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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성 패트릭 데이의 눈(雪) 토요일 (3월17일) 아침 게으르게 일어나 보니 밖에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대충 가늠하기로 5~10cm 수준. 제법 많은 눈이다. 하지만 바람이 잠잠했던지 그 눈들은 얌전하게 내려앉아 실로 '소복하다'라는 표현에 맞게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연출했다. 문득 오늘이 '성 패트릭 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 직장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면서 성 패트릭 데이에 대한 농담들을 주고받은 기억도 났다. 짐짓 아이리쉬 풍의 음식이 있는지 웨이터에게 물었고, 맥주도 기니스(Guinness)로 마셨다. 내일 (그러니까 오늘) 토론토 다운타운에서 벌어질 성 패트릭 데이 퍼레이드에 갈까 말까에 대한 설왕설래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때 아닌 -토론토 사정으로 본다면 꼭 '때 아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 눈이 내렸.. 더보기
잊고 싶은 기억: 토론토에서 기차로 출퇴근하기 토론토에는 그 인근 지역과 연결된 통근 전용 열차가 있다. 'GO'라는 이름이 붙은 기차 서비스다. 관할 기구는 토론토 시가 아니라 온타리오 주정부다. 이름은 번듯한 'GO'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너무 많다. 걸핏하면 늦고, 중간에 이유없이 - 물론 뭔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알려주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이유없이'와 다를 바가 없다 - 선 채 가지 않거나, 한두 편 취소하기를 밥 먹듯 한다. 아래 글들은 1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토론토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스카보로 지역에 살면서 기차로 출퇴근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 다시 열 받는다. (2012년 2월18일) 정차역을 지나쳤습니다...! "다음역은 루지힐입니다." 길드우드 역에서 한 5분쯤 달리면 내가 내릴.. 더보기
페이퍼 컷 (Paper Cut) 가끔 종이에 손이나 손가락을 베인다. 그 종이에 사악~ 하고 베일 때의 그 느낌이 참 오싹하다. 싫다. 사악~ 하는 소리도 생생하게 들리는 것처럼 착각된다. 가볍고 하찮게만 보이는 종이 한 장. 그러나 거기에도 칼이 숨어 있다. 흔히 '페이퍼 컷'이라 부르는 이 작은 사고를 달가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기분 나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또 그 상처라는 것도 대체로 무슨 처방을 하거나 연고를 바르거나 밴드를 붙이기에 좀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제법 쓰리다. 오늘은 무슨 운인지, 베인 자리에 두 세번 되풀이해서 종이'칼' 세례를 받았다. 물론 더 쓰렸다. 기분도 썩... 그래도 달리 보면, '산재'라고 해야 고작 페이퍼 컷 수준인 직업을 가진 게 얼마나 복스러운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2.. 더보기
도심의 거미줄 토론토에는 아직 전차 (電車 streetcar)가 다닌다. 사전에 따르면 전차는 '도시 길거리에 설치된 선로 위를 전기의 힘으로 운행하는 철도차량'을 일컫는다. 토론토 시 전역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전차 노선이 제법 잘 발달해 있어서 꽤 많은 이들이 전차를 이용해 통근한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베이 스트리트와 칼리지 스트리트에도 전차가 다닌다. 콘크리트 도로 위로 움푹 패어 뻗어나간 선로를 볼 때마다, 그 콘크리트 위를 가득 메운 승용차들과 연결지어 '불협화음'이라는 말을 떠올리곤 한다. 전차와 승용차,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게 승용차 탓인지, 아니면 전차 탓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차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존속하면서, 토론토의 중요한 대.. 더보기
공중도덕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때, '도덕'이라는 과목이 있었다. 그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유력하고 위험하고 음험한 수단이었다는 점을 인식하는 한편, 나는 그 안의 일정 부분은 평화로운 사회적 공생을 꾀하는 데 분명히 유익했음도 인정한다. 캐나다로 이민 와 살면서 그런 자각과 더 자주, 그리고 종종 아프게 마주친다. 도무지 '공중도덕'과는 담을 쌓은 것처럼 행동하는 철면피들, 이 세상에 오직 저 하나밖에 중요한 게 없다는 듯 말하고 움직이는 저질들을 너무나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빗물 뚝뚝 떨어지는 비옷을 벗지도 않고 전철 의자에 털썩 앉아 가는 인간, 기차 안에서 맞은편 자리에 더러운 신발을 벗지도 않은 채 -벗으면 더 끔찍할지도... - 다리를 쭉 뻗어 턱 올려놓고 가는 인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