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여만에 와와를 내려옵니다. 8월12일부터는 피터보로에 있는 MNR에서, 삼림 대신 '정보'를 다루게 됩니다. 그 정보라는 것이 결국 자연자원(Natural resources)에 관한 것인 만큼 지금까지 해오던 일과 전혀 동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주로 필드에서 일하던 것에 견주면 작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한 주, 와와가 아닌 썬더베이의 호텔에서 지내며 이메일로, 전화로, 와와의 제 상관, 그리고 피터보로의 제 (미래의) 상관과 연락하기 바빴습니다. 마음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참가한 심포지엄의 내용조차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과연 내가 한 선택은 잘한 것인가. 몇 개월만 더 와와에서 지내며 삼림관으로서의 경험을 더 쌓으면 좋은 기회가 나올지 모르는데, 너무 일찍 진로를 다른 방향으로 트는 것은 아닌가, 아니, 피터보로에서 더 좋은 기회가 나올지 또 누가 아는가... 참 심난한 한 주였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크나큰 미덕에다, MNR의 주요 본거지 중 하나인 피터보로인 만큼 기회도 더 많으리라는 기대가 중도 하차 쪽으로 기울게 했습니다.
고맙게도, 와와의 제 상관들 또한 축하한다며 잘된 일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낌 없이 제 뒤를 봐주고 후원해준 이들이니 만큼, 그들의 축하가 영 즐겁게만 여겨지지는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면 그들과 같은 훌륭한 보스를 모실 수 있게 될까, 생각하니 마음이 영 무거웠습니다.
D-6 | 2005년 8월 5일 오전 9:04
직속 상관인 Jay가 휴가를 떠나기 전 와와 MNR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내 소식을 통지했다. 그 때문에 보는 이들마다 '축하한다'라는 말을 건넸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면 늘 가장 먼저 만나는 Bob이 축하한다며 악수를 청했다. 와와에서 지낸 9개월 동안, 그야말로 물심양면으로 내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내게는 그야말로 아버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와 더이상 함께 일할 수 없게 된 것이, 마냥 기뻐할 수만도 없게 만드는 큰 이유중 하나이다.
곧 떠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낯설고 물설고 사람 선 벽지에서, 그러나 늘 따뜻하고 친절한 동료들 덕택에 많이 배우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와와는 내게 'small town with a big heart'였다. 지난 일요일 와와로 잠시 다시 올라온 이후, 오전 10시와 오후 3시, 하루 두 번씩 있는 휴식 시간이면 빠지지 않고 와와의 상징인 초대형 거위 동상을 돌아오는 산보 대열에 끼고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억을 남기기 위함이다. 해맑은 하늘, 서늘한 바람, 청정한 공기... 문득 이 모든 것을 언제 다시 체험하게 될까 생각하니 한편 아쉽기도 하다.
월요일과 화요일마다 있는 야구 경기에도 참여했다. 첫날은 2타수 1안타, 둘째 날은 4타수4안타에 2타점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팀은 졌다). 그래도 즐거웠다. 한국에서는 제대한 이후 10여년 동안, 그리고 캐나다 와서도 3년 넘게 운동경기다운 운동경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와와에 와서야 배구며 야구 같은 경기를 다시 해볼 수 있었다. 커뮤니티가 작은 데 견주면 직업상의 이유로 올라온 젊은이들이 많아 제법 다양한 체육 활동이 펼쳐진 덕택이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컬링과 하키 리그에도 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자면 겨울을 한 번 더 보내야 한다. No thanks! (피터보로에 가면 혹시 기회가 있을까?)
사무실에서는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다. 특히 Wawa Forest에 적절한 MAFA Layer를 더하는 GIS 작업이 한참 밀렸다. 떠나기 전에, 적어도 buffer라도 더하는 일을 해놓지 않으면 다음에 올 사람이 꽤나 애를 먹을 게 분명했다. MAFA는 Moose Aquatic Feeding Area의 약자로, 여름철 무스가 물을 먹고 그 주변의 풀을 뜯어 균형 잡힌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도록 벌채를 금지한 보호구역을 가리킨다. 적절한 습지나 호숫가 주위가 대체로 그런 장소다. 내가 하는 일은 와와 MNR의 생물학자가 항공 지도를 판독해 지정한 그런 지역들을 디지털 지도상에 반영하는 것이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와와 호숫가를 거닐었다. 호숫가는 언제나처럼 호젓했지만, 언제 내려가게 될지, 언제 가족과 합치게 될지 기약하기 어려웠던 몇 주 전에 견주어 마음만은 퍽이나 가벼웠다. 바람이 선선했다. (*)
오늘 거닐었던 와와 호수의 풍경.
매일 두 번씩 그 주위를 돌게 되는 초대형 와와 동상.
지난 일요일 와와 올라오는 길, 그레이하운드 버스에서 찍은, 17번 고속도로 변의 호수.
바베큐 파아리 | 2005년 8월 7일 오전 11:36
고기를 굽는 "my old friend" Bob
앤의 집에서 조촐한 바베큐 저녁을 들었습니다. 밥이 뒤뜰에서 사슴 고기와 소시지로 맛난 바베큐 요리를 만들었고, 저는 엘씨비오에서 화이트/레드 와인 두 병을 사갔습니다. 프렌치 래빗이라고, 귀여운 토끼 세 마리가 그려진 프랑스제 와인이었습니다. 안젤라는 레몬을 한 봉지 사왔습니다. 데이빗도 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는 이번 주말 산불 비상 요원으로 차출되어 그러지 못했습니다.
앤과 밥은 와와에서 내게 가장 많은 호의와 도움을 베푼 선배들이자 친구였습니다. 지난 겨울 체험한 모든 얼음낚시가 그들과 함께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더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새삼 아쉬웠습니다. 겨울에 얼음낚시 하러 올라오라는 그들의 말에 그러마고 했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즐거운 저녁 한 때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서녘 하늘에 아름다운 노을이 걸렸습니다. 와와의 상징인 거위 동상을 넣어 좋은 사진 몇 장 찍었습니다. 와와 다운타운을 따라 켜진 거위 모양의 가로등들도, 오늘 저녁 따라 더욱 선명하게 빛났습니다.
와와 다운타운(이라고 부를 수나 있을지...)을 수놓은 가로등 장식.
아름다운 저녁 노을.
천둥과 번개, 그리고 소나기 | 2005년 8월 9일 오전 11:38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잠깐 천둥과 번개가 쳤고, 그와 함께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이번에도 잠깐 전기가 나갔습니다. 하도 메마른 날씨가 오래도록 이어져서 그런지 그런 소나기가 여간 반갑지 않았습니다. 쏴아, 하고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보는 기분, 언제나 시원합니다.
그렇게 잠깐 소나기가 퍼부은 직후,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맑게 개었고, 뭉게구름 위로 해넘이가 한창이었습니다. 비를 머금은 먹장구름과 그 위로 펼쳐지듯 뜬 흰구름, 그런 구름을 불그스레 물들이며 서녘으로 뉘엿뉘엿 지는 저녁 해. 참 아름다운 저녁이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저녁놀.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내일 이것저것 정리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기적적으로 일정 안에 작업을 마친 GIS 결과물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오류는 없는지 확인해야 하고, 중도에 근무지를 옮기는 데 따른 계약 문제를 갈무리해야 합니다.
수요일에는 아마도 사무실 동료들에게 인사하는 것으로 오전 시간을 보낼 듯합니다. 그리곤 송별 점심을 먹으면 집으로 내려가겠지요. 싸다말다 난장판인 방안의 짐들이 과연 혼다 시빅의 작은 몸통 안에 다 들어갈지 다소 걱정스럽습니다. 더구나 겨울용 타이어 네 개가 추가된 탓에 부담이 더합니다. 어떻게 해봐야지요. ^^;
앞으로 어디로 가든, 또 무슨 업무를 맡게 되든, 이곳 와와에서 보낸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
자취집 주변. 맨 오른쪽 끝 2층집이 제 숙소입니다.
3천5백 번의 벼락 | 2005년 8월 11일 오후 10:58
백한 번의 프로포즈, 천일야화 등등 그 숫자의 많음, 혹은 노력의 가상함이 여실한 표현들이 있습니다만, 아마도 '3천5백 번의 벼락이나 번개, 또는 '15만 번의 벼락' 같은 표현은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곳 노던 온타리오의 최근 상황이 꼭 그랬습니다. 지난 월요일 하룻밤새 와와를 비롯한 슈피리어 호수 북부 인근 지역에 내리친 벼락이 약 3천5백 번, 그리고 지난 목요일로부터 월요일에 이르는 닷새 사이에 기록된 벼락이 약 15만 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엊그제 제 상사가 벼락이 내리진 지점의 지도를 보여주는데, 벼락을 맞은 지역을 가리키는 별이 겹치고 겹쳐 와와와 마라톤 등 해당 지역 위에 아예 새카맣고 큰 얼룩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많은 벼락에도 불구하고 비는 거의 내리지 않아, 그것이 불의 크나큰 주범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사이 와와가 속한 북동 지역에 104건의 산불이 새로 났다고 합니다. 그 중 63건이 월요일 하룻밤새 생긴 불이라고 합니다. 온타리오주 제2의 산업인 임업이 집중된 노던 온타리오 지역,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자연재해가 나는지, 그를 막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눈물겹게 펼쳐지는지, 막상 이곳에서 일할 기회를 얻기 전까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무지는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실상 서던 온타리오에 사는 대다수 '남쪽 사람들'이 저처럼 북쪽 사정에 깜깜합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미디어에 있습니다. 그 미디어의 초점이 온통 서던 온타리오에 집중되어, 국제 규격의 축구 운동장 4개, 혹은 10개 크기의 큰 산불이 나지 않는한 보도조차 하지 않는 그릇된 관성이 바로 이곳의 미디어에 배어 있습니다.
온타리오 주 전체 인구의 90%가 서던 온타리오 지역에 집중된 것을 고려하면 전혀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다 싶습니다.
와와를 떠나다 | 2005년 8월 11일 오후 11:15
8월10일 오후 1시, 와와를 떠났습니다. 와와 모터 인에서 직장 상사를 비롯한 10여 명의 동료들과 송별 점심을 먹은 직후였습니다. 점심은 화기애애했습니다. 직속 상사인 제이는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2주에 한 번씩 집에 다녀왔으니 다음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만 와와로 놀러오는게 어떻겠느냐"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떠날 때가 되어 그들과 작별의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자 갑자기 목이 메고 눈물이 났습니다.
제이, 밥, 앤, 데이빗, 안젤라, 아이린, 마르셀, 숀 등등, 그들의 진심어린 우정과 호의, 도움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내는 3월 마치브레이크 때 와와로 얼음낚시를 가자고 하고, 밥과 제이도 언제든 환영이라고 하지만, 정작 저는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그게 얼마나 멀고 힘든 길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내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어 노던 온타리오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아마도 와와를 다시 들를 일은 꽤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운전은, 밤 10시20분쯤 토론토의 집 앞에서, 역시 멀구나, 역시 엄청나게 힘들고 피곤하구나, 절감하며 끝났습니다. 오늘의 여정에는 특히나 많은 교통사고와 도로 공사 들이 마치 지뢰처럼 곳곳에 널려, 더욱 만만찮았습니다. 위 사진의 사고는 그 길에서 만난 세 번의 큰 사고 중 하나입니다. 도로 보수 공사도 네다섯 곳에서 펼쳐졌는데, 그 규모가 제법 커서 한 차선으로만 양 방향의 차들을 통과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와와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MNR 주차장에서 올려다 본 하늘.
Watch out! 꼭 반대 차선으로 트럭이 달려오는 것 같죠? 실은 다른 트럭에 견인되어 가는 트럭이랍니다 핫핫!
Batchewana Bay 근처의 사고. 승용차와 SUV가 충돌한 모양입니다.
수세인트마리 교외의 풍경.
어쨌든 돌아왔습니다. 이제 목요일 하루 쉬고, 금요일에 피터보로의 새 상사를 만나 일종의 '상견례'를 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새로운 업무를 시작합니다. (*)
송별 선물 | 2005년 8월 12일 오전 1:23
송별 선물로 자기 판화와 볼펜, 열쇠 고리, 그리고 모자를 받았습니다. 자기 위에 그림을 새겨넣은 '작품'의 소재는 마침 아내가 가보고 퍽이나 마음에 들어했던 와와 근처의 '올드우먼 베이'입니다. 이 타일 판화를 만든 이는 제임스 샌더스라는 와와 지역의 예술가로 'Harbour Pottery'라는 도예점을 운영하는데, 와와는 물론 노던 온타리오 일대에서 꽤 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평생에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한국을 꼽는다는데, 그 이유인즉 한국이 세계 최고의 도자기 제작 기술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랍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판화 뒤는 동료들이 써넣은 짤막한 덕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행운을 빈다'라는 말이 가장 많습니다.
볼펜과 열쇠 고리, 모자 들에는 '와와 MNR' 표시가 적혀 있습니다. 좋은 기억거리가 될 법합니다.
송별 선물 - 모자 | 2005년 8월 13일 오전 5:52
어느 분의 청이라고 거절하겠습니까. 저희 홈페이지와 블로그의 VIP이신 '볼모'님의 요청으로 기꺼이, 오늘 모델(?)까지 동원하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자가 좀 동그란 형태여서 모델과 잘 어울렸습니다. 하하.
언제 또 캐나다에는 안 오시려는지 궁금합니다. 올 겨울, 드뎌 하키 시즌이 재개되고, 아마도 메이플리프스가 제법 괜찮은 성적을 낼 듯한데, 주용군은 아직 Go Leafs Go!를 기억하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