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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불금

'불금'이 '불타는 금요일'을 뜻한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일주일의 피로를 가열차게 푸는 금요일 밤의 열기가 잘 느껴지는 말이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금요일은 역시 많은 이들에게 '불금'에 가까울 터이지만, 내 경우는 대체로 심심하게, 그저 안도감을 느끼며, 아 주말이구나! 하고 행복해 하는 수준이라, 불금이라기보다는 '안금'에 더 가까울 듯싶다.


그런데 이번 금요일은 진짜 '불금'이었다. 퇴근 후의 불금이 아니라 출근길의 불금. '불타는 금요일'이라고 할 때의 비유적(figurative) 불이 아니라, 진짜 (literal) 불. 금요일 아침, 출근을 하는데, 북해안과 밴쿠버를 연결하는 두 다리 중 하나인 '세컨드 내로우즈 브리지'(Second Narrows Bridge)가 갑자기 초만원이었다. 차들은 빼곡히 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총 1.3 km쯤 되는 다리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게 아니라 주차장이었다. 출퇴근 시간이 러시아워이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 다리 어디쯤에선가 무슨 사고가 난 게 분명했다. 아니나다를까 소방 트럭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 울려퍼졌다. 반대쪽 차선을 이용해 다리로 향하고 있었다. 



다리의 3분의 1쯤에 다다르면서 상황이 짐작되기 시작했다. 다리 한 가운데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승용차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센 불길과 두터운 연기가 치솟으면서 하나 뿐인 보행자용/자전거 이용자용 통로도 가리고 있었다. 이렇게 자전거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냈을 때는 이미 차의 불길이 잡히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자전거 출근자들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불 구경'하기 바빴다.



내 앞의 자전거 출근자도 아이폰으로 분주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찍은 사진을 트위터로 즉각 전송했다. 아, 과연 소셜미디어의 시대, 즉각성과 동시성의 시대 아닌가!



오른쪽 3개 차선은 완전히 차단이 됐고, 반대쪽 차선도 소방트럭 떄문에 하나가 막혔다. 소방대원들이 열심히 불을 끄는 중이다. 오른쪽 모자를 쓴 남자가 저 승용차의 운전자인 듯했다. 망연한 표정으로 현장을 지켜보다 어딘가로 열심히 전화를 했다. 



세컨드 내로우즈 다리는 라이온스 게이트 다리에 비해 교통 사고가 더 빈번하기로 악명 높다. 도로 설계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노면 상태가 고르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실제로 운전해 보면 썩 유쾌한 느낌을 주는 다리는 아니다. 아래로 거대한 화물선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다리는 아치형으로, 가운데가 해발 335 m나 될 정도로 무척 높다. 그러다 보니 다리 위를 뛰거나 자전거로 건널 때면, '건넌다'라기보다 '올라간다', 혹은 '등산한다'라는 기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제 불길이 완전히 잡혔다. 승용차는 아주 오래되고 낡아 보였다. 자전거로 급히 지나가느라 메이커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도 낡은 승용차여서 엔진 과열로 불이 난 듯했다. 이 화재로 평소보다 10분쯤 지체되었지만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사건이 잘 마무리되어 다행이었다. 말 그대로 '불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