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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지진 대피 훈련


오전 10시15분, ‘BC 지진 대피 훈련’ (The Great BC Shakeout)이 있었다. 딱 1분간 하는 훈련. 


Drop, Cover and Hold On



대피 요령이다. 주변 정황을 재빨리 살펴서 단단하고 안정된 지지물 아래 들어가 지진이 멈출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전부다. 사무실의 경우 책상 밑으로 들어가는 게 상책. 


이렇게 권하는 핵심 이유는, 어딘가로 움직이려고 하기보다는 먼저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데 있다. 사전 예고 없이 일어나는 지진은 워낙 강력해서 어딘가로 뛰거나 심지어 기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바닥에 쓰러질 공산이 더 클 수 있다는 얘기다. 지진의 최초 양상이 어떨지 알 수 없으므로 즉각 엎드려서 책상이나 무엇을 꼭 붙들고 충격에 대비하라는 조언이다.


1분이라는 시간은 더없이 짧고 무의미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진의 경우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뉴요커의 흥미로운 글에 따르면 지진학자들은 지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느냐에 따라 진도를 가늠한다. 예컨대 1989년 캘리포니아 주의 로마 프리에타에서 벌어진 지진은 겨우 15초 지속되었을 뿐인데 63명의 사상자와 7조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초래했다. 당시 지진의 진도는 6.9였다 (리히터 스케일). 30초간 지속되는 지진은 일반적으로 7.5 안팎의 진도를 보인다. 1분간 지속되는 경우는 7 후반대, 2분의 경우는 진도 8의 영역으로 올라가고, 3분은 8 후반대에 이른다. 4분간 지속되는 경우, 지진은 진도 9.0에 이른다. 대재앙이 초래되는 데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셈이다!


밴쿠버를 비롯한 BC주 남부는 지진 위험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 큰 지진이 날 타이밍을 한참 넘었고, 따라서 언제 어느 때 지진이 나더라도 전혀 놀라울 게 없다는 게 지진학자들의 경고이다. 



지도 출처: 뉴요커


오늘 실시된 지진 대피 훈련은 그러한 잠재적 위험성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 그리고 대개는 실제 효율성보다 심리적 위안의 차원이 더 큰 - 대응인 셈인데, 여러 연구와 언론 보도에 따르면 BC 정부 차원의 지진 대비는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재난 관리 기구도 제대로 훈련되어 있지 않고, 조직적이고 과학적인 대비책도 거의 없어서, 큰 지진이 벌어질 경우 엄청난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 


사내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열악한 음질의 지진 소리를 들으며 책상 밑에 잠깐 앉아 있는데, 마음이 착잡했다. 토론토나 에드먼튼에 살 때는 고려조차 해보지 않은 시나리오가, 밴쿠버에서는 더없는 현실적 위기감으로 머릿속에 들어온다. 실제로 지진이 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