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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구름

캐나다에서 산 하나 없이 평야만 광막하기 그지없게 펼쳐진 지역을 '프레어리'(Prairie)라고 부른다. 대초원이라는 뜻이다. 알버타 주는 사스카체완, 마니토바 주와 더불어 프레어리 주에 포함된다. 서쪽으로 로키산맥을 끼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지평선이 보일 만큼 광활한 평야 지대이기 때문이다. 프레어리 지역의 소설가가 쓴 한 범죄소설의 첫 머리에는 주인공 형사가 먼 경치를 볼 때면 드러내는 실눈 뜨는 습관을 묘사하면서, 프레어리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다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그 소설이 집에 있는데, 이 블로그를 쓰면서 찾다가 포기했다. 책 정리를 해야 하는데...) 알버타 주로 옮겨와 살아보니 그 말에 공감이 간다. 


프레어리 지역의 하늘은 높기만 한 게 아니라 넓다. 지평선까지, 혹은 눈이 닿는 저 먼 평야의 끝까지 하늘이 아득하게 이어지고 있다. 중도에 부딪힐 만한 산이 없는 프레어리에서, 구름은 쉼없이, 그리고 빠르게 움직인다. 그래서 날씨의 변화도 종잡기 어렵다. 이곳에서 날씨와 관련해 통용되는 말 중 하나가 "20분만 기다려 봐"다. 폭우가 쏟아진다고? 20분만 기다려 봐. 햇볕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20분만 기다려 봐. ...


지난 사흘간 에드먼튼에서 열리는 연례 정보 프라이버시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그 사흘 동안, 오전은 맑고 오후는 비를 뿌리는 날씨가 계속됐다. 수요일에는 토네이도 주의보에서 경보까지 갈 정도로 급박한 기상 상황도 나왔다. 그 동안, 하늘의 구름들도 마치 낮과 밤처럼 대조적인 양상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이 아름답다고들 한다. 물론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캐나다의 하늘은 또 캐나다의 하늘대로 매력이 있다. 압도적이고 광막한,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로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눈이 닿는 곳에 산이 없다. 그러다 보니 눈 닿는 곳까지 구름은 점점이 떠 있고, 하늘은 파랗게 펼쳐진다.


시커멓게 몰려오는 먹구름이 보인다. 맨 오른쪽 건물 옆으로, 이미 비를 뿌리기 시작한 구름의 커튼도 잡혔다. 저렇게 위압적인 구름도 불과 몇 분 만에 어디론가 날아가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금요일 아침 5시30분. 이미 해가 떠서 하늘이 환하다. 에드먼튼의 여름 해는 정말로 길다. 오전 5시쯤이면 해가 뜨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해가 진다. 


금요일 아침, 10 km 정도를 천천히 달렸다 (Easy run이라고 한다). 새알밭 끝자락에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본 구름이다. 오른쪽 집들은 막 지어져서 아직 사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왼쪽의 탑은 교회 십자가가 그려진 조형물이다.


해를 바라보며 찍었다. 아래는 땅, 위는 하늘이다. 그저 편평하고 막막히 길다.


지난 토요일 에드먼튼에서 찍은 사진. 맑은 날의 하늘은 유독 더 파랗고, 구름은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깝다.


알버타 주의 도로 풍경은 대체로 이러하다. 당신의 눈이 닿을 수 있는 거리까지, 하늘과 땅이 나란히 간다. 지평선을 보는 게 예사롭다. 그렇게 모든 게 멀고 광활하게 펼쳐져 있으니 실눈을 뜰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