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얘기

요다, 곰돌이 푸, 그리고 버니 샌더스


5분만... 요다도 잠이 필요해!

출근하면 매일 어김없이 도착해 있는 메일이 바로 우리 회사와 애보리지널 문제에 관한 뭇 언론의 보도들만 모아 알려주는 ‘미디어 라운드업’이다. 나야 아직도 남아 있는 ‘기자 기질’을 버리지 못해 십중팔구는 기사 제목들이라도 죽 일별해 보는 편이지만 대다수 동료들은 그냥 무시하고 지워버리기 일쑤다. 그 때문인가, 월요일이나 금요일이 되면 맨 앞에 눈길을 끌 만한 우스개나 그림을 올라온다. 홍보부서의 정성이 기특하다.


월요일인 어제 올라온 그림은 그 중 최대 히트작이라 할 만했다. 월요일의 정서나 컨디션과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오늘 아침엔 뭘 먹지?"

“When you wake up in the morning, Pooh,” said Piglet at last, “what’s the first thing you say to yourself?”

“What’s for breakfast?” said Pooh. “What do you say, Piglet?”

“I say, I wonder what’s going to happen exciting today?” said Piglet.

Pooh nodded thoughtfully. “It’s the same thing,” he said.


“아침에 일어나면 말야, 푸” 피글렛이 말한다. “너 자신한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뭐야?”

“아침은 뭘 먹지?” 푸의 대답. “너는 뭐라고 하는데, 피글렛?”

“나는, 오늘은 무슨 신나는 일이 생길까?, 라고 말하지”라고 피글렛이 말한다.

푸는 생각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나랑 똑같네.”


A. A. 밀른의 ‘곰돌이 푸’에 나오는 저 구절은 인터넷에서 널리 회자되는 유머이다. 저 구절을 뜻밖에도 구독하는 잡지의 사설에서 최근 만났다. 캐나다의 - 사실상 유일한 - 시사주간지 매클레인스에서, 아침식사가 다시금 ‘쿨한 조류’로 떠오르고 있다는 내용의 앞머리였다. 아침을 건너뛰는 일이 현대 직장인들에게 다반사처럼 된 것은 물론 바쁜 탓도 있고,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 출근 시간에 맞추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거르게 된 탓도 있을 터이다. 심지어 말도 안 되는 과학적 통계 운운하며 - 과학을 들이대는 조사치고, 실제로 ‘과학적’인 게 드물다는 점도 퍽 아이러니다 - 아침을 거르는 게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는 분파도 있다. 이래저래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과 저녁을 푸짐하게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흐름에 변화가 생긴 모양이다. 오전 시간에만 아침식사용 메뉴를 제공하던 맥도날드가 그 메뉴를 하루종일 판매하는 ‘올 데이 브렉퍼스트’로 바꾸면서 매출액이 껑충 뛰었고, 다른 끼니 때보다 싼 값에 파는 아침 메뉴의 시간대를 오후까지 늘린 캐나다의 커피-도넛 체인인 팀 호튼스도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단다. 어쨌든 가능하다면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는 게 가장 이상적일텐데, 음식 가지고 자꾸 엉뚱한 장난질을 쳐대는 장사치나 사이비 전문가들이 자꾸 튀어나오니 문제다. 



버니 샌더스

미국 대통령 선거의 양당 후보를 뽑는 코커스가 어제 뜨겁게 달아올랐다. 향후 선거의 판세와 향배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아이오와 코커스. 공화당에서는 희대의 불쉬터(bullshitter)인 도날드 트럼프가 보기 좋게 깨졌다, 라기보다는 우승하지 못했다. 급진 기독교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극우파 (‘꼴통’을 붙여도 전혀 지나치지 않은 인물이다) 테드 크루즈가 1위를 차지했다. 공화당의 후보들 중에는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화당 진영이 드러내는 정치적 수준과 세계관과 정신 세계는 우려스럽다. 여북하면 뉴욕타임스가 트럼프, 크루즈, 루비오, 젭 부시 같은 이른바 - 언론 보도의 빈도로만 따진 - ‘거물’을 다 제쳐두고 며느리도 모르는 밥 케이시 상원의원을 공식 지지했겠나. 이번 코커스 결과 케이시 의원의 지지율은, 무려 12위까지 보여주는 순위에도 끼어 있지 않다. 영점 몇 프로쯤 되겠지. 뉴욕타임스가 민망해 보일 지경이다.


민주당 쪽은 다르다. 사실상 50 대 50이다.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 전자야 누구나 알아주는 거물 중 거물이지만, 샌더스 의원은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그런데 저렇게 치고 올라왔다. 작은 정치 혁명을 몰고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젊은층의 압도적 지지 -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7-29세 연령대의 지지율에서는 84 대 14%로 힐러리를 압도한다. 힐러리를 미는 층은 65세 이상으로 70% 가까운 몰표를 받고 있다. 미국 정치의 ‘미래’ 쪽에 무게를 둔다면 누가 민주당의 후보가 돼야 할지 자명한데, 선거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승산’에서 힐러리가 샌더스를 77 대 17%로 압도하니 그야말로 딜레마다. 뉴욕타임스가 민주당 후보로 힐러리를 공식 지지한 이유 중에도 그런 점이 작용했을 법하다. 


샌더스는 트럼프나 크루즈 같은, 그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게 할 정도의 파격적이다 못해 기괴하고 엽기적인 정치관과 세계관으로, 그러한 센세이셔널리즘에 휘둘리는 무지한 미국민의 거품 인기를 끌어낸 경우와 전혀 다르게, 정의롭고 심도 깊은 세계관과 정치적 신념으로 뒤늦게 만개한 인물이다. 오늘 아침에 그의 연설들을 모은 아래 유튜브 비디오를 보고, 감동했다. 아, 저런 인물이, 어디 위인전에나 나올 법한 사상과 의지와 실천력을, 그것도 일생에 걸쳐 일관되게 추구해 온 인물이, 지금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고 새삼 감탄했다.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서 발언하는 샌더스가 차기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될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