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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평전

한글 제목 (가제): 니콜로 마키아벨리 – 지적 전기

지은이: 코라도 비반티 (Corrado Vivanti)

영역: 사이먼 맥마이클 

출간일: 2013년 5월5일

출판사: 프린스턴대 출판부 (하드커버)

종이책 분량: 280페이지


개요

이탈리아의 손꼽히는 마키아벨리 전문가였던 코라도 비반티 (2012년 타계)의 마키아벨리 전기. 마키아벨리를 불멸로 만든 걸작 ‘군주론’ (The Prince)의 출간 500년을 기념한 출간물. 걸작 ‘군주론’을 집필하기 전의 활동을 요약한 제1부 ‘피렌체 서기관 시절’, ‘군주론’을 집필하던 시기의 정치사회적 정황을 그린 제2부 ‘피렌체에서의 추방’, 마키아벨리의 불우한 말년을 그의 저작과 서신들로 정리한 제3부 ‘니콜로 마키아벨리 – 역사가, 희극 작가, 그리고 비극 작가’로 구성. 지은이의 감정과 주관적 견해를 최대한 배제하고 마키아벨리가 남긴 ‘지적 증거물’, 즉 그의 여러 저작과 서신, 당대의 기록들을 바탕으로 그의 생애를 중립적이고 건조한 문제로 서술. 30쪽이 넘는 노트, 마키아벨리의 저작에 쓰인 단어 ‘스타토’ (stato)의 의미를 톺아본 20여쪽의 부록 등이 잘 드러내듯, 마키아벨리에 대한 진지한 학술적 접근이 돋보임 (stato는 국가, 정부, 상태, 조건 등의 뜻을 지닌 이태리어). 15-16세기의 유럽사에 어느 정도의 지식과 관심을 가진 고급 독자, 한 발 더 나아가 마키아벨리와 그의 저작에 상당한 수준의 이해를 갖춘 전문가라면 퍽 흥미를 느낄 법하지만 일반 독자라면 다소 버거울 것으로 판단됨.


해설

이름이 곧 일반적인 형용사나 동사로도 통용되는 흐름에서, 마키아벨리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주로 테크놀로지 쪽에 치우친 요즘 경향의 선조 격이라 할 만하다. 그의 걸작 ‘군주론’은 출간된 지 5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의 이름을 ‘정치적 권모 술수’와 동일선상에 놓게 만들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영어사전이 ‘Machiavellian’을 형용사로는 ‘마키아벨리 같은’, ‘권모술수에 능한’, ‘교활한’으로, 명사로는 ‘권모 술수가’라고 번역하는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한 고착과 편견은 마키아벨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도리어 장벽으로 작용한다. 마키아벨리를 단순히 16세기 이태리의 정치인이자 ‘군주론’의 저자, 정치적 권모술수의 달인 정도로만 인식함으로써, 그가 남긴 수많은 서신과 다른 저작들의 맥락에 담긴 ‘진짜 마키아벨리’는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토리노 대학, 페루쟈 대학, 로마 대학 등에서 역사학 교수로 재직하며 이태리 역사를 가르쳤던 마키아벨리 전문가 코라노 비반티는 이 책 ‘니콜로 마키아벨리 – 지적 전기’에서, 바로 그 ‘수많은 서신과 다른 저작들’에 착목한다. 그가 피렌체 공화국의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며 쓴 공식 서한문을 비롯해 친구, 상사, 선배, 동료 들에게 쓴 편지, 심지어 그의 아버지 베르나르도의 일기 등을 통해 그의 생각, 다양한 인간 관계를 드러내면서 더없이 입체적이고 복잡한 3차원의 마키아벨리를 그려 보이는 것은 물론, 그가 살았던 시대의 정치 사회적 정황도 꼼꼼하게 기술한다. 책은 정치가, 군대의 지휘자, 저술가, 철학자 등 다양한 면모를 함께 지녔던 마키아벨리의 전모를, 그의 생애에 중요한 굽이가 되는 시기나 역사적 사건 별로 구분해 5-10 쪽 정도의 짤막한 분량으로 묘사한다. 그러한 단편적 장(章)들은 이를테면 마키아벨리라는 큰 그림을 구성하는 퍼즐의 조각들인 셈이다. 지은이 자신도 ‘이 책의 목적은 마키아벨리의 실제 활동과 그의 다양한 저작들을 결합하는 것이었는데, 그 결과는 ‘정치 사회’의 범주에 묶이는 사람들의 운명을 이해하는 근본 토대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이 책의 부제 ‘지적 전기’ (Intellectual Biography)는 이 책의 성격을 표나게 드러낸다. 비반티 교수는 마키아벨리라는 한 인물의 시각에서 그의 생애를 직접 표현하기보다는, 그를 둘러싼 당대 사회의 정치적 격변과 프랑스, 스페인 등과의 때로는 화해롭고 때로는 적대적인 국가 관계, 그리고 이태리 안 주요 공화정들 간의 내전 등 주변 정세를 앞에 내세우고, 그런 상황에서 마키아벨리가 어떤 역할을 담당했는지, 아직 기록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그의 공식 서한들의 주요 대목을 인용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당대 사회 상황을 명철하고 날카롭게 이해했고, 피렌체 공화국의 입장을 외교 상대국들에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라고 직설하는 대신, 그의 명철하고 날카로운 이해와 뛰어난 설득력을 잘 드러내는 그의 공식 서한문 대목을 독자에게 들려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깨닫게 하는 방식이다. 


마키아벨리가 아직 영향력 큰 정치 이론가로서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의 ‘무명 시대’ (shadowy period), 그가 피렌체의 공무원으로 지내던 시절의 여러 인간 관계나, 위트와 유머 넘치는 그의 성격을 당시 기록들로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메디치 가문의 패퇴와 복권의 운명과 궤를 같이했던 마키아벨리의 인생 역정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피렌체 추방, 고문, 투옥, 사면 등의 간난신고로 점철되는데, 이 책은 그 시절의 마키아벨리에 대해서도 더없이 차분하고 중립적인 톤으로 그의 재기 노력, 당대 역사가이자 정치인이던 프란체스코 구치아르디니와 나눈 서신 속에 담긴 그의 생각 등을 묘사하고 있다. 비반티 교수는 마키아벨리를 둘러싼 부정적인 견해의 뿌리로, 그가 ‘무형의 가치들에 의존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임을 꼽는다. 그가 볼 때 마키아벨리는 현실주의자였고, ‘사람들이 실제로 사는 방식’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당위성’ 간의 차이를 뚜렷이 구분했다. 


비반티 교수의 마키아벨리 전기는 간략하고 명료하지만 다루는 범위는 그의 생애 전체를 아우른다. 피렌체 공화정에서 마키아벨리가 한 역할과, 프랑스 루이12세, 체사레 보르자, 로마 황제 막시밀리안 1세 등에 대한 그의 방문 내용을 여러 서신들로 보여주는 한편, ‘피렌체의 역사’, ‘전쟁의 기술’, ‘만드라골라’, ‘로마사 논고’ 등 다른 여러 저작들의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그는 또한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의 집필을 통해 메디치 가문의 호의를 얻어 정치 사회에 복귀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비반티 교수의 마키아벨리 전기, 아니 마키아벨리 분석론은 마키아벨리의 전인적 면모를 파악하고 싶은 독자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16세기 이태리 역사와 주변국들의 정치 사회적 환경, 그리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마키아벨리가 어떤 역할을 담당했고 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심도 깊게 파고들 의향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좋은 지침서가 될 듯하다. 그처럼 마키아벨리에 대한 비반티 교수의 분석은 세밀하고 학술적이다. 마지막에 부록으로 딸린, 마키아벨리의 저작들에서 스타토 (stato, 국가)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와 맥락으로 쓰였는지를 보여주는 ‘노트’는 이 책의 학술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마키아벨리를 연구하는 학자와 독자들에게는 퍽 흥미로운 생각거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결론

다시 요약하자면, 이 책은 15-16세기 유럽사와 마키아벨리에 대한 관심이 큰 독자 – 아마도 고급 독자 – 와 이 분야의 학자들에게는 잘 요약된 또 한 권의 정보서로 환영 받을 가능성이 크지만, ‘군주론’을 쓴 정치적 권모술수의 대명사인 마키아벨리의 드라마틱한 전기를 막연히 기대한 독자라면 몇 페이지 못 넘기고 포기할 공산이 크다. 내 별점은 ★★★☆ (다섯 개 만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