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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꿩산' 구경

밴쿠버로 이사 온 지 7개월 만에야 집 근처 그라우스 산 (Grouse Mt.)에 올랐다. 시모어 (Seymour) 산, 웨스트 밴쿠버의 사이프러스 (Cypress) 산과 더불어 노쓰쇼어 지역의 3대 스키장이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계단을 따라 산을 올라가는 '그라우스 그라인드' (Grouse Grind) 행사가 자주 열리는 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간다 간다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사 가볼 생각을 하게 됐다. 동준이 학교에서 여름에 그라우스 그라인드를 한다는 말을 듣고, 동준이가 올라갈 만한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공항에서 동준이 발작을 본 이후 그저 밥 잘 먹고 튼튼하다라는 생각이 착각임을 깨닫고 나서, 너무 무리한 운동은 시키지 말아야 하겠다고 마음을 바꾼 터였다. 덩치는 산 만한 것이...



집에서 그라우스 산까지 가는 길. 차로 15분 안팎밖에 안걸린다. 한 번 기회를 내서 거기까지 뛰어가 봐도 괜찮겠다 싶기는 한데 비탈이 많아 쉽지는 않을 듯하다.



케이블 카가 산정까지 다닌다. 겨울에는 또 다른 케이블 노선도 이용된다. 우리는 좀 늦었다는 생각에, 게다가 내가 오전에 24km 장거리를 뛴 다음이라 등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케이블 카를 타기로 했다. 가족 하루 이용권이 110달러인데 1년 회원권은 260달러밖에 안한다. 그라우스 산에 세 번만 오면 본전(?)을 뽑는 셈. 말하자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일종의 특혜 서비스인 셈이다. 하긴 캘리포니아의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도 비슷하게 이용권 가격이 책정된 걸 보고 '이곳 주민들은 좋겠다'라고 부러워한 기억이 난다. 



이제 막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표를 사러 가기 전이다. 지난 겨울에도 주변 지리를 익힌다고 이리저리 드라이브 하다가 주차장까지 오기는 왔었다. ㅎ



케이블 카를 탔다. 성준이가 계속 "Cars and buses look tiny! Why are they so tiny?" 하며 신기해 했다.



저게 무슨 산인지 모르겠다. 사이프러스 산? 아니면 그 위에 있는 다른 산? 밴쿠버 지역에는 산이 워낙 많아, 어느 산이 어느 산인지 분간을 잘 못하겠다. 흰 눈을 인 산정의 풍경이, 로키 산맥의 풍경과 비슷하다. 하지만 로키 산맥은 밴쿠버를 기준으로 서쪽이 아니라 동쪽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케이블 카와 엇갈린다. 저 아래로 보이는 호수는 카필라노 (Capilano) 호수다. 클리블랜드 댐이 물을 막고 있는데, 댐이 생겨서 호수가 된 것인지, 아니면 본래부터 호수가 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라우스 산정에 올라왔다. 두 녀석은 막대사탕을 하나씩 물고 있다. 뒤에 선 안내판이 보여주듯이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이용된다. 하지만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산정 곳곳에 커다란 나무를 깎아 만든 조형물이 많다. 사진 속의 올빼미 가족도 그 중 하나다. 나무꾼, 작업 인부, 곰 등 다양한 조형물이 길목마다 서 있다. 



산정에서는 다채로운 쇼도 한다. 사진은 벌채꾼을 뜻하는 '럼버잭'(lumberjack) 쇼다. 두 여성은 관객 중에서 차출되었다. 누가 더 빨리 통나무를 자르나 경쟁하기 직전이다. 



밧줄과 다리에 찬 스파이크만으로 25미터쯤 되는 나무를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정말 번개 같았다. 18초도 안 걸렸다. 놀라운 기량이었다. 하지만 무척 위험해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쇼를 펼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나무를 올랐다. 다른 한 사람은 몇달 전에 저 쇼를 펼치다 다리가 부러지는 변을 당했다고 했다.



그라우스 산정에는 그리즐리 곰 서식 보호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곰과 사람이 직접 마주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전기 철조망을 둘렀다. 그리즐리는 곰 중에서도 가장 사납고 위험하다. 캐나다에서는 서부 지역 일부에 서식하는데 거의 멸종 위기까지 몰렸다. 이 서식 보호지도 아마 그 때문에 조성되었을 것이다. 



직접 만난 그리즐리 곰들은 정말 엄청나게 컸다. 그리고 무서웠다. 저런 곰들을 실제로 마주친다면? ...



BC주에 사는 올빼미들을 소개하는 안내판. 새들을 데리고 펼치는 쇼도 마련되어 있는데, 우리는 그냥 건너 뛰고 내려왔다. 성준이는 어느 올빼미가 어느 올빼미인지 학교에서 배워 잘 안다고 자랑을 했다. 



그라우스 산의 마스코트? 곰 탈을 쓴 사람/곰이 돌아다니길래 기념 사진을 찍고 5달러 팁도 건넸다 (그럴 때마다 이게 적당한 금액인지 늘 조바심이 난다). 곰은 약간 촌스러우면서도 정겨운 이미지여서 과연 캐나다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하하. 



케이블 카를 타고 내려오며 바라본 밴쿠버 풍경. 물 건너는 밴쿠버 시가지, 이쪽은 노쓰 밴쿠버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날씨가 약간 흐린 데다 안개가 많이 껴서 풍경이 만족스러울 만큼 선명하지는 않았다. 다음에 또 기회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