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밟히는 얼굴
베이뷰 뮤즈 아파트에 살던 시절.
아빠가 씁니다. 자정이 넘었습니다. 오늘 커피를 좀 많이 마신 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을 잔 게 '독'이 된 모양입니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한 시간 넘게 잠을 청하다 결국 다시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뒤척일 때마다, 아내와 동준이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혔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내가 지금 잘하는 건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가치가 있는 걸까. 여러 생각, 의문, 가정 따위가 머릿속을 지향없이 날아다녔습니다.
동준이가 많이 보고 싶습니다. 떠나올 때, 한 번이라도 제대로 꼭 안아주고 올걸, 하는 후회가,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아래 사진은 일요일 아침, 아내가 찍은 것입니다.
☆ # by kngdol | 2004/12/10
아이들 크는 속도는 실로 빠릅니다.
무럭무럭, 뿍뿍, 쑥쑥, 정말 빠르게 자랍니다. 지난 번, 불과 2주만에 동준이를 보았을 때도, 그새 또 컸다는 느낌이 확연했습니다. 아내는 늘 동준이랑 함께 있어서 그걸 미처 눈치채지 못했겠지요.
우연히, 1년 전 겨울에 찍은 동준이 사진을 봤습니다. 여기에 올린 그림입니다. 이즈음의 모습과 견주면 아직 '애기'입니다.
아내가, 동준이에게는 이즈음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더 소중하고 중요한 시기인데, 그 시기에 아빠가 떠나 있게 되어 안타깝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진을 보니, 그리고 전화를 통해 간헐적으로 듣는 동준이의 목소리를 떠올리니, 새삼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나중에는 두 번 다시 보상받지 못할 그 순간을, 그냥 이렇게 흘려버리고 마는 게 아닌가, 자꾸만 되묻게 됩니다.
☆ # by kngdol | 2004/12/13 05:52
뿍뿍...
2주에 한 번 내려갈 때마다 동준이가 얼마나 빨리 크는지 실감하곤 합니다. 그것을 좀더 가까이에서, 좀더 자주 지켜볼 수 없는 게 안타깝습니다. 곁에 있든 있지 못하든 제가 좋은 아빠가 못된다는 것은 진작에 깨달은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떨어져 보니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더욱 증폭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위 사진은 월요일 아침, 와와로 올라오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찍은 것입니다. 저는 와와로, 동준이는 학교로 가는 것이지요. 막 뛰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벌써 저렇게 컸구나, 새삼 실감하면서, 동시에 안타까움이 밀려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가능한 한 좀더 일찍, 다시 한 가족으로, 한 가족답게, 모두 함께 살아야겠습니다.
☆ # by kngdol | 2005/02/07 02:17
곰 두 마리
와와로 올라오는 도중, 에스파놀라라는 마을의 길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찍은 사진입니다. 그 식당에는 이런 모양의 곰 상이 꽤 많았는데, "저도 제가 귀여운 줄 안답니다. 하지만 저는 아주 비싸답니다. 살 수 없더라도 울지 마세요"라던가, 뭐 그 비슷한 글귀가 적힌 종이딱지도 붙어 있었습니다.
뭐 그리 귀여운 상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지만 약간 덜 떨어진 표정과 사람 몸집만한 크기가 마음에 들어 동준이를 세우고 사진 한 장 찍었습니다. 찍고 보니 표정이 좀 비슷하게 나왔습니다. 어~ 하는, 약간 얼 빠진 듯한 표정. 그래서 더 코믹해 보입니다.
동준이 옷을 가만히 보면, 물로 얼룩져 있습니다. 점심을 먹으면서, 손 안대고 입만으로 컵을 기울여 물을 마시려다 폭삭 쏟은 결과입니다. 저는 그 장면을 처음부터 죽 지켜보았는데, 어어, 하다 말릴 기회를 놓치기도 했지만, 저렇게 해서 과연 제대로 물을 마실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뻔히 보면서도 제때 말리지 않았다며 아내로부터 핀잔을 들었습니다. -___-;
☆ # by kngdol | 2005/03/15 11:27
아빠 살려!
한달만에 아빠를 만나 와와로 함께 올라온 동준이는, 엄마랑 달리 거칠게 놀아주는게 좋은지 틈만 나면 업어라, 뛰자, 점프하자면서 아빠를 가만히 쉬게 놔두질 않습니다. 아빠도 '나좀 살려줘~!'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열심히 업고 뛰고 사진찍으며 밀린 아빠노릇 다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곤란한 것은, 뿍뿍 자라고 있는 동준이의 몸무게와 기운이 아빠에게도 '불감당'인 수준이라는데 있습니다. 그래도 동준이는 신나게 온몸을 '던져' 아빠에게 올라타고, 비명을 지르는 아빠 등에서 낄낄대며 좋아하곤 합니다. 사진은 슈피리어호수가에서 찍은 것입니다.
☆ # by kngdol | 2005/03/17 14:07
눈썰매
동준이가 와와에서 생애 두번째로 눈썰매를 타보았습니다(이민 오기 전 두 살 무렵인가, 보광피닉스였는지 베어스타운이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아빠는 스키타러가고 동준이랑 엄마는 눈썰매를 두어번 타보았던 적이 있지요).
겁이 많아서 무서워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뜻밖에 너무너무 좋아해서 놀랐습니다. 처음엔 아빠팔을 꽉잡고 좀 겁내하는 듯 했지만, 한번 타고내려가자마자 단박에 "more~!"라고 외쳐 아빠와 엄마는 허리를 부여잡고 웃어야 했습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동준이 얼굴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신이 나 있습니다. 막판엔 저혼자서 여러번 탔는데, 제법 핸들을 꼭 잡고 발도 썰매에 잘 올려놓고 잘 타더군요. 역시, 듬직한 체격으로 인한 가속도와 균형감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
아빠가 퇴근하고 난 늦은 오후라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뒤인데도 동준이가 하도 신나하는 바람에 아빠는 헉헉대며 썰매를 들고, 혹은 동준이를 태워 끌고 둔덕 위까지 오르내리며 한참을 열심히 봉사해야했습니다.
동준이가 이번에 와와에 가서 스노슈잉도 해보고, 토보가닝도 해보고 정말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해 흐뭇합니다. 엄마 입장에선 동준이가 가진 자질도 새로이 발견해서 기쁘기도 합니다. 동준이가 이 즐거웠던 기억을 잘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 # by kngdol | 2005/03/19 13:21
신기한 슈즈네~!
처음 스노슈즈를 신어보고 동준이가 신기한지 물끄러미 신발을 굽어다보고 있습니다. 아빠의 직장동료인 앤 아줌마것을 빌린 거라 좀 헐겁긴 했는데, 그럭저럭 잘 신고 걸어다닐만 했습니다. 그냥 눈부츠와 달리 깊이 쌓인 눈 위로도 푹푹빠지지 않고 다닐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동준이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스노슈즈를 신고 기운차게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지난 2월 스케이트장에 처음 데려갔던 때와 비슷했습니다. 처음엔 신발을 안 신으려고 하다가, 막상 신기고 나자 전혀 두려움없이 발을 내딛는 것도 그렇고, 뜻밖에 곧잘 해내는 것도 그렇습니다. 새로운 상황에 씩씩하게 부딪쳐가는 동준이가 대견합니다. 동준이에게 이런 다양한 경험을 좀더 많이 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by kngdol | 2005/03/19 13:38
아이스캡
7월3일 일요일, 와와로부터 토론토로 내려오는 길은 유난히 길고 지루하고 힘들었습니다. 연휴의 경부 고속도로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그에 비해 한산했다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만큼 토론토로 향하는 도로는 꽤나 막혔습니다. 13시간 - 평소보다 3시간 이상 더 걸린 길고 피곤한 여행이었습니다.
어른인 우리보다 동준이가 한층 더 힘들고 피곤했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용하게 잘 견뎌준 게 여간 고맙고 또 안쓰러운 게 아니었습니다. 내려오는 길, 엄마가 팀 호튼스의 아이스커피인 아이스카푸치노 - 흔히 '아이스캡'이라고 부릅니다 - 를 주는 척하자 동준이가 뜻밖에 선뜻 받아 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고 여겼는지, 두어 모금 더 쪽쪽 빠는 소리를 냈습니다.
저로서는 별로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아내는 "아이스캡 맛이 예년만 못하다"라고 촌평을 내렸습니다. 올해 광고 하나는 엄청나게 해대던데, 과연 다른 팀 호튼스 '팬'들도 그렇게 판정할지 궁금합니다.
☆ # by kngdol | 2005/07/08 09:50
동준인 뭐해?
아내에게 전화할 때마다 가장 먼저 묻는 말입니다. 가끔은 저 뒤쪽에서 간지럼을 태워달라며 "티끄드~!"라거나 마실 걸 내놓으라며 "워터!", 또는 "요거트"라고 목청을 돋우는 소리가 들려서 금새 '근황'을 눈치채기도 합니다.
동준인 뭐해?
그러면 아내는 지금 밥 먹는 중이라거나, 마사랑 2층으로 올라갔다거나, 전용 소파에서 끈을 갖고 논다거나, 2층에서 막 '배쓰'를 시작했다거나, 부엌에서 바가지를 꺼내어 물을 튀긴다거나, 밖에서 막 물놀이를 시작해 양동이로 물을 대령하라며 소리를 친다거나, 공원 나가자며 소매를 잡아끈다거나, 라는 식으로 제게 알려줍니다.
종종 전화를 바꿔주기도 하지만 동준이에게 얼굴 없이 목소리만 나오는 전화기는 여전히 낯선 모양이어서, 몇 마디 억지로 대답하고는 금방 '미꾸라지처럼' 엄마 품을 빠져나가 다른 데로 달아나버리는 모양입니다. 동준이가 막상 수화기로 몇 마디 건네오면 제 언어의 모자람 또한 당혹스러울 지경이어서, 언제나 "아이 러브 유"나 "아이 미스 유," 그도 아니면 "왓 이즈 유어 폰 넘버?" "하우 아아아 유?" 정도의 질문에 그칩니다. 누구보다 먼저 저부터 좀더 언어 능력을 더 키워야 할 모양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오티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그것이 수은을 함유한 백신접종과 관련되었을지 모른다는 주장, 그와 밀접한 연관관계를 지닌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발표 등이 잇따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암과 더불어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 병증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이론과 추측과 의문이 난무할 뿐 명확한 답은 여전히 안갯속입니다.
지금도 종종 자문하곤 합니다. 대체 무엇이 동준이의 오티즘을 촉발했을까?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금새 그것을 치료할 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옛날의 수많은 '그 때문이었을지도...' 라는 가정 섞인 에피소드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합니다.
지나간, 하여 마음의 부담 외에는 달리 얻을 것이 없는 과거에 얽매이기보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동준이를 잘 키워야 할지에 대해서만 고민해야겠습니다. (*)
☆ # by kngdol | 2005/08/07 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