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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10000m, 그리고 이른바 '올림픽 룰'의 야만성 (잡생각)


한국의 이승훈 선수가 100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한국 체육계의 또다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승훈보다, 올림픽 신기록으로 1위를 하고도 실격된 네덜란드의 스벤 크라머 선수에게 더 마음이 간다. 정말 안됐다. 그리고 스포츠 룰이 가진 불합리와 무례를 다시 확인한다.

크라머가 달리는 과정에서 선을 밟아 실격된 게 드러났으면 진작 경고할 것이지, 끝까지 다 달리게 해놓고 실격시키는 그 싸가지는 대체 뭐란 말인가? 1, 200미터도 아니고 10km인데... 적어도 그렇게 선을 밟아 규정을 어겼다면 단번에 실격시키지 말고 일단 경기를 중단한 다음, 한두 시간 뒤에 한 번 더 뛰도록 배려하는 게, 지난 4년간 피눈물 나게 고생한 선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아무리 인생이라는 게 불공평하다지만, 스포츠 룰은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드는 것이고, 따라서 조금만 더 생각하고, 특히 선수들의 입장에서 고민해 본다면 그렇게 싸가지 없는 룰은 충분히 더 인간적이고 사려깊고 공평한 것으로 개선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몇년간 공들여 쌓은 탑을, 땀과 눈물로 단련해 온 그 세월을, 단 한 번의 경쟁으로, 그것도 사소한 실수 하나를 꼬투리 잡아 실격시키고 탈락 시키는 짓은, 내 눈에는 야만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또 하나... 

올림픽이라는 게 결국 경쟁이고, 특히 메달을 따야 각광을 받는 것이지만 메달 몇 개를 땄느냐를 놓고 그것을 곧 그 나라의 전체 경쟁력으로 환치하는 것은 좀 유치하지 않은가. 특히 피겨스케이팅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신경전이 대단한 것 같은데, 나도 한국에 살면 덩달아 흥분하고, 김연아를 깎아내리는 일본애들한테 분노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강건너 불 보듯 흘려 듣고 훑어 보니, 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걸 어쩌랴.

업데이트

나중에 기사를 보니, 또 트위터의 지적을 들어보니, 크라머 선수가 제대로 돌고 있는 것을 그 코치가 잘못 알고 안쪽으로 돌게 유도해서 결국 그런 '내 커리어 최악의 사태' (크라머의 말)가 벌어졌단다. 그래도 안타까운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또 내가 올림픽과 관련해서 불평을 터뜨린 것은 비단 이 경기 때문만은 아니다. 숏트랙 경기를 봐도 그렇고, 스키 경기 - 특히 한 명씩 내려오면서 시간을 재거나 묘기를 펼치는 경기 -를 봐도 그렇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선수라도 넘어질 수 있는 법이다. 왜 봅슬레이나 스켈리튼(왜 이름이 이런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 루지 같은 경기는 몇 차례나 달려서 그 기록을 합산하는데 왜 모글은 그렇게 안하나? 숏트랙도 마찬가지. 그 경기의 특성상 몸싸움도 심하고, 내 잘못이 전혀 아닌데도 다른 선수 넘어지는 데 휩쓸려 금메달의 꿈이 산산조각 난다. Too bad...그게 끝이어야 맞을까?

올림픽이 새로 열릴 때마다 바뀌는 경기 규칙은, 실은 올림픽 또한 현실의 아사리 정치판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는 점을 새삼 입증한다. 하키도 그렇고, 피겨 스케이팅도 그렇다. 특히 힘센 나라가 자기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바꾸면 그만이다. 세계야구선수권대회는 안그런가. 

그런데...생각해보니, 올림픽 이야기를 꺼낸 것부터가 실수다. 제대로 마무리할 수도 없는 주제를 겁없이 꺼낸 게 실수다. 세상에 말도 안되는 게 어디 한둘이란 말인가. 트위터에서도 누가 지적했다시피, 1년 - 사실은 3년, 아니 그 이상 - 꼬박 4, 5시간밖에 안자면서 공부하다가 수능날 몸져 눕거나 컨디션 나빠 시험 망치면 그걸로 말짱 허당이 되고 만다. 또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세상에 이런 게... 에이, 여기에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