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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Out & Back Again ... 베트남의 눈물

책 제목: Inside Out & Back Again
지은이: Thanhha Lai (탄하 라이)
청소년 도서 (8세 이상 대상)
형식: 하드커버
분량: 272페이지 
출판사: 하퍼콜린스 
출간일: 2011년 2월22일 

열살 난 초등학생 김 하 (Kim Ha)의 눈으로 본 '베트남의 눈물'. 

1975년 하는 베트남 전쟁의 포화 속에서 월남 패망 직전 엄마, 세 오빠와 함께 가까스로 월남을 탈출해, 망망대해에서 꼼짝없이 미국 배의 원조를 기다려야 하는 막막한 처지에 놓였다가, 우여곡절 끝에 괌을 거쳐 미국 남부 앨라배마에 닿은 뒤, 현지인의 차별과 배척을 극복하고 낯선 땅에 정착하기까지, 열살짜리 어린이로서는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초를 겪는다. 이 책은 그처럼 눈물겨운 장정을 하의 시각에서, 경제적이고 절제된 시들로 차분하게 표현한, 한 편의 서사시이자 내밀한 성장 일기이다. 

단정하고 짧은 시어들로 표현된 하의 시선, 하의 생각, 그리고 하의 느낌은, 바로 그런 절제와 축약, 생략 때문에 종종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열살 소녀의 의식 세계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참혹한 이데올로기의 전쟁과 나라를 등져야 하는 상황,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씻지도 못한 채 비좁은 배 위에 갇혀 외부의 원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역경, 여러 해 전 전쟁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엄마의 희망과 비애, 앨라배마 이국에서 피부가 다르고 얼굴이 다르다는 이유로 놀림 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생활 등이, 딱 열살 소녀의 눈높이로 솔직하게 그려지는데, 독자는 그래서 도리어 더 안타까움과 분노,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하와 함께 공감하고, 웃고 운다. 

하가 그리는 베트남은 한없이 아름답고 포근하다. 베트남의 명절 풍경, 전통 문화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묘사된다. 하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던 파파야 나무 얘기도 나온다. 전쟁의 포화를 피해 피난 배를 탈 때 마지못해 없애버린 파파야 나무지만, 하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싱싱하게 살아 살가운 바람에 흔들리며 하를 위무한다. 앨라배마에서 소외된 이방인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낼 때도 하는 파파야 나무와 사이공을 자주 그리워한다. "아무도 믿지 못하겠지만 나는 평화로운 앨라배마보다 전시의 사이공을 택할테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Image source: School Library Journal

1975년 전시의 베트남을 탈출해 이듬해 앨라배마에 정착하기까지를 그린 <Inside Out & Back Again>은 지은이 탄하 라이 (왼쪽) 자신의 이야기이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시에 그려진 대부분의 에피소드와 희로애락의 감정은 고스란히 라이의 것이다. 책 제목은,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혔다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1년 간의 드라마를 표현한 것 같다 (약력에 따르면 라이는 이후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둥지를 옮겼다).

베트남전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당시에 학교를 다닌 사람치고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펼친 무용담 한두 개쯤을 들어보지 않은 이가 드물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운운 하는 노래도 있었다. 베트남전 참전이 한국 근대화의 한 주춧돌이 되었노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의 다른 면, 마치 전설이나 만화 속의 한 장면처럼 회자되곤 하던 '무용담'의 다른 면, 한국이 베트남 전에서 저지른 떳떳할 수 없는 과오들은, 참 오랫동안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베트남에 가본 적도 없고, 아는 베트남 사람 하나도 없지만, 라이의 이 서사시는 전혀 낯설거나 이국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마치 내가 베트남 사람이 되어, 나라 잃은 보트 피플로 갖은 고초를 겪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내 어린시절, 베트남과 관련해 숱하게 들은 또 다른 이야기가 "월남을 봐라. 나라가 망하니 그 국민들이 어떻게 됐나... 나라 있고 내가 있는 거지, 나라 없어지면 나도 없는거야. 그러니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하는 거야. 애국애족!"이었다. 

라이의 서사시가 더 각별하게 다가온 것은, 내 어린 시절의 그런 간접 체험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저 막연한 반공 이데올로기와 국가주의적 세계관을 주입받은 탓. 하와 그 가족들의 고초는, 어떤 면에서는 그런 교육에 사람의 얼굴, 땀과 눈물의 구체성을 입혀주는 듯했다. 

청소년 도서인 데다 시 형식이어서 책을 다 읽는 데는 별로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하지만 그 시의 여운은 길고 깊었다. 몇몇 시를 읽으면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망망대해에서 기약없는 도움을 기다릴 때, 밤 하늘의 달을 보며 남편(아빠)을 그리워하는 엄마의 독백을 묘사한 '달'(The moon), 하를 유독 아끼고 이해하고 영어를 가르치며 도움을 주는 '워싱턴 부인'의 아들이 베트남전에서 전사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순간의 대화를 그린 '워싱턴 부인의 대답' (
(MiSSSisss WaSShington's Response, 아래 사진)을 읽을 때 특히 그랬다. 

물론 그처럼 슬프고 괴로운 얘기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너털웃음을 짓게 하는 코믹한 대목도 있고, 가족과 친구를 내세운 흐뭇한 에피소드도 많다. 특히 영어를 배우면서 맛보는 짜증과 의문, 절망을 그린 시들은, 영어에 한 맺힌 우리에게도 공감을 줄 법하다. 주로 's'나 'es'를 붙이는 영어의 복수형에서 '영어 만든 사람은 뱀께나 좋아했나보다' ('스! 스! 뱀 소리가 많이 나니까)라고 했다가, 어떤 단어들은 단수와 복수형이 똑같아서 's'를 붙이지 않으며, 예외적인 규칙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는 '영어 만든 사람은 한 번 뱀한테 물려봐야 한다'라고 혼자 분통을 터뜨리는 식이다.

라이의 <Inside Out & Back Again>은 참 감동적이다. 따뜻하면서 애잔하다. 더 많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별 다섯에 다섯. 참고로, '스쿨라이브러리저널'에 난 탄하 라이 인터뷰 (내셔널 북 어워드를 받은 데 따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