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트 청소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거의 한 달이 넘도록 청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덕트 (duct)는 말 그대로 통기관(通氣管), 곧 냉난방을 할 때 차거나 뜨거운 공기가 돌아다니는 집안의 혈맥이다. 이사 온 뒤 알게 된 사실은 전 주인이 오랫동안 덕트 관리를 하지 않아 먼지가 유달리 많다는 점이었다 (왼쪽 사진은 홈디포의 덕트 청소 서비스 사이트에서 퍼온 것이다).
씨어즈(Sears)를 먼저 골랐다. 백화점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온갖 집 관련 서비스도 다 한다. 단순한 청소만이 아니라 살균 서비스까지,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오가닉' 재료를 쓴다니 오케이. 사람이 와서 견적을 매겼고, 다음 주 아침으로 날짜까지 정해졌다.
다음날 아침 전화가 왔다. "차가 오래돼서 그만 퍼져 버렸다. 갈 수가 없다. 다음 주나 다음 달로 날짜를 바꿀 수 없겠느냐?" 일정까지 바꿔 가며 기다리던 터여서 화가 났다. 홧김에, 취소해버렸다. 너희 아니면 할 데가 없냐. 도대체 차가 퍼져서 못온다니, 이른바 프로라는 작자들이 그래도 되나? ...
다음에는 로나 (RONA). 퀘벡에서 출발한 캐나다 회사다. 캐나다판 홈디포라고 보면 된다. 역시 날짜 잡고, 견적 매기고... 값이 씨어즈쪽보다 훨씬 싼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오기로 한 날이 어제였다. 저녁에는 내일 아침에 가마,라는 확인 전화까지 받았다. 당일 아침, 또다시 전화. 무척 기분이 상한 목소리의 여자였다. "밤새 누군가가 우리 밴을 뒤에서 들이받아 움직일 수가 없다. 혹시 다음 주로 미룰 수 있는지...?"
....
이번에는 웃음이 났다. 하하. 그런 공교로움이라니... 혹시 씨어즈에서 테러를???
이번에는 취소하지 않았다. 다 괜찮다. 이해한다. 그러면 다음 주로 하자. ...
다음 주 화요일 오전이 바뀐 약속 시간이다. 이번에는 과연 덕트 청소를 별탈 없이 마칠 수 있을까? ...
Update: 아내와 함께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의 수술 일정이, 다시 한 번 공교롭게도, 다음주 화요일이다. 이번에는 우리 쪽에서 전화를 걸어 약속 시간을 바꿔야 할 판이다. 덕트 청소의 길이 뜻밖으로 멀고 험하다. 그것 참... (2007/06/07 03:46)
다시 한 번 물 건너간 '덕트 청소'
오늘 취소하고 45달러(세금 포함 47.7달러)를 환불 받았다. 덕트 청소를 해달라고 주문한 게 한 달도 더 넘은 지난 5월24일이었다. 6월초 자기네 차가 들이받혀 못온다고 한 이후, 그들은 그야말로 꿩 궈먹은 소식이었다. 혹은 까마귀 고기를 먹어 까맣게 잊어버린 것일까?
세 번이나, 그 청소 주문을 중개하는 로나(RONA)라는 회사에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응답 전화를 받지 못했다. 비즈니스에서, 음성 메시지에 대해 24시간 안에 응답하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가장 큰 홈레노베이션 회사 중 하나로 꼽히는 로나가, 그처럼 아마추어스럽게 굴 줄은 몰랐다.
어제 찾아갔었다. 그곳 매니저는 "오늘(그러니까 어제) 중에 꼭 전화해서 청소 날짜를 잡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더니 다시 감감무소식. 결국 오늘, 어제에 이어 다시 매장에 찾아가 취소해 버렸다.
본사에 공식으로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자면 여간 복잡하고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한심한 사람들...하고 마는 게 내 정신 건강에도 더 좋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몇년 전, 북미 지역에 앞다퉈 출간된 책 두 권이 있었다. 하나는 '불쉿에 대하여'(On bullshit)라는 책으로 미국의 교수님께서 아주 학술적으로 그 단어의 기원과 진정한 의미를 파헤친 책이고, 다른 하나는 캐나다의 저자가 쓴 '고객님의 전화는 저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 불쉿의 진실'(Your Call Is Important to Us: The Truth About Bullshit)이라는 책이다. 불쉿은 한 마디로 '개소리'라고 보면 된다. 거짓말은 아니다. 그러나 상대를 그릇된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착각하게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진심이 들어 있지 않은 가식과 위선의 말이 바로 불쉿이다.
로나 같은 회사가 쓰는 온갖 말들, 예컨대 'valued customer'는 그러한 불쉿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족을 하나 더 달자면, 미국에서는 '불쉿에 대하여'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자 몇몇 신문들이 그 '불쉿'이라는 단어가 점잖지 못하다며 본래 책 제목 대신 'On Bull****'과 같은 변형 제목을 게재했다고 한다. 미국 사회 전반이 그야말로 불쉿에 깊이 침윤되어 있음으로 보여주는 아주 상징적인 대목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각설하고, 이제 어디에다 전화해서 우리집 덕트를 청소한다나???? (2007/06/29 00:08)
마침내 덕트 청소! 하지만 날림...
6월30일, 6월의 끝날, 토요일. 마침내 덕트 청소를 끝냈다. 청소 장비를 실은 트럭 한 대가 와서, 집안의 환기/냉방/난방이 시작되는 furnace room에다 큰 파이프를 연결한 다음 먼지를 빨아들였다.
청소하러 온 이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덕트 청소 한게 언제냐고. 적어도 10년 이상 청소 한 번 안한 게 확실하다고. 대체 여기 살던 이들은 이런 상태로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요란 뻑쩍지근하게, 한 30분 윙윙 대며 먼지 빨아올리고, 그렇게 청소는 끝났다. 얼마나 확실하게 먼지가 제거되었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어쨌든 더 깨끗해졌겠지.
석 달 넘게, 그리고 이 업체, 저 업체를 거쳐 세 번째 업체 만에, 덕트 청소를 끝냈다. 소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실로 맞는 말이다. (2007/07/03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