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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동준이의 발작

호텔에서 새벽 4시55분에 눈을 뜬 지 16시간 만에 집에 닿았다. 예정된 8시 밴쿠버행 직항을 놓치고, 오후 3시 비행기로 캘거리를 거쳐, 어렵게 어렵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놓친' 것이 아니었다. 탈 수가 없었다. 탑승을 10분쯤 앞둔 7시20분께, 동준이가 발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동준이가 컥컥, 기이한 소리를 냈다. 늘상 이상한 소리를 내는 터라 심상하게 생각하고 흘낏 옆을 돌아봤다. 그게 아니었다. 눈이 돌아가고 입은 차마 잡히지 않는 숨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커커컥... "동준아, 동준아!!" 몸을 잡고 흔들었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몸이 경련하며 옆으로 넘어갔다. 입에서 침이 흘러나왔다. 동준이가 죽어간다, 얘가 왜 이럴까, 어떡해야 하지? 온갖 두려움, 충격, 당혹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엄마도 뒤늦게 달려와 동준아, 동준아, 부르며 등을 두드리고 안으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둘다 패닉에 빠졌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몸을 눕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바닥에 뉘었다. 경련하는 동준이의 얼굴은 금방 땀에 젖었다. 그 때 탑승구 근처에서 기다리던 승객들 중 두 여성이 의사라며 도와주러 달려왔다. 몸을 옆으로 돌려 눕히고, 목과 가슴에 손가락을 대고 박동을 쟀다. 박동은 정상이라고, 괜찮다고 그대로 두고 기다리라고 했다. 


경찰이 달려왔고, 뒤이어 구급 의료사 (패러메딕)들이 달려왔다. 우리를 도와준 의사들과 같은 질문이 두 번 더 날아왔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느냐, 약을 복용하고 있었느냐, 앨러지가 있느냐, 뭔가 특별한 음식을 먹었느냐... 그 사이 탑승 안내 방송이 나왔고, 패러메딕은 근처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고 여행을 해도 좋다는 의사의 보증 (medical clearance)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준이와 엄마는 그들과 함께 구급차로 먼저 근처 병원으로 가고, 나는 성준이와 함께 택시로 따라갔다. 



이 때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탑승 방송을 기다리며 책을 보고 있었다.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동준이가 그처럼 발작하며 쓰러졌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특별히 다른 음식을 먹지도 않았고, 약도 먹지 않았고, 앨러지도 없었다. 대체 왜? ... 동준이가 그처럼 쓰러져 경련하자, 성준이는 그 모든 과정이 너무 무서웠던 듯 멀찌감치 도망가 책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먹이며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 



공항 근처 벌링게임(Burlingame) 시에 있는 밀스-페닌슐라 병원의 응급실에 왔다. 동준이는 금방 회복했지만 경련 당시의 안간힘 때문인지 양볼이 보랏빛에 가깝게, 꼭 멍든 것처럼 변했다. 동준이 때문에 충격 받은 엄마도 기진맥진한 상태다. 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혈압을 재고, 피 검사와 소변 검사를 거쳤다. 의사는 검사 결과에 따라 CT 검사도 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으나, 나는 CT는 캐나다에 가서 하겠노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미국의 병원에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진료 비용을 물릴지가 걱정이었다. 간단한 진료나 치료에도 몇천 달러에 이르는 비용 청구서를 받은 사람들의 '호러 스토리'를 너무 많이 들은 탓일 것이다. 미국에서 받은 진료 서비스의 비용을 캐나다의 내 직장에서 가입한 의료 보험으로 커버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의사도, 아직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 45분~1시간 뒤에 나온다고 했다 - 동준이의 반응으로 볼 때 괜찮아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