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스 조사 비행 중에 찍은 사진들. 구불구불한 강은 와와 곁을 흘러가는 미치피코텐 강이다.
비행기 타고 멀미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주 어릴 때,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미원에서 청주 가는 시내버스 탔다가 멀미 한 게 고작인데...
오늘, 예정에도 없이 무스(moose) 조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본래 다음 주 월요일에 한 번만 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인원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무스 조사(Moose survey)는 이듬해 가을철에 무스를 몇 마리까지 사냥해도 되는지를 계산하기 위한 것이다. 무스 사냥이 이 지역 경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인근 노던 온타리오 사람들은 물론, 멀리 미국에서까지 원정 무스 사냥을 온다.
우리는 지상 200m 안팎의 높이로 나는 헬기 위에서 무스 수를 센다. 그냥 숫자만 세는 게 아니라 장성한 수컷 몇마리, 새끼 몇 마리, 암컷 몇마리 식으로 그 성별과 크기도 식별해 줘야 한다. 그러면 그 자료를 토대로 MNR의 생물학자가 무스의 생태적 특성, 번식 주기 등을 고려해, 이듬해 가을께 몇마리까지 사냥해도 안정적인 무스 인구를 계속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겠는지 판단을 내린다. 이른바 '지속 가능한 무스 관리' (Sustainable Moose Management)인 셈이다.
그렇게 계산이 나오면 MNR은 그 숫자만큼의 사냥 티켓을 발부해서, 사냥하겠다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추첨으로 배당한다. 티켓도 없이 불법으로 사냥했는지, 혹은 배당 받은 티켓보다 더 많은 수의 무스를 사냥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은 MNR 지역 본부마다 있는 '산림 경찰', Coservation Officer들이 맡는다.
우리가 오늘 난 곳은 슈피리어 호 주립공원 상공이었다. 날씨는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바람이 퍽이나 거셌다. 헬리콥터가 자주 출렁댔다. 한 30분, 혹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속이 느글거리기 시작했다. 바람 탓도 있으려니와, 무스 발자국을 발견할 때마다 헬기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아래로 위로 퍽 급하게 방향을 틀거나 선회했다. 그 때마다 주변 풍경이 파도 치듯 변하고, 저 멀리 수평선의 각도 또한 정신 없이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멀미약을 진작에 먹어두는 건데...
아한대 삼림, 숲의 바다 너머로 또다른 푸른 바다, 슈피리어 호수가 보인다.
결국 으엑~!
MNR 내에는 이미 무스 조사 나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 멀미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 멀미약을 먹어도 안되는 사람(그들은 아예 조사 인원에서 열외다) 등으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내 앞, 조종사 옆에 앉은 생물학자 Gord Eason은 직책상 헬기를 타지 않을 수 없어 늘 멀미약으로 뒤틀리는 속을 막는다고 했다. 그와는 정반대로, 내 옆에 앉은 테크니션 Pat은 이미 30년 가까이 MNR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으로, 마치 통마무 토막 같은 몸매답게 헬기가 요동을 치거나 말거나, 좌우로 급히 틀거나 말거나, 휘파람까지 불며 여유만만이었다. 내가 결국 '위생봉투'에 토하자, 짓궂은 표정으로 "점심으로 치킨 윙을 싸왔는데, 맛 좀 볼텨?"라며 들어보였다. 다시 으엑~!
좌우로 난 길은 캐나다를 동서로 가르는 17번 고속도로이다.
그래도 헬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실로 장엄했다. 끝없이 펼쳐진 아한대 숲의 바다, 그 너머로 펼쳐져 결국 하늘과 수평선으로 만나는 검푸른 슈피리어 호수, 새하얀 눈으로 온통 뒤덮인 크고 작은 호수들, 능선 너머 능선, 다시 능선 너머 능선 식으로 겹겹이 멀어지는 언덕들, 숲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스는 겨우 두 마리밖에 보지 못했다. 어미와 새끼 -라고 해도 어림짐작으로는 다 큰 황소보다 더 컸다 -였다. 그 덕택에(?) 헬기의 스턴트 비행도 평소보다 좀 적었던 듯하다.
결국 두어 시간 뒤 재급유차 슈피리어 주립공원 사무실 앞마당에 내렸을 때 나 대신 공원의 관리 책임자가 헬기를 탔다. 조금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다들 궁금해 한다. 첫 비행이 어땠느냐, 속은 괜찮았느냐...
월요일에는 꼭 멀미약을 챙겨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개중에는 약만 먹으면 졸음이 쏟아져 헬기 안에서 잠만 잔 사람도 있다던데, 혹시 나도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몰라.
무스를 찾아서 - 두 번째 비행 | 2005년 2월 17일 오전 10:39
헬리콥터는 낮게 날면서 좌로 우로 자주 급회전을 한다. 아래 보이는 강은 키니와비 강.
불과 몇 백 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땅에 붙어 바라본, 혹은 올려본 풍경과 사뭇 다르다. 위 사진은 와와에서 30여km 떨어진 곳에 있는 키니와비 강 주변의 풍경이다.
네 시간여 비행 동안 꽤 많은 사진을 찍었다. 경치가 좋으니 실력이 별로여도 여전히 멋진 그림이 나온다. 이번은 무스 조사할 때처럼 곡예 비행이 아니어서 뱃속이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와와와 섀플로를 연결한 길. 그리고 키니와비 강. 여름에는 여기에서 카누, 카약들을 탄다.
눈에 가득 덮힌 호수들, 그리고 이 지역 숲의 주종을 이루는 가문비나무, 전나무들. 전형적인 아한대 삼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와와에서 관리하는 숲들은 저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가로X세로 70km X 70km 정도 된다. 숲 하나에 마을 몇 개씩 들어 있고, 호수는 몇천 개를 헤아린다.
헬리콥터는 미리 조사할 구역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뱅뱅 돌며 무스를 찾는다. 헬리콥터의 소음이 가까이 오면 전나무 밑에서 잎을 먹던 무스들이 그 긴 다리를 겅중겅중 거리며 눈 속을 달린다. 혹은 달리려 애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