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느 편인가? 『테크놀로지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토론할 때, 사람들은 흔히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의 함정에 빠져버린다』라고 앤드루 셔피로는 말한다.
그는 하버드 로스쿨의 「인터넷과 사회 연구센터」의 연구원이다. 『그것은 대체로 흑백논리와 닮은 꼴이어 서, 「테크노유토피아주의자(Techno-Utopians)」나 「신(新)러다이트주의자(Neo-Luddites)」 라는 양극단의 진영으로 분열되기 일쑤다』 테크노유토피아주의자들은 인터넷의 사이버스페이스를 전혀 새로운 것, 정부가 필요없는 「멋진 신세계」로 생각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현실 사회의 편견과 모순이 좀더 손쉽게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신러다이트주의자들은 정반대다. 산업혁명 시절, 공장의 자동화 기계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두려워했던 노동자들처럼, 그들은 인터넷의 신기술이 현실의 공동체를 깨뜨리고 우리의 바람직한 가치관을 와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터넷은 혁명이지만 유토피아 약속 않는다”
어느날, 셔피로는 우연히 데이비드 솅크를 만났다. 미 국립공영 라디오방송(NPR)의 시사 해설자인 솅크는 지난해 정보범람 시대의 문제점을 통찰한 「데이터 스모그:정보과잉 시대의 생존법」이라는 책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 으킨 작가였다.
그들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사회의 섣부른 기대(혹은 절망)를 경계 한다는 점에서 견해가 상통했다. 『첨단기술에 의한 종말론이나 「사이버구원론」 같은 극단 논리에 빠지지 않고도 신기술의 파장과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셔피로는 말한다. 여기에 스티븐 존슨이 가세했다.
인터넷의 이른바 「사이버 문화」를 다루는 웹진 「피드(FEED, www.feedmag.com)」의 편집자로 유명한 존슨은 「인터페이스 문화(Interface Culture)」라 는 책을 통해 컴퓨터 기술의 진보와 미래에 대한 새로운 감식안을 제시했다.
「테크노리얼리즘」의 8대 원칙
1.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오해는, 기술은 생명이 없는 인공의 산물이기 때문에 아무런 치우침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기술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편향을 담고 있다. 모든 기술적 도구들은 그 이용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특정한 틀과 다른 사람과 반응하는 방식을 제공한다. 여러 기술에 깃든 편견을 고려하고, 그것이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2. 인터넷은 혁명적이지만, 유토피아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은 개인과 단체, 기업, 정부 등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획기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면서, 인터넷의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 세계를 닮아가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의 장점만큼 그것의 뒤틀어지고 악의적인 면모에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3. 정부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다. 물론 이곳의 새로운 규칙과 관례를 존중하고, 섣불리 비효율적인 규제나 검열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 표준과 사생활 보호 문제 등은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 논리에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사안이다.
4. 정보는 지식이 아니다. 정보는 점점 더 빠르게 움직이고, 이것을 얻는 데 드는 비용도 더욱 줄고 있다. 그에 따른 혜택은 크다. 그러나 정보의 전달과 전파가 손쉬워질수록 그에 대한 바른 평가와 비판도 더 어려워진다. 정보를 빨리, 많이 얻는다고 지식이 그만큼 빨리, 많이 느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결코 우리 자신의 인식 및 인지능력, 판단력, 이성을 대체할 수는 없다.
5. 인터넷을 이용한 교육은 현재의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술 진보는 교육의 해결사가 아니다. 컴퓨터는 교사들의 「교육의 기술(The Art of Teaching)」을 따라잡을 수 없다. 「원격 교육」 등 인터넷의 도구적 혜택을 교육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6. 정보는 보호받아야 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창안자가 주도권을 갖고 자신의 지적 산물을 통제해야 한다. 그를 위해 낡은 저작권법은 수정 보완돼야 한다.
7. 대중이 전파(電波)를 공유해야 하며, 그에 따른 혜택도 대중이 누려야 한다. 또 주파수의 일부는 교육적, 문화적, 공공 목적에 이용돼야 한다.
8.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 시민 (Global Citizenship)」의 필수적인 자질이다. 정보사회에서 그 정보의 흐름에 관여하는 기술과 규약은 점점 더 강력한 사회적 힘이 되고 있다. 이들의 강점과 한계를 이해하고, 더 나은 정보 기술 개발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세계 시민」이 되는 데에 필요한 중요한 자질이다(자료:www.technorealism.org).
이들은 몇 차례의 회합 끝에 8개의 원칙을 포함한 문건을 완성했다. 제목은 「테크노리얼리즘」(www.technorealism.org). 명시적으로 표 현되지는 않았지만, 그간 몇차례 인터넷을 장식한 바 있는 일련의 문건들처럼 이것도 분명 히 「선언(Manifesto)」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정부의 불간섭을 주장하는 전자개척자재단(EFF, www.eff.org)의 공동설립자인 존 페리 발로는 몇년 전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을 인터넷에 올려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기술결정론을 경계하는 「신(新)러다이트 선언」도 일찌감치 인터넷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테크노리얼리즘 선언은, 따라서 두 선언 사이의 균형추 역할이기도 한 셈이다.
이들 자칭 「테크노리얼리스트」(기술현실주의 자)들은 『테크놀로지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말로 포문을 연다. 이들에 따르면 테크놀로지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정한 사회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비중립적이다.
예컨대 자동차는 사람들이 훨씬 더 손쉽게 여행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환경 파괴와 교통 체증,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의 와해 같은 부작용을 낳았다. 『인터넷이 형성하는 「가상의 공 동체(Virtual Community)」들은 현실의 공동 체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자유로우며 현실 의 지리적, 시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반면 사회적 파편화나 지역공동체의 파괴 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솅크는 말한다.
이들 테크노리얼리스트들이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인터넷은 혁명적이지만, 유토피아를 약속하지는 않는다」는 원칙이다. 「미디어바이러스」 「엑스터시 클럽」 같은 책으로 유명한 미디어평론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현실 사회를 구성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사이버스페이스를 구성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실 사회의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사이버스페이스의 시민들이 언제나 선한 행동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인터넷 이용자의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인터넷의 사이버 스페이스는 더욱더 현실 사회의 모습과 비슷해질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또한 현실과 완전히 별리된 세계가 아니다.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개인정보 유출이나 사생활 침해 문제, 인터넷 브라우저의 여러 신기술을 놓고 마이 크로소프트사와 넷스케이프사가 다투는 것과 같은 기술표준 문제 등 사이버스페이스의 갖가지 현안들은 현실 사회에 못지 않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역사가 짧고, 그곳의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면 사안에 따라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정부의 적절한 개입에 찬성한다. 『프라이버시 보호나 기술표준 같은 문제는,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에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큰 사안』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이들의 정부 개입론은, 「표현의 완전한 자유」 와 「정부 불간섭」을 표나게 내세우는 전자개척자재단(EFF)에서 볼 때는 「이단」에 가깝다. 존 페리 발로는 『(정부의 간섭을 용인하느니) 차라리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고, 급속한 기술 진보에 따른 혼란을 즐기는 편이 더 낫다』는 말로 테크노리얼리스트들의 주장을 비웃는다. 『인터넷 혁명이 불완전하지만 거기에는 자정 (自淨) 능력과,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잉태할 수 있는 씨앗이 숨어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인터넷의 대표적인 사이버문화 웹진 「핫와이어드」(www.hotwired.com)의 비평가 존 캐츠도 테크노리얼리즘 선언을 비판적으로 본다. 그는 『발로의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이나 그 반대편의 「신러다이트 선언」처럼, 「테크노 리얼리즘 선언」도 결국 또다른 「테크노허풍」 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의 비판을 받는 대목은 여덟 번째 원칙, 즉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것은 세계 시민의 중 요한 자질」이라는 항목이다. 그는 『신기술을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배척할 수 있는 권리도 필요하다』면서 『테크노리얼리스 트들의 주장은 새로운 기술 조류에 밝은 테크노 엘리트(이른바 「디제라티」(digerati))들의 또다른 지적 거드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김상현 기자〉 | NEWS+ 1998년 7월2일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