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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완벽주의 연주 神의 음악을 듣는다 (NEWS+ 1997년 3월6일치)

정경화 ‘국제무대 데뷔 30주년’ 맞아 전국 순회공연 펼쳐 

    바이올린은 바이올린, 활은 그저 활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그녀를 만나는 순간 마술이 되었다.
   
『자, 나는 이 부분을 이가 시리도록 춥게 연주할 거예요. 여러분은 그보다 좀더 넉넉하게, 보듬듯이 따라오면 돼요』

    2월17일 1시경 정동문화예술회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49)가 13명의 실내악단원들과 함께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1악장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녀가 바이올린에 활을 갖다 댔다. 정말 「이가 시리도록」 추운 느낌이 전해왔다. 곧이어 이를 눅이듯 휘감겨오는 실내악단의 소리. 때로는 지휘자로, 때로는 대선배로, 또 때로는 협연자로 정씨는 연습을 이끌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시종 미소가 감돌았다. 음악이, 혹은 연주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는 듯이.

    정경화가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국제 무대 데뷔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음악 인생을 펼쳐보이려는 것이다. 그녀의 30년 발자취를 기리는 연주 행사는 2월20일 포항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21일 광양, 26일 부산을 거쳐 3월1일과 5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그 절정을 맞게 된다. 3월3일 춘천 공연도 예정되어있다. 정씨를 높이 평가하는 곳은 국내보다 해외, 특히 영국이다.

    영국의 대표적 연주홀인 바비칸센터는 그녀의 30년 연주 인생을 기념해 오는 10월 「정경화 페스티벌」을 열 계획. 내년 4~5월로 예정된 일본 순회공연도 그녀의 30주년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정씨는 『30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렸다』고 말한다. 성취보다 아쉬움 쪽에 더 눈길을 주는 표정이다.

   『하지만 협연으로, 솔로로, 오직 음악만을 만드는데 진력해온 30년이 얼마나 고맙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영국선 10월에 페스티벌…내년 일본 순회공연

67년 레벤트리트 국제콩쿠르에서 핑커스 주커먼과 공동우승한 이후 그녀는 격렬한 전투를 벌이듯이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완벽한 연주를 향한 그녀의 노력은 거의 병적이라 할만했다. 마치 날카로운 칼이 종이를 자르듯 지독한 정밀성과 명료함이 그녀의 연주를 특징지웠다. 그러한 특징은 종종 깊이보다 먼저 차가움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녀는 이제 「자연스러움」에 더 마음이 간다. 이제 음악과 맞서기보다 융합을 꾀한다. 30년의 세월과 결혼, 그리고 두 아이가 그녀를 바꿔놓았다.

    『음악이 곧 내 몸이고 살임을 이제는 절실히 느낀다』고 그녀는 행복하게 말한다. 물론 그것이 음악에 대한 완벽주의를 양보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녀가 볼 때 연주에 대한 결벽증, 음악에 대한 완벽주의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연주자의 의무에 더 가깝다.

    『사람들이 날더러 까다롭다고 하지만 라두 루푸나 크리스티안 치머만 같은 피아니스트에 견줄 바가 아니다. 이들의 완벽주의는 말도 못한다』며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 때문인가? 그녀가 치머만과 함께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레스피기의 소나타곡 모음집은 그라모폰상을 받았다.

    정경화는 독주회 레퍼토리로 베토벤과 바르토크와 슈만을, 실내악단과의 협연곡으로는 바흐와 비발디를 골랐다.

    고전파와 낭만파를 거쳐 현대음악에까지 이르는 독주곡들은 그녀의 불꽃 같은 열정과 화려한 테크닉, 농익은 해석력을 드러내기에 제격인 듯하다. 개성적인 반주자 이타마르 골란이 피아노를 맡았다.

    『내게 바흐는 불멸이다. 일생 동안 추구하고 또 추구해야 할 작곡가다. 그의 작품이 지닌 깊이는 언제나 새롭게 내 영혼을 울린다』 이번 공연의 협연곡 세곡 중 두곡이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BWV1041과 BWV1042인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보인다(나머지 한 곡은 비발디의 사계).

    그녀는 우리말보다 영어에 더 익숙하다. 게다가 빠르다. 음악에 대해 말할 때, 그녀는 종종 더듬거나 머뭇거린다. 우리말과 영어 사이의 혼돈 때문이고, 그보다 더 크게는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음악은, 특히 바이올린 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신비롭고… 좋다』 다시 입가에 웃음이 감돈다. 그녀의 새로운 30년이 한층 더 드넓게 펼쳐질 듯한 예감이 든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