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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math: 앨런 뱅크스 경감 시리즈 #12

책 제목: Aftermath (여파, 후유증)
지은이: Peter Robinson (피터 로빈슨)
출판사: 하퍼콜린스
책 형식: ePub (코보 앱으로 읽음)
출간일: 2002년 7월28일
종이책 분량: 480페이지

줄거리
5월의 어느 이른 아침, 요크셔의 앨런 뱅크스 경감은 긴급 전화를 받고 리즈(Leeds)의 어느 집을 찾아간다. 경찰관 두 명이 가정 폭력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했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사건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 그 집의 지하 저장고에는 두 명이 죽어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사망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 현장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남자 경관은 범인의 손에 살해당하고, 여자 경관은 목숨을 건 싸움 끝에 범인을 체포한다. 그 범인에게 맞은 부인은 병원으로 후송된다. 

알고 보니 그 범인은 앨런 뱅크스가 오랫동안 찾아온 연쇄 강간살인범이었다. 그간 미궁을 헤매고 있었는데 뜻하지 않은 계기로 범인이 잡힌 것이었다. 하지만 범인은 여자 경관에게 맞아 식물인간 상태여서 심문이 불가능했고, 그 아내는 남편의 범죄 행각을 전혀 몰랐다고 잡아뗀다. 매맞는 아내로 늘 두려움에 떨어왔다며 피해자임을 자처한다. 게다가 가정 폭력을 신고했던 여성까지 신문이며 TV를 이용해 그 아내는 힘없는 피해자였음을 부각시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한편 범인을 체포한 여자 경관은 포상을 받고 영웅으로 칭송되기는커녕 과도한 공권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내사를 받는다. 영국 경찰의 규정상 경찰이 범인 진압이나 체포 과정에서 꼭 필요한 만큼만 공권력을 행사했는지 조사해 공공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다. 여자 경관은 모든 것이 너무나 급박했고 죽느냐 사느냐의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조사 결과는 필요 이상의 공권력을 행사했다는 쪽으로 기운다. 여자 경관은 그런 압박을 받는 한편, 피흘리며 죽어가는 동료 경관의 모습, 범인과의 목숨을 건 사투의 기억을 끝내 지우지 못해 괴로워한다.

문제의 집에서는 계속 피해자의 사체가 발굴된다. 무려 여섯 명. 그 중 한 사람은  실종 신고된 여성 중 누구와도 맞지 않아 신원 확인조차 되지 않는다. 모두 금발에 10대 후반-20대 초반의 미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뱅크스는 남편의 단독 범행일 가능성이 적다며 그 아내에 대한 의혹을 지우지 못하지만 증거가 없다. 젊은 여성 여섯 명이 집안으로 끌려와 처참하게 살해되는 동안, 어떻게 그 아내는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범행 행각을 비디오로 찍은 게 분명한데 비디오 테이프는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도 수수께끼다. 비디오 테이프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그 아내는 정말 무죄일까, 아니면 남편 못지 않은 살인마일까?

피터 로빈슨.

독후감

피터 로빈슨의 '앨런 뱅크스' 시리즈 중 12권째인 <Aftermath>(여파, 후유증)를 읽으면서, 나는 아마도 캐나다에서 가장 악명높은 커플 살인범으로 꼽히는 폴 버나도와 칼라 호몰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엽기적인 살인 행각은 캐나다 역사 자체에서 지우고 싶은 가장 어두운 기억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로빈슨도 그 사건으로부터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여느 추리범죄 소설과 달리 범인이 먼저 잡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그 범인의 아내가 공범인지의 여부는 밝히지 않음으로써 독자의 궁금증을 잘 유지시킨다. 여기에 가정폭력을 신고한 이웃 여성의 사연이 들어가면서 이야기의 다양성을 높인다. 범인의 아내를 둘러싼 순탄치 않은 과거 경력을 소급해 밝혀나가는 몫은 뱅크스 경감을 흠모하는 미모의 심리학자이고, 범인의 체포하는 과정에서 진압봉을 휘두른 여자 경관의 공권력 남용 여부를 조사하는 것은 뱅크스의 여친이자 시리즈의 주연급 조연인 애니 캐봇이다. 이들 간의 미묘한 삼각 관계도 책 읽는 재미를 더 높인다.

<Before the Poison>에서도 밝혔지만 로빈슨의 글은 단정하고 명료하다. 어정쩡하거나 모호한 묘사가 없다. 깔끔한 그림을 그려준다. 각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취향도 풍부하게 묘사되어, 그저 소설 속의 흐릿한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 현실에서 마주칠 수 있을 듯한 사실감을 잘 불어넣는다. 

<Aftermath>는 단순한 추리소설적 재미 외에도, 영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과 문제를 그 구도 속에 무난히 버무려 넣었다는 점에서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 모순과 문제는 이를테면 가정 폭력, 언론의 과당 경쟁, 청소년 문제, 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사회적 감시 기능의 역효과, 경찰 수사 과정에도 어김없이 끼어드는 정치적 고려 따위이다.

피터 로빈슨의 분신 앨런 뱅크스는 여러 면에서 헤닝 만켈의 커트 왈란더,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쉬와 겹친다. 범죄 수사에 대한 헌신과 열정이 그러하고, 그 결과 빚어진 왜곡된 부부 관계와 가정 환경이 그러하다. 사실 경찰이 하는 일을 고려하면, 경찰과 '단란한 가족'이라는 말은 거의 모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별 다섯에 다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