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와 현대 기업’은 MIT출판부에서 ‘MIT 출판부 필수 지식 시리즈’의 하나로 출간한 160쪽짜리 작은 책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에너지, 동력이 된 정보(information)의 실상을, 특히 현대 기업의 작동 과정과 연결해, 우리가 자칫 잊고 지나쳤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정보의 존재, 정보의 힘, 정보의 영향력, 정보의 중요성을 평이하면서도 꼼꼼한 필치로 전해준다.
다음과 같은 서문은 이 책의 의도와 의미를 명징하게 요약한다: '60년 넘게 컴퓨터를 써 오는 동안, 우리는 왜 컴퓨터를 쓰는지 거의 잊어버렸다. 전세계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은 매년 5천조원 가까운 돈을 정보기술(IT)에 쏟아 붓기 바빠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경제 잡지 포천이 선정한 1,000대 기업들 모두가 정보기술을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자료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모두가’ 컴퓨터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거의 모든 직종의 사람들이 ‘정보 시대’, ‘신경제’, ‘네트워크 경제’ 혹은 ‘네트워크 시대’ 같은 개념에 익숙하다고 여기는 이유이다. 우리가 아이폰, 아이패드 등 애플의 첨단 ‘i’ 디지털 기기에 열광하고, 구글의 새로운 서비스들에 관심을 쏟고, 이베이에서 물건을 사고 팔기에 여념이 없는 동안, 뭔가 다른 것이 그늘에서 진행돼 왔다.
그 ‘뭔가 다른 것’은 전체 기업과 산업을 거대한 ‘정보 처리 엔진’으로 바꾼 근본적인 대변신이었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그저 ‘쇳덩이를 구부리는’ 대신, 현대 공장의 대다수 직원들은 ‘지식 노동자’로 진화했다. 1950년의 IBM 공장은 컴퓨터 배선에 몰두하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로 북적거렸다. 지금은 컴퓨터 공장에서 무엇이든 실제로 만드는 사람은 전체의 20%도 채 안된다. 나머지는 회계원, 공급망 관리자, 품질 관리 전문가, 제작 관리자, 관리자, 분석가, 컴퓨터 과학자, 엔지니어 등이다. 은행들도 옛날처럼 많은 현금을 금고나 지점에 보관하지 않는다. 대신 많은 액수의 현금을 보유했음을 알려주는 디지털 파일을 보유하고, 어떤 고객이나 계좌에 얼마가 예치돼 있는지 관리하지 동전이나 지폐를 물리적으로 이리저리 옮기지 않는다. 다른 산업 분야도 다 그런 식이다. 수억 명이 정보와 씨름한다. 컴퓨터의 존재 덕택에 그 일을 그런 대로 해낼 수 있다. 정보에 관한 대다수 논평가들은 정보, 사실, 그리고 데이터보다 하드웨어인 컴퓨터에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의 목적은 현대 기업에서 정보가 차지하는 역할을 설명하는, 사실은 강조하는 데 있다. 한편 그 역할과 중요성에서 실제보다 과장된 대접을 받아 온 정보기술 쪽에는 그에 온당한 만큼만 눈길을 주었다. 사람들은 업무상, 통찰력을 얻기 위해, 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해, 그리고 심지어 그런 역할과 의사 결정 능력을 기계와 – 컴퓨터일 수도 있고, 컴퓨터를 내장한 기기일 수도 있다 – 공유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이용한다.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정보가 – 정보기술이 아니라 – 현대 기업의 기본 재료이며, 그러한 정보의 이용이 기업의 활동을, 우리가 불과 20년 전에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큰 폭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중형, 대형 기업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정보의 공급자이자 정보 중독자이자 지식 노동자들이다. 이 책은 그들과 그들의 일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정보의 정의, 중요성, 실제 쓰임, 향후 전망 등을 기업의 시각에서 설명한다. 다른 수많은 책들이 정보를 개인의 관점에서, 소비자의 시각에서 다룬 데 반해, 이 책은 일반의 관심이나 레이다에 잘 걸리지 않는 기업의 관점을 고수한다. 따라서 흔히 듣는 ‘정보 홍수’, ‘정보 범람’, 혹은 ‘정보의 현명한 활용법’ 같은 것은 들어 있지 않다. 오히려 그 홍수와 범람의 정보가, (적극 활용하는) 기업들에는 도리어 경쟁 우위로 작용할 수 있고, 사실상 정보의 수집, 분석, 활용을 중심으로 기업 구조를 재편하는 것이 미래의 생존 전략임을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이 책은 개론서다. 전문 용어나 기술 용어, 복잡한 표나 수식, 도표가 나오지 않는다. 필자도 밝힌 것처럼 일종의 ‘에세이’처럼 쉽게 읽힌다. 다만 자연이나 예술, 음악이 아니라 ‘정보’가 그 주제일 뿐이다.
1장은 ‘정보’의 개요를 다룬다. 날것인 데이터로부터 정보로, 지식으로, 마침내 지혜로 발전하는 정보의 피라미드 구조를 사례를 곁들여 평이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 정보의 네 가지 진화 단계에서 기업들이 포착하고 유지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정보가 ‘지식’임을 밝히면서 2장 ‘지식 경영’으로 넘어간다. 지식 경영(knowledge management)은 겉으로 표나게 드러난, 혹은 손에 잡히는 정보 자산 (예컨대 컴퓨터나 종이에 물리적으로 저장된 데이터)을 분별하고, 최적화하고, 적극 관리하는 일임을 설명하면서, 일선 기업들의 지식 경영 방식이 어떻게 변모해 왔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갈지 전망한다.
3장은 공급망 관리 과정에서 정보가 어떤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지 설명한다. 공급망 관리 (supply chain management)란 ‘제품 및 서비스의 공급자에서부터 생산, 유통을 거쳐 최종 소비자까지의 모든 자원을 통합된 개념으로 관리하여 공급망의 전체에 걸쳐 자재, 정보 등의 흐름을 통합하고 연계하여 최적화하는 경영 시스템’을 일컫는다. 공급망 관리만을 전문으로 다룬 기술서들이 많지만 일반 독자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여기에서도 필자는 아프리카 오지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부터 여성의 손가락에 약혼 반지로 끼워지는 과정을 예로 들면서 공급망의 개념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러한 공급망이 정보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이른바 ‘가치망’ (value chain), ‘서비스망’ (service chain)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디지털 정보가 그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한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일종의 정보 단위로 바뀌는, 이른바 ‘고객의 정보화’ (informationalizing customers) 현상도 등장한다.
4장의 ‘디지털 배관 작업’은 일종의 비유다. 수많은 컴퓨터 기기들, 생산 시기나 제조사가 저마다 다른 소프트웨어와 시스템들이 서로 소통되고 호환될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을 ‘배관 작업’에 비유한 것이다. 연간 수천 조원이 투입되는 디지털 인프라는 이제 시스템들의 시스템, 혹은 디지털 생태계로 자리잡아, 데이터와 정보가 어떤 네트워크를 흐르고, 어떤 장소나 데이터 센터에 저장되는지, 언제 어느 상황이나 조건에서 활용되고 분석되는지를 실시간으로 모니터하고, 조정하는 일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5장은 현대 조직의 구조를 짚고 있다. 지난 30여년 동안 현대 조직, 기업 조직이 어떻게 변모하고 진화했는지, 종적이고 상의 하달식의 위계 체제로부터, 횡적이고 권력이 분산되고 분점된 현대의 조직 구조로 바뀌는 과정에서 정보가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살핀다.
6장은 미래다. 현대 기업에서 차지하는 정보의 역할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를 점친다. 그에 따르면 첫째, 기업들은 더더욱 조직화된 사실에 기반한 활동을 펼치고, 의사 결정을 내릴 것이며, 둘째, 다른 (경쟁) 기업이나 조직의 데이터/정보 활용 방식을 비교하고, 모방하고, 개선하는 일이 더욱 일상화 될 것이다. 셋째, 지식 경영과 다른 형태의 정보 경영이 기업에서 더욱 중요한 몫을 차지할 것이며, 넷째, 세계는 더욱 더 긴밀하게 연결된 공급망, 가치방, 서비스망을 형성할 것이다.
독후감 - 장점
1. 쉽다. 전문 용어, 기술 용어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문장으로 정보를 설명하고, 정보가 기업 경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보여준다.
2. 시의성이 높다. 정보 시대, 정보 시대, 말만 할뿐, 실제 그 의미를 차분하게 짚은 책은 별로 많지 않다. 이 책은 현실을 과장하지도 않았고, 미래를 장밋빛으로 채색하지도 않았다. 담담하게 사실을 전달한다.
3. 시각이 독특하다. 정보를 소비자, 이용자 차원에서 짚은 책은 많다. 기업 입장에서 짚은 책도 많다. 하지만 기업의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어려운 기술 용어, 전문 용어 없이, 더욱이 150쪽 분량의 작은 책에 현대 기업의 작동 원리를 이처럼 알기 쉽게 풀어 쓴 책은 거의 없었다.
4. 친절하다. 본문 내용도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둔 듯 평이하지만, 책 뒤에 붙인 추천 도서 목록, 용어 설명 등은 독자에 대한 배려를 엿보게 해준다.
독후감 - 단점
1. 건조하다. 책 제목 – 국내에 소개한다면 물론 더 매력적인 것으로 바꿔야겠지만 – 에서 쉽게 알 수 있다시피, 주제 자체가 일반 이용자,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덜 흥미롭다.
2. 분량이 너무 짧다. 150쪽밖에 되지 않고, 책 크기도 문고본처럼 작다. 독자들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을 만한 조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