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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충격과 감동: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프로그램
: 말러 교향곡 제5번 중 4악장 '아다지에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번
              ----- 인터미션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연주: 에드먼튼 심포니
지휘: 그레고리 베이다 (Gregory Vajda)
피아노 협연: 알렉산더 코산시아 (Alexander Korsantia)

지난 토요일 (1월28일) 에드먼튼의 윈스피어 센터에서 에드먼튼 심포니의 정기 공연을 관람했다. 에드먼튼으로 건너온 지 3년 만에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였다. 과거에도 몇 번 관람 기회가 있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 대개는 아이들 때문에 - 함께 갈 기회는 없었다.

윈스피어 센터 앞 '처칠 광장' 주변의 밤 풍경. 아직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나는 이 공연을 유독 고대했는데, 거기에는 큰 착각도 작용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고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표를 예매하려 프로그램을 일별할 때 눈에 뭐가 씌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5번이 아닌, 생소하기 짝이 없는 - 바꿔 말하면 대중적 인지도나 인기가 거의 없는 - 1번이어서 실망이 컸다.

아다지에토
말러의 작품 중에서, 아마도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을 곡. '카라얀 아다지오'류의 짜깁기 음반, 느리고 로맨틱한 클래식 음악들만 모은 음반에 거의 예외없이 들어가는 곡. 현의 아름다움을 말러만큼 극명하게 그려보인 작곡가도 달리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유력한 걸작.

에드먼튼 심포니의 연주는 좀 가벼웠다. 제임스 라스트 악단, 폴 모리아 악단의 연주를 듣는 듯한 느낌이랄까? 선율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부족하지 않았지만 워낙 널리 연주되는 작품인 만큼 관객이 이미 가졌을 법한 기대 수준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아내의 촌평이 이를 잘 요약한 듯: "카라얀한테 너무 익숙해 놔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1번
당대의 명장이자 저명한 작곡가인 피에르 불레즈는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을 절대 지휘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은 상투성으로 얼룩져 있다면서, 그가 왜 그토록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견해다. 어제 저녁, 쇼스타코비치가 열여덟 살때 작곡했다는 1번을 들으면서, 문득 불레즈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해 옛 소비에트 정권이 부르주아지의 물이 들었다고 비판한 것도 그럴 법하다고 여겨졌다.

대체 이게 뭐냐?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이나 말러의 교향곡 1번 등과는 아예 견주지도 말자. 적어도 내 부박하고 뭘 모르는 귀로 듣기에는 정말 상투성과 혼돈, 맥락 없음의 극치 같았다. 1, 2, 4악장은 되다 만 재즈 '풍'의 음악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잔뜩 맞힌 듯했고 (완편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니까), 어떨 때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듯한 OST 분위기를 풍겼으며, 마치 관객을 깜짝 놀래키려는 듯 러시아 군악대의 쿵짝쿵짝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연주홀을 뒤흔들었다. 4악장의 마무리 단계에서 왜 느닷없고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하는 팀파니 솔로가 나오는지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클래시컬한 선율미를 다소나마 느끼게 해준 것은 3악장이었는데, 그 선율조차도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뒤죽박죽, 어떤 질서나 주제, 졸가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끔찍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알렉산더 코산시아. 에드먼튼 심포니의 웹사이트에서 퍼왔다.

앞의 두 연주는 아무래도 좋다. 이 곡 하나로 어제의 연주회는 별 다섯에 다섯이었다. 그루지야 출신의 피아니스트 (현재는 미국 뉴잉글랜드 뮤직 콘서버토리 교수)인 알렉산더 코산시아의 연주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을 열정의 명연
이었다.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난곡으로 알려진 이 곡을 코산시아는 능수능란하게, 테크닉의 어려움은 전혀 없는 것처럼 자유롭게, 그러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과 열정으로 펼쳐 보였다. 에드먼튼 심포니의 소리는 종종 너무 약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잘 돋보여야 할 중요한 대목들에서는 무난하게 전면에 나서면서 피아노와 잘 조화를 이루었다. 객원 지휘자인 그레고리 베이다도 깔끔하고 명확한 비팅으로 연주를 잘 이끌었다. 

코산시아의 피아노는 홀 전체를, 때로는 감미로우면서도 부드러운 선율로 낭만에 젖게 하는가 하면, 또 때로는 천둥 같은 타건으로 관객들을 뒤흔들고 홀을 뒤흔들었다. 그가 연주에 심취해 자기도 모르게 내는 스읏~! 스읏~! 하는 소음도, 얼굴에 경련이 인 듯 씰룩거리는 표정도, 연주 감상을 방해하기는커녕 도리어 관객을 더욱 몰입하게 하는 소품처럼 여겨졌다.
 

일제히 기립해 열광하는 관객들. 까만 옷을 입고 인사하는 남자가 피아니스트다.

폭주하듯 장렬한 피날레. 관객들의 함성. 그리고 기립. 나는 에드먼튼 심포니의 연주회에 와서, 모든 관객이 마치 합의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기립하며 박수를 쳐대며 '브라보!'를 연호하는 장면을 이날 처음 보았다. 워낙 박수에 짠 관객들인데, 이 날만은 전혀 달라 보였다. 그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에드먼튼 아닌가. 커튼 콜 세 번으로 끝이었다. 앙코르도 없었다. 한국에서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나는 좀더 박수를 쳐서 짧은 앙코르 연주를 끌어내고 싶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세 번째 무대로 나왔던 연주자와 지휘자가 들어가자마자 박수는 멎었다. 잦아든 게 아니라, 마치 라디오나 TV 스위치를 탁 하고 끄듯 박수도 그렇게 화끈하게 - 차갑게? - 멎었다. 이런 관객 매너란!

아래 비디오는 
명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연주. 지휘는 리카르도 샤이. 오케스트라는 확실치 않지만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인 것 같다. 당대의 명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