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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비늘

설상화, 618km, 수 세인트 마리, 필드 트립

선물의 힘 2005년 1월 20일 오전 11:41


석원 씨네가 선물로 준 차의 앞유리 덮개가 이곳 머나먼 와와에서 한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밤새 눈발이 날리거나 서리 내리는 게 일상다반사인지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늘 해야 하는 일이 유리창의 눈이나 얼음을 긁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요상한 색깔의 커버를 씌우고 나서는 일이 절반으로 줄었다. 뒷유리만 신경쓰면 되는 것이다. 특히 어젯밤처럼 폭설이 내린 다음날에는 이 커버가 여간 고맙지 않다.

Sault 2005년 1월 21일 오후 12:25

'솔트'가 아니라 '수'라고 읽는다. 그래서 Sault Ste. Marie라는 이 도시의 본래 이름도 '솔트 세인트 마리'가 아니라 '수 세인트 마리'이고, 그냥 듣기에는 '쑤생머리'와 비슷하다. 가끔 Soo라고 쓰기도 한다. 이 도시와 마주하고 있는 미국 미시건 주의 도시 이름도 같다. 크기까지 비슷하다고 한다. 아직 가보지 않아 모르겠다. 
 

수세인트마리 초입.

오늘 회의가 있어서 다녀왔다. 거리는 230km 남짓. 토론토 부근에서라면 2시간 안팎에 주파할 거리지만 길이 구불구불한 데다 제한속도가 90km밖에 안돼 실제로는 3시간이 꼬박 걸린다. 

와와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그래서 주말이면 적지 않은 와와 주민들이 쇼핑을 간다는 도시. 그러나 나는 이 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거칠고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하겠다. 겨울이라 그런 생각이 더 자심한지도 모르겠다. 

쇼핑 몰 많고, 팀 호튼스도 흔하고, 게다가 카지노까지 있고, 도시로서 갖춰야 할 것은 다 갖추었다. 그러나 평생 살 만한 도시로는 영 인상이 별로다.
 

동굴넓적 멋대가리 없는 이 물통은, 그래도 수에서 제법 괜찮다는 호텔(모텔? 인? 아무려나)의 상징물이다. 진짜 그 안에 물이 들었는지, 그냥 빈 통인지 확인해보지 않아 모르겠다.


바람 부는 날은 와와 호수에 가야 한다 | 2005년 1월 23일 오전 11:19

직장 상사인 제이가 호수 위 낚시를 체험시켜 준다며 전화를 했다. 와와 호수라고 하길래 어딘지 알려주면 걸어가겠다고 했더니 어림도 없다며 스노모빌로 데려가겠단다.

와와 호수에 지어진 얼음낚시용 오두막. 바깥과 달리 안은 무척 따뜻했다.

나중에 스노모빌 뒤에 앉아 가보니 왜 어림도 없었는지 짐작이 되었다. 그의 친구가 지었다는 낚시용 오두막은 마을로부터 반대 쪽으로, 호수의 거의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었다. 거리가 족히 7, 8km는 돼 보였다. 가뜩이나 바람이 세찬 데다 스노모빌 뒤에 앉아 보니, 그야말로 '설사 바람'이 온갖 빈틈을 다 헤집고 들어온다. 특히 잠시 얻어쓴 - 여기 사람들의 안전 의식 하나는 끝내준다 - 헬멧과 목 사이, 그 빈틈으로 엄습하는 바람은 말 그대로 칼날이었다. 살을 에이는, 어쩌구 하는 표현이 바로 이것이로구나 실감했다. 

Field Trip | 2005년 1월 27일 오후 12:25

영하 28도. 한낮이 되면서 다소 기온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역시 영하 20도 안팎. 

눈, 눈, 눈, 온통 눈천지인 숲으로 일을 나갔다. 함께 나간 친구들의 말마따나 'Winter Wonderland'였다. 스노슈즈를 신었는데도 무릎 가까이까지 발이 푹푹 빠졌다. 물기 없는 눈인지라 풀풀 날렸고, 그만큼 지지해주는 힘도 적었다. 스노슈즈를 수직으로 세워 대충 가늠해본 눈 깊이는 대략 2미터 안팎. 

복면강도처럼 얼굴을 가린 방한도구를 ‘벨라클라바’ (Balaclava)라고 한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다(무식해서리…). 하나 사야겠다.

마치 두꺼운 솜이불 위를 걷는 듯 푹신푹신한 감촉, 그리고 눈부시게, 정말로 눈부셔서 선글라스를 써야 하는, 그 희디 흰 눈이 실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의 늪. 스노슈가 없으면 도저히 걸어다닐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앞에 쓴 온도에서 볼 수 있듯이, 정말 무지하게 추웠다. 함께 간 동료 중 한 사람은 콧수염을 길렀는데, 그 콧수염의 아래 3분의 1쯤이 얼었다. 작은 고드름들이 마치 실로폰처럼 열지은 것처럼 보였다. 

내일은 다른 숲으로 나갈 예정이다 (신난다!). 일기에 예기치 않은 큰 변고만 없다면...

우리를 데리고 나간 베테랑 테크니션이 스노슈를 신고 있다.


월요병 2005년 2월 2일 오후 9:06

요일로는 화요일이지만 일주일 중 첫 출근날이니 월요일 같은 기분을 버리기 어렵다. 2주에 한 번, 토론토 집에 다녀오고 나면 다음날 일에 몰두하기가 쉽지 않다. 심난하다. 심난하고 또 심난할 따름이다. 

지난 주말은 그래도 다른 때보다 더 수월했다. 평소 같으면 편도 900km씩, 1800km였을텐데, 이번에는 큰 맘 먹고 이른바 ‘산업도로’를 이용한 덕에 각각 100km씩, 도합 200km를 줄였다. ‘겨우’ 1600km밖에 안됐다. 소요 시간도 오갈 때 모두 9시간을 넘지 않았다.
 

간밤에 내린 서리가 길가의 나무들을 꽃으로 만들었다.


동준이를 생각나게 한 수영장 | 2005년 5월 8일 오전 7:24

지난 금요일 Clergue라는 임업 회사가 주최한 Environmental & Safety Forum에 참석차 수세인트마리를 다녀왔다. 행사장이 그 도시의 커뮤니티 센터의 2층이었는데 1층 수영장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동준이가 떠올랐다. 물이라면 환장을 하는 녀석의 평소 기질 때문이었지만, 무엇보다 수영장 한 켠에 번듯하게 자리잡은 어린이용 수영 시설이 참으로 그럴듯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