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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등대 공원, 달리기, 그리고 월드컵

월요일 아침이다. 몇 분 뒤면 월드컵 그룹별 리그 중 아마도 가장 흥미진진한 대결 중 하나로 평가될 독일 대 포르투갈의 경기가 열린다. 브라질 시간대가 이곳과 4시간밖에 차이 나지 않아서 경기 보는 데 불편함이 별로 없다. 이번 주말 동안에도 여러 경기를 관전했다. 대개는 하이라이트로 봤고, 영국 대 이태리, 아르헨티나 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경기는 제대로 봤다. 전자는 수준 높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으로 월드컵다운 면모를 보여준 데 반해, 후자는 기대에 못미쳤다. 메시의 극적인 결승골을 제외하면 실망스러웠다. 도리어 보스니아의 절제 있는 플레이가 아르헨티나보다 더 나아보일 정도였다. 


따로 케이블TV를 신청하지 않고도 월드컵 경기를 볼 수 있는 것은 캐나다의 월드컵 주관 방송사인 CBC가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전경기를 생중계하기 때문이다. 화질도 좋고, 하이라이트를 비롯해 흥미로운 비디오를 많이 올려놓았다. 주말이 아닌 오늘 아침 캡처한 탓에 독일-포르투갈 전 그림이 나와 있다.


토요일에는 웨스트밴쿠버의 서쪽 끝자락에 있는 등대공원(Lighthouse Park)에 다녀왔다. 역사적인 건물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른바 '헤리티지 공원'인데, 막상 가보니 '공원'에서 연상되는 평탄하고 수월한 이미지와 달리 언덕과 바위들이 제법 많은 트레일에 더 가까웠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도리어 더 호감이 가는 공원이었다. 장정 서넛이 서서 팔을 뻗어야 할 정도로 거대한 삼나무, 소나무 들이 빼곡했다. 


공원 초입. 카메라를 울타리 위에 올려놓고 타이머로 찍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보면 동준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난다. 성준이는 여전히 작기만 한 꼬맹이다.

'등대 공원'이라는 이름의 출처인 그 등대. 직접 등대 안까지 들어가 볼 수는 없게 돼 있다. 등대 부근에 여러 집들이 아직 남아 있고 그 중 한 채에는 아직 사람이 산다. 우리가 여기에 갔을 때 한 아주머니가 나와 마당을 쓸고 있었다.


헤헤~! 성준이가 웃기다며 가리킨 화장실 표지판이다. 누군가가 머리를 떼어내고 공룡 머리를 그려놓았다. 퍽 유머러스하면서, 솜씨도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은 좁고 경사도 가팔라 위험해 보였다. 그렇게 내려가면 큰 바위들이 여럿 나온다. 바람이 제법 세찼고, 하늘도 비구름을 잔뜩 이고 있었다. 소나무 사이로 둥둥 떠 있는 대형 선박들이 보이고, 멀리 웨스트 밴쿠버 시가지도 희미하게나마 눈에 잡혔다.


일요일 아침, 여전히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난 주 뛴 하프마라톤 여파 탓에 - 무리해서 너무 빨리 뛴 것 같다 - 허벅지 근육통이 여전히 신경쓰여서 조금만 뛰자고 나갔다가, 결국은 시모어 산의 트레일에서 출발해 린 밸리의 상류수(headwater) 트레일을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말았다. 총 거리는 14km 정도. 먼 거리도, 짧은 거리도 아닌 어정쩡한 거리... 위 사진은 그 상류수 트레일이 시작되고, 차도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End of the Line General Store'다. 주말 아침이면 등산객이나 자전거 이용자들이 이곳에 모여 커피를 마시고 담소를 나눈다. 퍽 운치있게 생긴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