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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의 사소하지 않은 의미


'다스베이더와 아들'을 재미나게 읽고 나서 작가 제프리 브라운의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그의 다른 작품도 좀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 찾아보니 제법 많은 책들이 나온다. 그중 'Little Things'를 빌렸다. 책 표지에 '클럼지(Clumsy)의 저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건대 그것도 봐야 마땅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나중으로 미뤘다. 한국에 들어갈 날이 며칠 남지 않아서 마음도 다소 분주하고,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늦지 않게 돌려줘야 한다는 부담도 슬슬 생기는 마당이다. 찜해놓은 책들도 8월 말 이후로 '정지'(suspend) 시켜놓았다. 



'Little Things'는 딱히 뭐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일상의 사소한 에피소드들을 통한 자서전이라고 하면 맞을까?  아니, 자서전은 대개 본인의 생애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회고록이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생애의 특정한 시기나 단면을 뽑아내어 기술하는 게 회고록이니까...


책은 제목 그대로 소소하기 그지 없는 일상의 여러 단면들을 담고 있다. 어떤 에피소드는 두세 페이지밖에 안되기도 하고, 또 어떤 에피소드는 책 전체 분량의 3분의 1에 가까울 정도로 길기도 하다. 우연히 들었는데 워낙 마음에 들어서 그 노래가 무엇이고 가수가 누구인지 찾아 헤매는 이야기 (하필이면 500장이나 되는 CD를 무작위 재생 (shuffle)으로 해놓아 그 카페 주인도 그 노래와 가수를 모른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끔찍한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되어 겪는 이야기, 대학 시절 여자 친구를 찾아가 며칠 묵으며 겪는 이야기, 친구의 초대로 BC의 어느 작은 섬에 들어가 그 친구, 친구의 친구와 더불어 대자연 속의 때로는 불편하고 때로는 감동스러운 삶을 체험하는 이야기 (이 책에서 가장 긴 에피소드), 동거녀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은 뒤 초보 아빠와 엄마로서 새롭게 체험하고 느끼는 이야기 등등. 



무엇인가 충격적인 감동을 안겨주지는 않지만, 읽어가는 가운데 마음이 차분해지고, 때로는 숙연해지는 느낌을 전해주는 소품이다. 그래 세상은 이렇듯 사소한 일들, 우연한 엇갈림이나 만남들로 채워져 있지... 그 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되는 일들... 브라운의 'Little Things'를 보면서/읽으면서 문득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중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있어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카메라로 잡은 위 그림들 중 맨 아래는 저자가 그토록 찾아 헤맨, 우연히 듣고 반해버린 노래의 주인공을 보여준다. 앤드루 버드의 노래를, 그래서 나도 덩달아 들어봤는데, 읊조리듯 차분한 그의 목소리가 퍽 매력적이었다. 브라운의 '그래픽 나블'(Graphic Novel)이 버드의 노래를 닮은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한 가지 아쉬움은 인쇄가 깨끗하고 정밀하지 못해 그림들의 선이 잘 살지 못하고 떡진 것처럼 뭉쳐 나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


아래 유튜브 음악은 앤드루 버드의 2005년 앨범 'Andrew Bird & the Mysterious Production of Eggs'에 실린 '소베이'(Sovay)라는 노래다. 이 제목과 노래의 의미를 알고 싶으신 분은 위키피디아를 참조하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