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8월에, '컴퓨팅의 미래: 포스트-PC냐, PC 플러스냐?'라는 글을 한국의 한 매체(엠톡)에 썼다. 옛날에 쓴 기사를 뒤적이다 보니, 10년도 더 넘은 1999년 2월에, 그와 흡사한 글을 쓴 적이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포스트 PC, PC 플러스, 운운은 이미 이 때부터 나온 것이었구나...혼자 슬몃 웃었다.
PC가 가고 '네트워크 컴'이 온다 | 정보시대 '물꼬' 바꿀 3大 새 물결들
NEWS+ 1999년 2월4일치
'인터넷의 1년은 현실의 10년'이라는 말이 요즘만큼 실감나는 때가 또 있었을까. 눈 뜨고 나면 또 다른 풍경이다. 지난해 11월24일 미국 최대의 PC통신 서비스 기업인 아메리카 온라인(AOL)이 인터넷의 상징과도 같았던 넷스케이프 인수를 발표하더니, 1월19일에는 케이블망을 이용해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 온 '앳홈'(@Home)이 검색서비스 기업 '익사이트'를 67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앳홈은 텔레커뮤니케이션스의 자회사. 그러나 텔레커뮤니케이션스가 곧 AT&T에 인수되므로 결국 앳홈과 익사이트는 AT&T 소유가 되는 셈이다.
또다른 검색서비스 기업인 '알타비스타'와 '라이코스'도 M&A 풍문에 휩싸였다. 특히 라이코스는 '타임 워너'라는 구체적인 매수기업 이름까지 나왔다. 양사는 풍문을 강력히 부인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검색기업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야후도 M&A 풍문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약 319억달러로 평가되는 엄청난 자산가치 때문에 실제 '매물'로 나온다고 해도 이를 선뜻 살 만한 기업은 별로 없다. 그런가 하면 NBC 방송과 CNET이 공동 소유한 검색기업 '스냅'은 1월19일 '사이클론'이라는 코드명으로 고속 서비스를 준비 중이라고 발표했다. GTE 인터네트워킹과 SBC인터넷 서비스, 벨 애틀랜틱 인터넷 솔루션스 등의 네트워크를 통해 서비스될 스냅의 고속 서비스는 NBC의 다양한 정보는 물론 롤링 스톤, 타워레코드, 소니 등의 정보와 상품을 다루게 된다.
한편 세계 1, 2위를 다투는 전자제품 회사인 필립스와 소니도 인터넷 레이더에 잡혔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와 손잡고 벤처기업을 만들기로 했다는 소식. 새 벤처기업은 인터넷 고속망으로 연결되어 작동하는 오락제품과 장비를 만들게 될 것이다.
대체 인터넷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수많은 기업들의 합종연횡, 매수 및 합병 뒤에는 어떤 흐름이 자리잡고 있을까.
흐름 1. '생존 경쟁'으로 변한 포털 경쟁
시장 분석가들은 이러한 합종연횡의 배경으로 '생존'을 댄다.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것이다. '관문'(포털) 사이트는 넷스케이프, 인터넷익스플로러 등 브라우저를 띄울 때 가장 먼저 접속하게 되는 사이트. 인터넷 여행의 출발점인 셈이다. 쓸모 있는 정보가 많고 이용하기 편리할수록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관문' 경쟁은 지난해부터 불을 뿜기 시작했다. 수많은 검색기업과 뉴스 사이트들이 인터넷 이용자들의 눈을 잡으려 분투했다. 그러나 결과는 빈익빈 부익부, 유명한 사이트는 더 유명해졌고 그렇지 못한 사이트는 순식간에 잊혀졌다.
지금의 관문 사이트 판세는 대략 5파전. 검색기업으로는 야후와 라이코스가 강세, 일반 기업으로는 AOL-넷스케이프와 마이크로소프트, 커뮤니티 사이트로는 지오시티즈가 앞서 있다. 특히 야후의 위세는 대단해서, 전체 관문 사이트의 트래픽 가운데 30~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밖에도 인포시크와 디즈니가 손잡고 올해초 선보인 '고(Go) 네트워크'를 비롯해 익사이트 알타비스타 스냅 CNN 트라이포드 등이 공세를 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10여개의 관문 사이트 중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3~5개에 불과하다고 전망한다. 생존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든든한 자금력과 내용(콘텐츠). 미리 든든한 후원자나 제휴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낙오될 수밖에 없다. "제휴하든지 틈새 시장을 찾아라. 백화점식 포털 전략을 계속 고집하다가는 죽는다." 전문가들이 내리는 충고다.
흐름 2. 다음 금맥은 '대화형 TV'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앳홈의 익사이트 합병에 대해 "케이블 회사와 전화회사들이 종래의 서비스 영역을 넓혀 새로운 시장으로 손을 뻗치는 신호"라고 평가하고,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미래의 정보는 TV라는 하나의 파이프, 혹은 하나의 박스로 집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신이든 정보든, 혹은 전자상거래든 모두 TV를 통해 오갈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 TV는 지금의 일방형과는 다른 '대화형' TV(ITV)이다. 포브스는 가까운 장래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ITV 하나로 종래의 TV 프로그램을 즐기는 것은 물론 인터넷 접속, 전자우편 왕래, 전화, 온라인 대화 및 쇼핑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브스가 PC보다 ITV에 더 높은 점수를 주는 이유는 더 빠르고, 더 쉽고,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요즘 인터넷 주가가 뛰고, 관문 경쟁이 그처럼 치열한 것은 ITV가 아직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후 같은 관문 사이트들도 높은 주가와 인기에만 연연할 게 아니라 ITV의 대중화 이후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2001년의 인터넷 예상 인구는 약 4200만명(미국 경우). 이중 700만명 정도가 ITV를 통해 인터넷을 즐길 것으로 보인다. 만약 ITV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높은 인기를 끌게 되면 관문 경쟁은 포브스의 예견처럼 무의미한 소모전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흐름 3. '포스트 PC' 시장을 노린다
AOL-넷스케이프-선, 필립스-소니-선, 야후-IBM 등의 제휴 관계는 '포스트 PC'라는 한가지 목표로 수렴된다. 'PC 이후'를 노린다는 말이다.
IBM의 수석 부사장인 존 톰슨은 "이제 세계는 바야흐로 '스며드는'(Pervasive) 컴퓨터 시대로 진입했다"고 강조한다. '스며드는' 컴퓨터는 '네트워크 컴퓨터'(오라클에서 제창했던 'NC'와는 다르다) 혹은 '정보 단말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의 핵심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네트워크'와 '정보'다. 사상 유례없이 촘촘하게 연결된, 그리고 나날이 더 빨라지고 촘촘해지는 네트워크 환경에 의해 언제 어디에서나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덕택이다.
네트워크 환경이 무르익기 전까지, 정보는 PC 중심적이었다. 그러나 유무선 네트워크가 확장되면서 다양한 정보 단말기들이 나타났다. 스리콤이 선보인 '팜 파일럿'(Palm Pilot)은 그 중에서 최대의 히트작. 처음에는 일정 및 주소관리 정도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전자우편 송수신에다 간단한 인터넷 접속 기능까지 갖추었다.
그런가 하면 종래의 무선통신 기능에다 전자우편 등 인터넷 기능을 더한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와 6100 시리즈, 퀄컴의 PDQ, 컴덱스98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삼성전자의 '웹비디오폰' 등도 '포스트 PC'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제품들로 평가받는다.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윌리엄 조이 부사장은 "개인용 정보 단말기들로 넘쳐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강력하고 빠른 네트워크 환경을 중심으로 다종다양한 컴퓨터 장치들이 공존하는 시대다.
그러나 '포스트 PC'론(論)이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PC 환경의 축복을 단단히 받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반대 정도가 아닌 코웃음을 친다. "그것은 포스트 PC시대가 아니라 'PC-플러스' 시대"라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소비자전략 부문 부사장인 크레이그 먼디는 말한다. "과거와 같은 PC가 사라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PC(개인용 컴퓨터)의 진화의 자연스러운 단계일 뿐이다."
그래도 이들이 두말없이 동의하는 부분은 있다. '네트워크'가 변화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김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