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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사이클링

진땀 뺀 첫 자전거 출퇴근

출근길에 비가 내렸다새벽녘 천장을 세차게 두드리던 기세는 수그러들었지만 그래도 가랑비라고는 하기 어려운 비였다. 비가 오든 말든 이번엔 꼭 자전거를 탈 것이라고 작심한 터라,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전거를 실제로 타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맑았던 토요일과 견주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비탈이 많아서 내리막길 브레이크 조절하는 일이 특히 어려웠다. 


아니나다를까, 집에서 나와 마운틴 하이웨이의 비탈길을 내려와 키스(Keith) 로드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브레이크를 너무 심하게 잡은 탓인지 자전거가 죽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갓길이어서 교통 사고의 위험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찔했다. 그 탓일까, 뒷 바퀴 쪽 브레이크가 느슨해진 느낌이었다. 휴대용 자전거 드라이버 세트를 챙기지 않은 게 아쉬웠다.


토요일에 '리허설' 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 어느 길을 타야 하는지, 교통 상황은 어떤지, 어느 지점의 골목길을 유념해야 하는지 등 큰 줄기를 미리 잡아둔 덕택에 마음이 한결 편했다. 


이건 토요일에 아내가 찍어준 - 아니 내가 찍어달라고 한 - 사진. 월요일 복장도 이와 같았다. 다만 회사 가서 입을 옷가지와 점심 도시락, 가외의 속옷 등이 든 백팩이 여기에 추가되었다.


회사에 닿긴 했는데 자전거를 세우는 주차장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하에는 여러 개의 셔터가 있었지만 내 출입증을 댈 수 있는 카드 리더기는 하나밖에 없었고, 카드를 대도 작동하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마침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직원이 있었다.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어, 그런데 여긴 자전거가 없다. 오토바이들뿐이다. 일단 자전거를 아무데나 세워놓고 올라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다른 동료한테 물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계단을 막 올라가는데 경비가 내려온다. 너 자전거 세울 데를 찾느냐고 묻는다. 아마 감시 카메라를 통해 길을 못찾고 헤매는 나를 본 모양이다. 


다시 자전거를 끌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경비가 여기라고 알려준 데를 보니 카드 리더기가 기둥 뒤에 숨어 있다. 출입증을 대니 사람 키 높이밖에 안되는 나즈막한 셔터가 마법처럼 열린다. 아, 다행이다!


샤워실에 들어가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 입는데 아차 싶었다. 허리띠를 안가져 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지 허릿단이 그리 넓지 않아 굳이 손으로 잡지 않아도 바지가 흘러내릴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흘러내릴 정도로 풍성한 바지가 두어 벌 있다). 그래, 그냥 이렇게 하루 버티지 뭐...다행히 밖으로 나돌 일도 오늘은 없었다.


퇴근길은 맑았다. 해가 나왔다. 하늘 한쪽 구석이 거뭇거뭇하게 변하면서 곧 비를 뿌릴 듯한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아침처럼 비가 내린 것은 아니었다. 스탠리 공원 옆으로 난 완만한 비탈길을 땀나게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자전거 체인이 벗겨진다. 기어를 변속하는 순간 벌어진 일이다. 대개는 쉽게 복구가 됐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한두 바퀴 회전한 뒤에 마치 용수철 튀듯 뒤쪽 기어에서 체인이 두 단 사이를 툭툭 오간다. 도무지 속도도 안나고, 기어비를 낮추면 체인이 벗겨지고, 죽을 맛이었다. 집에 전화해서 아내더러 태우러 와달라고 할까? 


자전거에 앉으면 내리기가 싫다. 블랙베리를 등에 맨 백팩에서 꺼내기도 귀찮았다. 그냥 버티고 가보자. ... 워낙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고, 물론 제대로 관리도 하지 않고 있었던 대가다...싶다. 내 손으로 고칠 수나 있을지,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전거를 어렵사리 타고 오면서도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저녁을 먹고 근처 MEC로 가서 자전거를 맡겼다. 기분 튠업하고, 자잘한 문제를 바로잡는데 4, 50달러쯤 한단다. 4, 5일쯤 걸린다고 했다. 자전거 수리가 끝날 때까지, 아내의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했다. 물론 여성용이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문제없이 굴러가기만 하면 되지. 이번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브레이크도 점검하고, 밸런스도 맞춰 보고, 기어 변속은 잘 되는지도 미리 확인했다. 물론 타이어 바람도 잘 채워넣고...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첫 출퇴근을 무사히 마쳤다. 벼르고 별러 이번 주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해보자고 마음 먹었는데 날씨도 도와주지 않고 (비가 내렸다), 자전거도 고분고분하지 않았지만 (브레이크와 기어박스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도 어찌어찌 왕복 30km를 갔다 왔다. 그렇게 해서 온실기체를 6kg이나 덜 배출했단다. 은근히 뿌듯하다.


내일도 비가 올 거라는데... 어쨌든 허리띠는 잊지 말아야지. 


집(초록색 화살표)과 회사 사이. 맨 왼쪽 초록색으로 된 코끼리 머리 모양의 덩어리가 스탠리 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