙 활개를 치기 때문이다. 특허권 트롤은 실제로 구체화한 기술도 없고 시장에 내놓은 제품도 없다.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특허로 미리 등록해 놓거나, 다른 개인이나 소규모 기업들의 특허권을 매입해 관리하면서, 그 특허를 침해하는 기업을 낚시하듯 기다렸다가 법정으로 끌고 가 거액의 배상금을 받아내는 전문업체들이다. 2006년 블랙베리로 유명한 ‘리서치 인 모션’ (RIM)이 몇 년 간의 소송 끝에 무려 6억1,250만 달러(약 7,000억원)를 배상했던 NTP 같은 곳이 대표적인 ‘특허 괴물’이다.
미국의 특허 시스템은 발명자나 그의 정당한 승계인에게 그 발명의 대가로 일정 기간 동안 배타적인 권리를 줌으로써 혁신을 보상하고 권장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부문에서는 특허 시스템이 도리어 그 반대의 효과를 나타낸다”라고 케이토 연구소(CATO)의 티모시 리 연구원은 지적한다. 너무나 많은 소프트웨어 특허가 등록되어 있어서, 이를 피하고 무엇인가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물론 소송의 폭증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모토롤라, 삼성 등은 모바일 특허를 둘러싸고 서로서로를 고소하기 바쁘다. 오피스 빌딩 전체를 채울 만큼 늘어난 ‘특허 괴물’도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 와중에서 죽는 것은 개인 발명가의 꿈, HP나 애플 같은 기업들이 보여준 ‘차고(garage) 신화’의 꿈이다.
소프트웨어가 남다른 것은 저작권과 특허 양쪽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특허는 전통적으로 백열전구나 트랜지스터, 고무의 경화(硬化) 등과 같이 물리적인 기계 장치나 프로세스를 보호하는 것이고, 저작권은 소설, 음악, 영화 같은 집필 작품이나 시청각 작품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은 이 경계를 허문다. 이들은 씌어진(written) 작품이지만 컴퓨터로 실행하면 현실 세계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 특성 때문에 법원은 1990년대부터 소프트웨어 제작자들이 저작권과 특허권 양쪽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러나 저작권 법은 소프트웨어 산업과 비교적 잘 맞은 반면, 특허는 여러 부작용을 빚었다. 작품이 만들어지면 저작권 보호는 자동으로 주어지지만, 특허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복잡하면서도 값비싼 절차가 필요하다.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베끼면 저작권 침해가 되는 데 견주어,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그럴 의도 없이, 단지 비슷한 특성을 가진 제품을 만들기만 해도 특허권을 침해한 결과가 된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은 우발적인 특허 침해를 피하려 애써 시도하지도 않는다. 신생 벤처 기업들에 특허 소송을 감당할 만한 자금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특허 침해 소송이 들어오기 전에 기업이 충분히 성장해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한편 거대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그와 사뭇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기술력으로 특허권을 축적하기 바쁘다. 온라인 잡지 슬레이트에 게재된 ‘특허 전쟁, 실리콘 밸리, 그리고 DIY 소프트웨어 혁신가들’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이 설립된 해인 1998년 이후 19,000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그에 반해 구글이 같은 기간 동안 등록한 특허는 1,100건에 불과하다. 특허의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한 탓이고, 24,000건 이상의 특허를 가진 모토롤라를 인수키로 한 것이나, IBM으로부터 1,000건의 특허를 10억달러에 사들인 것은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한 방책으로 보인다. 한편 애플이나 IBM은 설령 특허 침해 소송을 당했더라도 맞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만큼 수천 건의 자체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의 특허법 개혁
이런 문제를 인식해 온 미국 정부는 지난해 9월, 1952년 개정 이래 처음으로 특허법 개정안을 ‘리히-스미스 미국 발명법’(Leahy-Smith America Invents Act)이라는 법률로 통과시켰다 (리히와 스미스는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의 이름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 개정법으로 “기업들이 더 신속하게 아이디어를 상품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대로 여러 대기업과 관련 단체는 개정법이 무분별한 특허소송을 줄이고 저질 특허를 더 효과적으로 무효화해 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중소기업과 개인 발명가들은 특허를 받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번 개정법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다른 여러 나라의 추세에 맞춰, 그간 인정해 온 ‘선발명주의’(first to invent) 대신 먼저 출원한 쪽을 인정하는 ‘선출원주의’(first to file)를 채택한 것이다. 이 또한 자금력과 정보력 풍부한 대기업으로서는 희소식이지만 신생 벤처기업들에는 불리한 대목이다. 미국보다 먼저 ‘선출원주의’를 채택한 캐나다의 경우, 법 개정 이후 소규모 기업들의 특허 출원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출원에 필요한 비용 부담 때문이다.
개정법을 둘러싼 또 다른 비판은 그것이 작금의 특허 소송 열풍을 잠재우지 못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허국에 대한 예산 책정이 특허 발부 건수와 직접 연계되어 있다는 점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특허국이 특허 신청서를 면밀히 심사해 저질 특허를 기각해야 할 동기가 거의 없는 것이다.
온라인의 인권 단체인 ‘전자개척자재단’(EFF)를 비롯한 여러 시민 단체와 뜻 있는 전문가들은 개정법 못지 않게, 일선 법원들이 특허 남용과 유린을 막는 데 적극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허로 인정받는 기준과 조건을 지금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도 이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러한 실무적 특허 프로세스가 정착되지 않는 한, 개정 특허법이 특허 소송의 남발과 ‘특허 괴물’들의 횡포를 막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오라클 본사. 미래 세계에 온 듯한 이미지를 풍긴다.
IT 업계의 주목할 만한 특허 전쟁, 그리고 2012년을 달굴 사례들
오라클 대 구글
필요한 특허를 가질 수 없다면 그 특허를 보유한 회사를 통째로 사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세계 최대의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업체인 오라클이 선마이크로시스템즈를 74억달러에 인수 합병하면서 자바 (Java) 플랫폼까지 흡수한 일은 대표적인 사례다. 오라클은 지난 2010년 8월,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대표적 운영체제로 자리잡은 구글의 안드로이드 OS가 자바 플랫폼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오라클이 구글에 요구하는 배상 규모는 60억달러로,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인수 비용과 거의 맞먹는다. 법원은 오라클이 주장하는 피해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며 두 회사의 최고경영자들이 직접 만나 협상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양측 협상은 결렬되었고, 그 사안이 올해 다시 법정에서 다뤄질지 주목된다.
모토롤라 대 애플
모토롤라와 애플은 독일에서 격돌하고 있다. 모토롤라는 지난 2월 애플의 클라우드 서비스 ‘아이클라우드’가 자사의 기술 특허를 위반했다고 독일 만하임 지방 법원에 제소해 승리를 따냈는가 싶었으나 뒤 이은 애플의 항소로 사용 금지 처분이 해제되었다고 엔가젯이 보도했다. 한편 애플은 모토롤라의 태블릿 줌 (Xoom)이 자사의 사진 관리 특허를 위반했다며 뮌헨 제1 지방법원에 제소해 줌의 판매금지 명령을 받아냈다. 그에 따르면 모톨롤라는 독일에서 판매 중인 줌 태블릿을 모두 리콜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태가 벌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양사가 막후에서 적정선에서 타협하리라는 예측이다. 두 회사는 지난 해 4월, 이미 한 차례 격돌한 바 있다. 애플의 아이폰 3G와 아이패드 3G가 모토롤라의 특허를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양사의 격돌은 구글이 올해 안에 모토롤라를 125억달러에 인수할 예정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폰의 대결장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스트만 코닥 대 애플, RIM
사진과 카메라의 대명사였던 이스트만 코닥은 지난 1월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하지만 애플과 RIM(블랙베리 제조사)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권 침해 소송은 현재 진행형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코닥은 약 1,100건의 디지털 이미징 기술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사의 특허 침해 여부를 매우 적극적으로 추적, 감시한다.
애플은 코닥의 특허권 침해 소송에 대한 맞대응으로 코닥의 디지털 카메라, 디지털 포토 프레임, 그리고 프린터가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코닥이 파산 보호 상태에 있다는 이유였다.
코닥은 총 11,000여 건에 이르는 특허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자산 가치만도 30억달러에 가까운 것으로 추산된다. 코닥과 애플, RIM 간의 소송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궁금하지만, 코닥의 방대한 특허 자산을 놓고 인수를 시도하는 기업이 나올지도 주목거리다.
애플 대 삼성, HTC
특허 소송에 관한 한 애플은 가장 공격적이다. 특허 침해의 기미만 느껴지면 무섭게 밀어붙인다. 애플은 삼성과 HTC가 아이폰 관련 특허권을 여러 건 침해했다며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ITC는 조사 결과 HTC의 특허권 침해는 인정했으나 다른 세 건은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애플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독일 법원에, 또 브뤼셀의 유럽연합 집행기구에 특허권 침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대 구글
불구대천의 원수 관계인 듯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특허권을 놓고는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은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 ‘워드 퍼펙트’, 협업 프로그램인 ‘그룹 와이즈’ 등으로 유명한 노벨(Novell)의 특허권을 사들였다. 구글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그런 행보가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무력화하기 위한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컨소시엄을 구성해 파산한 노텔(Nortel)의 무선 기술 특허를 45억달러에 사들였다. 이 또한 구글의 안드로이드 플랫폼에는 좋은 소식일 리 없다.
애플 대 노키아
노키아는 애플과 특허 소송을 벌여 승리한 몇 안되는 기업 중 하나다. 두 기업은 ITC에 제기한 쌍방 소송을 취하하고 타협했다. 노키아는 애플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애플로부터 로열티를 받기로 했으나 구체적인 조건과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노키아는 또한 다른 이유로 특허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보유한 모바일 특허가 워낙 많아, 이를 인수하려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그와 비슷한 이유로 관심을 모으는 또 다른 기업은 블랙베리의 제조사인 RIM이다. 블랙베리의 인기가 폭락하고, 아이폰의 인기가 폭등하면서 RIM의 경영 상태도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어서, 다른 기업들의 인수 표적으로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