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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굿바이 20세기...'위대한 발견'은 다 끝났는가

커버스토리 / 굿바이 20세기
'위대한 발견'은 다 끝났는가 | X선-상대성 이론-DNA규명-컴퓨터 등 개가 | 주간동아 1999년 12월30일

새로운 밀레니엄의 문턱을 막 넘으려는 지금, 과학과 기술의 진보 속도는 불가항력적인 것처럼 보인다. 컴퓨터는 그것을 구입하는 그 순간에 이미 낡은 것이 돼 버리고, 우주의 아득한 곳에서 이뤄지는 발견들은 우리의 평범한 감각을 압도한다. 과학자들은 마치 F1 자동차경주대회의 출전자들처럼 숨가쁘게 인체의 유전자 지도를 그려가고 있다.
 
20세기의 문턱에 섰던 19세기 말의 우리 조상들도 숨통을 조르듯 밀어닥치는 산업혁명의 파도 앞에서 당혹감을 느꼈을 터이다. 그러나 지금의 속도 감각에서 보자면 당시의 현기증은 그저 가벼운 몸풀기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듯하다. 핵분열로부터 유전자 암호해독에 이르는 20세기의 여러 과학적 이정표들이 우리 사회에 미친 파장의 크기는 사상 유례없이 막대한 것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과학이 다음 세기에도 승리의 행진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 동력을 잃어버리고 말지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과학적 진보의 산물이 선(善)에 기여할지, 혹은 악을 부추길지의 여부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비행기 발명 … 우주시대 문 열어
과학이 종교와 철학을 대신해 지배적인 지적 동력으로 떠오른지는 500년이 넘었다. 하지만 과거 어느 시기도 지난 100년 동안 진행된 것만큼 큰 규모와 영향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실로 20세기는 주목할 만한 과학적 발견들로 화려하게 채색돼 있다. 1901년 뢴트겐이 발견한 새로운 종류의 광선은 그 중 한 사례. 이전까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그래서 아직도 ‘X선’이라고 흔히 불리는 바로 그 광선이다. X선이 의학에 끼친 공적은 실로 대단한 것이지만, 그것은 또한 베크렐, 퀴리 부부 등이 방사성 원소를 발견하게 만든 공신이기도 했다.

한편 천문학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은하계의 엄청난 숫자, 또 그들이 서로 멀어지는 가공할 속도에 압도당했다(우주는 지금도 급속히 팽창하는 중이다). 우주를 구성하는 은하계의 숫자는, 칼 세이건의 표현대로 ‘수십억의, 또 수십억’(Billions and billions)에 이르렀다.

물리학은 ‘특수 상대성이론’(1905년)과 ‘일반 상대성이론’(1916년)을 잇따라 내놓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거대한 혁명을 이룩했다. 특히 중력과 가속도가 같다는 등가원리에서 출발한 일반상대성이론은, 중력에 의해 휘어진 공간을 통과하는 것은 질량을 가진 물체든 질량이 없는 빛이든 모두 휘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질량을 가진 물질들의 운동만 설명해온 뉴턴의 중력이론을 뛰어넘었다.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에 대한 믿음이 붕괴한 것이다.

그리고 낯설기 짝이 없는 아원자(亞原子)의 세계를 설명하는 양자역학이 등장했다. 그곳은 전자가 가로지르는 과정 없이도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도약하는`―`그래서 흔히 ‘양자 도약’(Quantum leap)이라고 한다`―`세계, 불확정성의 세계였다.

인체의 세계에서도 주목할 만한 도약이 이루어졌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이 디옥시리보핵산(DNA)의 구조를 처음으로 규명한 것이다. 오늘날 신문의 머릿기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유전공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계기였다. 이들의 발견은 분자생물학이라는 새 학문 분야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으며, 이후 생명현상에 대한 종합적-분석적 설명이 가능토록 했다. 인체의 유전자를 해독하려는 이른바 ‘인체 게놈 프로젝트’도 이들의 발견에 그 뿌리를 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인위적 조작, 인간 복제의 위험성 등은 기성 종교는 물론 사회 윤리와 충돌하면서 또다른 문제를 예고한다.

하늘을 나는 기계는 1903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가솔린 엔진으로 돌아가는 라이트 형제의 쌍엽 비행기는 공기 프로펠러를 이용해 고작 36m 높이를 날았을 뿐이지만 동력 비행기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거보’(巨步)로 평가하기에는 조금도 손색이 없었다. 비행기는 그 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급속한 발전을 계속했고, 마침내 아폴로 계획으로 대별되는 우주시대의 문을 열었다. 1969년의 달 착륙은 그 문이 가장 활짝 열린 순간이자, 세계 인류를 흥분시킨 초유의 TV이벤트이기도 했다.

한편 의학 분야는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의 발견에 의해 새로운 도약을 이루었고, 전자통신 분야는 마르코니의 무선전신으로부터 라디오, TV를 거쳐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으로까지 진화했다. 농업 생산성은 기계화와 화학 비료의 도움을 받아 비약적으로 높아졌으며, 군사 분야는 대륙간 탄도탄 같은 사정거리뿐 아니라 그 파괴력에서도 가공할 만한 증가세를 보여 인류 전체를 몇 번이고 절멸시킬 수 있을 만한 핵보유로 나타났다.

세계대전`-`냉전이 과학발전 원동력
결과론이지만 20세기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으로부터 힘입은 바 크다. 컴퓨터와 인터넷 분야도 마찬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나타난 컴퓨터의 원조 에니악(ENIAC)의 개발 동기도 실상은 평화가 아닌 전쟁 대비용이었다. 암호 해독과 핵무기 개발, 효과적인 방공체계 구축 등에 활용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의 원조인 아르파넷(ARPANET)도 본래 의도는 옛 소련의 핵공격에 대한 대비책으로 구상됐던 것.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 국가 기밀 정보를 분산시켜 놓음으로써 어느 한 곳이 파괴되더라도 중요 정보나 설비는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끔 제안한 것이었다.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은 군사용이나 교육용의 한계를 넘어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했다. 더 이상 기계나 기술이 아니라 일상 생활의 도구이자 비즈니스의 수단이 된 것이다.

과학에 바탕을 둔 산업체의 연구개발 또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포항공대 임경순교수(물리학)는 ‘20세기 과학의 쟁점’(민음사 펴냄)에서 “20세기 초에는 독일의 과학이 세계의 과학을 대변했으나, 두 차례의 전쟁을 통해 미국이 세계 과학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고 밝힌다. 그 과정에서 독일을 연고로 하는 여러 과학의 모습도 미국이라는 새로운 토양 속에서 필연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실용성과 경험성이 더욱 강조된 것. 그에 따라 양자화학, 고체물리학, 분자생물학 등과 같은 여러 ‘학제간 분야’들이 새롭게 생겨났으며, 미국적인 대량생산 체계에 걸맞은 거대한 규모의 과학도 출현하게 됐다.

1899년 미 특허국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남겼다. “모든 중요한 것은 이미 발견됐다.” 그것이 명백히 틀린 판단이었음은 지난 100년의 역사가 증명한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와 비슷한 주장이 제기된다. ‘과학의 종말’ 같은 책이 시사하는, 이제 위대한 발견의 시대는 끝났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과학이라는 거대한 대륙의 주요 뼈대와 윤곽은 이미 다 드러난 마당이어서, 그것을 구성하는 강 호수 길 따위에 대한 세밀화를 그리는 일만이 남았다는 식이다.

글쎄, 그 주장이 옳든 그르든 다음 세기에도 할 일이 많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에 의한 의학적 시도는 물론 두뇌와 마음의 비밀을 푸는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그로부터 파생되는 윤리적 충돌과 갈등을 해소하는 일, 우주의 탄생을 둘러싼 여러 의문들에 대답하는 일, 환경 보전과 개발 사이에서 조화를 찾는 일, 멸종 위기에 몰린 종(種)들을 보전하는 일 등도 과학자들 앞에 놓인 숙제목록 중 일부일 것이다. <김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