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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새알밭의 가을

일요일인 어제 가족과 나들이를 나갔다. 가을 나들이였다. 잎들 다 지기 전에 가을 끄트머리라도 놓치지 말고 보자는 심산이었다 (언제 왔다고 벌써 간단 말이냐?!). 내가 먼저 뛰러 나간 지 1시간30분쯤 뒤에, 트레일 끝자락에 있는 정자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 주 일요일이 마라톤이라 요즘은 숨고르기('테이퍼링'(tapering)이라고 부른다) 중이다. 일주일 남짓 기간 동안 체력을 아끼는 것이다. 그래서 앞뒤로 몸 풀기, 정리 운동 빼고 8마일 남짓 (약 13km)만 뛰었다. 


이곳 가을은 어찌나 짧은지 아직도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정말 벼락같이 와서 야반도주하듯 사라진다. 어느날 잎 빛깔이 노랗게 바뀌는가 싶더니 어느새 잎을 속절없이 지우기 시작했다. 주변 물푸레 나무들의 절반쯤은 이미 잎을 다 지운 것 같다. 빛깔을 바꾸기가 무섭게 잎을 지운다. 아니, 둘을 동시에 하는 것 같다. 아침 저녁 기온차가 워낙 커서 그럴까? 그래서 보는 이의 마음마저 바쁘게 만드는 것 같다 (오늘 밤에 드디어 기온이 영하 2도까지 떨어질 거라는 예보다).


새알밭의 젖줄인 스터전 강변을 따라 난 '레드 윌로우' 트레일 중 숲으로 둘러싸인 부분을 2km 남짓 걸었다. 동준, 성준이도 빛깔 바꾼 나뭇잎들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소슬한 바람은, 아직은 춥다는 느낌을 주지 않았고, 아스팔트 트레일 위로 자욱하게 깔린 포플라 잎, 물푸레나무 잎, 네군도 단풍 잎들은 발에 밟히면서 사각사각 마른 소리를 냈다. 비록 턱없이 짧고 덧없는 가을이지만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 눈부시게 아름답다.


잎 하나씩 들고 가을 기념 사진을 찍었다. 요즘 컨디션이 별로인 성준인 표정도 다소 가라앉은 느낌이다.


우리 동네 다운타운에 빨간단풍(Red maple)이 가로수로 심겨 있는 걸 처음 봤다. 


아우, 이 잎들 되게 크네? 신기해하는 표정이 좀 심하게 진지해 보인다 ㅎㅎ. 


사이좋게 걸어가는 형제. 성준인 아직 형의 절반이다.


가을 햇빛이 눈부셨다. 가을의 화려한 빛깔이 더 잘 살아나는 듯했다.


앨버타의 가을에는 빨간 색이 드물다. 단풍나무가 별로 없기 때문. 그래도 이런 관목 덕택에 부족하나마 빨간 색이 눈에 띈다. 많은 나무들이 벌써 잎을 다 지웠다.


새알밭을 관통하는 스터전 개울 (Sturgeon River). 여기에 참 다종다양한 생물이 산다.


호손(Hawthorn)을 사전에서 찾으니 산사나무란다. 길쭉한 가시가 제법 위협적인데, 가을빛을 드러낸 잎은 그래도 예쁘다.


사진을 찍는다니까 성준이가 갑자기 포즈를 취해 보인다. 동준인 몸집은 두 배지만 늘 동생이 하자는 대로 한다.


카메라 타이머를 활용해 레드윌로우 트레일에서 다함께 찰칵. 나는 달리던 복장에 재킷만 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