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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등대 공원, 달리기, 그리고 월드컵 월요일 아침이다. 몇 분 뒤면 월드컵 그룹별 리그 중 아마도 가장 흥미진진한 대결 중 하나로 평가될 독일 대 포르투갈의 경기가 열린다. 브라질 시간대가 이곳과 4시간밖에 차이 나지 않아서 경기 보는 데 불편함이 별로 없다. 이번 주말 동안에도 여러 경기를 관전했다. 대개는 하이라이트로 봤고, 영국 대 이태리, 아르헨티나 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경기는 제대로 봤다. 전자는 수준 높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월드컵다운 면모를 보여준 데 반해, 후자는 기대에 못미쳤다. 메시의 극적인 결승골을 제외하면 실망스러웠다. 도리어 보스니아의 절제 있는 플레이가 아르헨티나보다 더 나아보일 정도였다. 따로 케이블TV를 신청하지 않고도 월드컵 경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캐나다의 월드컵 주관 방송사인 CBC가 인터넷 스트리밍으.. 더보기
아이러니 맡긴 지 닷새 만에 다시 찾은 내 자전거. 반으로 접을 수 있는 '폴딩 바이크' (folding bike)지만 바퀴는 풀 사이즈다. 7, 8년 전 LL Bean에서 온라인으로 샀다. 무슨 생각으로, 직접 타보지도 않고, 이리저리 점검도 해보지 않고 덜컥 주문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 한심하고 놀랍다. 싸다고 생각해서 그랬었나? 아니면 사진으로 본 겉모습이 그럴듯해서? 이젠 기억도 안나지만, 그래도 자전거가 쓸 만해서 다행이었다. 'Dahon'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접이식 자전거 브랜드라는 것도 근래에야 알았다. '자전거로 출퇴근하기' (Bike to Work) 캠페인이 시작되던 지난 월요일, 내 자전거에 문제가 생겼다. 기어 박스가 덜컥 거리고, 기어 변속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MEC에 자전거 수.. 더보기
'꿩산' 구경 밴쿠버로 이사 온 지 7개월 만에야 집 근처 그라우스 산 (Grouse Mt.)에 올랐다. 시모어 (Seymour) 산, 웨스트 밴쿠버의 사이프러스 (Cypress) 산과 더불어 노쓰쇼어 지역의 3대 스키장이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계단을 따라 산을 올라가는 '그라우스 그라인드' (Grouse Grind) 행사가 자주 열리는 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간다 간다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사 가볼 생각을 하게 됐다. 동준이 학교에서 여름에 그라우스 그라인드를 한다는 말을 듣고, 동준이가 올라갈 만한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항에서 동준이 발작을 본 이후 그저 밥 잘 먹고 튼튼하다라는 생각이 착각임을 깨닫고 나서, 너무 무리한 운동은 시키지 말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바꾼 터였다. 덩치는 산 만한 것이... 더보기
초등학교 봄 콘서트 5월14일(수) 저녁, 노쓰밴쿠버 시에 있는 '센테니얼 극장'에서 '이스트뷰 초등학교 2014년 봄 콘서트'가 열렸다. 유치원생을 비롯해 1~8학년 학생들이 조촐하게 꾸민 음악 행사였다. 청중은 당연히 학부모와 그 친구, 친지들. 그래서 콘서트의 객관적 품질과는 무관하게 성황이었고 공연 내내 열띤 호응이 터져나왔다. 콘서트는 예상대로 '아마추어' 티가 폴폴 나는, 실수 연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쾌하고 즐거운 한바탕 축제였다. 청중도 의식하지 않고, 무대 공포증도 보이지 않고 평소 하던 대로 까불고 뛰어다니고 앉고 눕는 유치원생들, 1학년생들... 그래도 악기 연주(?)를 맡은 절반은 각자 앞에 놓인 실로폰을 통통 제법 박자를 맞춰 두드릴 줄 알았고, 나머지 절반은 뒤에 서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작사.. 더보기
킬로미터 클럽 매주 월, 수, 금요일이면 아내와 성준이는 평소보다 30분쯤 더 일찍 학교로 향한다. 수업이 시작되는 8시50분 전에 운동장을 돌기 위해서다. 성준이가 다니는 '이스트뷰 초등학교' (Eastview Elementary)는 지난 4월부터 '킬로미터 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수업 전에 아이들이 운동장을 돌며 운동을 하라는 취지로 만든 자발성 프로그램이다. 원하는 사람만 하라고 했지만 어차피 부모 중 한 사람이 함께 뛰거나 걸어줄 수밖에 없으니 자발 뒤에 '성'이 붙을 수밖에... 대부분의 경우는 엄마가 성준이와 운동장을 돌 수밖에 없다. 아빠는 이미 오래 전에 출근하고 난 다음이기 때문. 그래도 재택 근무나, 웨스트밴쿠버 본사의 회의에 참석한다는 핑계로 평소보다 늦게 출근하면서 같이 뛰어줄 기회가 .. 더보기
동준이의 발작 호텔에서 새벽 4시55분에 눈을 뜬 지 16시간 만에 집에 닿았다. 예정된 8시 밴쿠버행 직항을 놓치고, 오후 3시 비행기로 캘거리를 거쳐, 어렵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놓친' 것이 아니었다. 탈 수가 없었다. 탑승을 10분쯤 앞둔 7시20분께, 동준이가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동준이가 컥컥, 기이한 소리를 냈다. 늘상 이상한 소리를 내는 터라 심상하게 생각하고 흘낏 옆을 돌아봤다. 그게 아니었다. 눈이 돌아가고 입은 차마 잡히지 않는 숨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커커컥... "동준아, 동준아!!" 몸을 잡고 흔들었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몸이 경련하며 옆으로 넘어갔다. 입에서 침이 흘러나왔다. 동준이가 죽어간다, 얘가 왜 이럴까, 어떡해야 하지? 온갖 두려움, 충격, 당혹감이 .. 더보기
시사인에 실린 엄마의 동준이 이야기 “동준아 ‘아~’해봐. 아~”“……..”“엄마 입 보고 따라 해봐. 아~~”“……..”“이렇게.. 아~~, 아~~”“………….아….” “…… 아빠! 동준아빠! 우리 동준이가 말을 했어!” 아이가 소리를 따라내기 시작한 건 만 네살이 지나서부터였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한지 1년반 남짓한 시간이 흘렀을 때다. 10년이 지난 지금, 내 무릎에 앉아 처음 ‘아~’ 소리를 따라했던 그 아이는 6척 장신의 고등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동준이의 언어능력은 여전히 유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내 아이는 흔히 ‘자폐증’이라고 알려진 오티즘(Autism)이라는 전반적 발달장애를 갖고 있다. 돌이 지나고부터 동준이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맘마” “엄마” “딸기” 라는 말을 했지만, 그걸 들어본 적은 도합 열 번도 채 .. 더보기
과잉 표현의 시대 과공비례(過恭非禮), 라는 말을 좋아한다. 지나친 공손(恭遜)은 오히려 예의(禮儀)에 벗어난다는 뜻인데, 그 말을 요즘처럼 자주 떠올린 적도 드문 것 같다. 그만큼 지나친 공손,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위장된 거짓 예의, 공치사가 많아졌다는 뜻이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마음은 도리어 더 줄었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너무'라는 말이 너무 남용되고, 뜻하지 않게 방구들이나 물이 존대어의 대상이 되고 - 이 방이 따뜻하십니다, 이 물이 시원하십니다 - 좀 예쁘장하다 싶은 연예인은 예외 없이 여신 몸매가 되고, 그저 그런 유행가 몇 곡 히트시켰던 가수는 전설이 되고 '국민 가수'가 된다. 좀 인기를 얻는다 싶으면 국민 여배우에 국민 할배, 심지어 국민 이모다. 너도 나도 국민 MC에 국민 오.. 더보기
밴쿠버의 봄 봄 기운은 희미하게나마 2월 무렵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3월이 되면서 곳곳에서 봄이 보이기 시작했다. 트레일 주변으로 새 잎이 움트거나, 꽃봉오리가 막 맺히거나, 연두빛 잎이 짙어지면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알버타 주의 새알밭에 살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풍경, 4월이나 돼야 겨우 기대할 수 있을 법한 현상과 풍경이 밴쿠버에서는 한두 달 일찍부터 나타났다 (지난해 4월 말에 쓴 에드먼튼의 봄). 옆집의 정원수로 자라는 버드나무에서 버들강아지가 보슬보슬 보풀어 올랐다.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지난 일요일(3월23일)에 찍은 사진. 2주쯤 전, 스탠리 공원을 뛸 때 찍은 벚꽃 사진이다. 아침이어서 빛의 대비가 강했고 사진 찍는 기술이 미흡해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담지 못했다. 꽃이든 잎이든 활찍 .. 더보기
맑은 날 밴쿠버에서는 맑은 날 보기가 어렵다. 겨울은 우기다. 비 내리는 계절. 기온이 높다고, 따뜻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엄동설한보다는 낫지, 폭설보다는 폭우가 낫지, 라고, 나도 에드먼튼에 살 때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그 비 내리는 나날을 지내 보니, 이것도 중뿔나게 더 낫다고 보기는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 마음은 간사하다고들 하는 것이겠지. 오랜만에 알버타 주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전화 통화를 했다. 서로 근황을 묻고, 날씨 얘기를 나누고... 거긴 사는 게 어떠냐, 아내와 아이들은 잘 지내느냐... 지난 한 주 내내 비가 내렸다. 이번 주 들어서야 해를 본다고 했더니, 에드먼튼은 내내 화창하고 눈부신 햇살이었노라고 약간은 자랑스러운 듯 말해준다. 물론이지. Sun..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