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가 주최한 "All Things Digital" 컨퍼런스의 한 행사에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나란히 등장했다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스티브 잡스를 빌 게이츠보다 앞에 내세운 이유는 1. 그가 더 연장자이다; 2. 이른바 'PC 시대'를 연 것도 그가 먼저이다; 3. 내가 더 좋아하는 컴퓨터가 맥이다. 하하). 컴퓨터 칼럼니스트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월트 모스버그와, 월스트리스트의 또다른 컴퓨터 칼럼니스트 카라 스위셔가 번갈아 가며 질문을 던졌고,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에 대답했다. 그들의 대답은 놀라울 만큼 솔직하고 직선적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다시 한 번 '놀라울 만큼', 화기애애했다. 잡스와 게이츠 둘 모두 서로에 대한 배려와 호의, 그리고 존경을 숨기지 않았다.
여기에서 내가 '놀라울 만큼'이라고 쓴 것은 전적으로 기자 시절의 '오해'로부터 비롯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기자들은 대결 구도나 대결 국면을 좋아한다. 경쟁 상대가 있고, 그 경쟁이 치열하면 더욱 좋다. 그런 면에서 기자들은 좀 유치하다. 마이크로소프트 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대 한글과컴퓨터, MS워드 대 아래아한글 등등. 그러다 보니 자칫하면, 한 쪽이 잘 나가면 다른 한 쪽은 무너지거나 깨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제로섬' 게임처럼 몰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다. 나는 늘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불구대천의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적대적인 라이벌로 생각해 왔다. 애플이 처음 PC 시대를 개척하고, 흔히 GUI라고 부르는 그래픽이용자환경(Graphical User Interface)도 처음 만들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를 가로챘다, 라는 식으로 이해해 왔다. 일정 부분 맞기도 하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틀렸다는 것을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거의 1GB에 이르는 비디오 파일을 아이튠즈의 팟캐스트로부터 내려받아 흥미진진하게 두 거인의 대담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단순히 라이벌일 뿐 아니라 동지이고 친구임을 절실하게 확인했다. PC 시대를 열었고, 이끌었고, 그 시대가 활짝 꽃피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두 사람의 솔직한 생각을 듣는 그 드문 기회가 참 좋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티브 잡스가 빌 게이츠에 대한 그의 생각을 비틀즈의 노랫말을 빌려 표현한 대목이었다. "당신과 나는, 우리 앞으로 뻗은 길보다도 더 오랜 기억을 갖고 있지" (You and I have memories longer than the road that stretches out ahead). 참 감동적이었다. 멋있었다 (위 장면은 그의 말에 카라 스위셔가 감동하는 순간을 잡은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잡스를 'PC 시대의 전형적인 개척자'로, 게이츠를 'PC 시대의 전형적인 산업주의자'로 규정했다. 다소 거칠지만 그 정곡을 잘 찌른 지적이라고 보인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 30여년 간 승자로, 패자로, 굴곡 많은 충돌과 경쟁, 혹은 협력 관계를 이어왔다. 애플은 PC 경쟁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참패했으나 아이팟으로 대표되는 온라인 음악 시장을 만들고 확장하며 승자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특히나 변화가 많고 그 변화 속도 또한 유난히 빠른 디지털/테크놀로지 시장에서 승패를 가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당분간 두 기업이 혹은 충돌하면서, 혹은 서로 협력하면서, 그 시장의 주도적 자리를 유지해가리라는 점만은 꽤 분명한 것 같다. (2007/06/10 05:28)
비스타: 이 끝없는 '허락할까 말까?'의 물음들...
아는 분의 새 컴퓨터 장만을 도와주었다. 주로 게임용으로 쓸 것이어서 애플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컴퓨터는 윈도우즈 비스타 홈 에디션을 달고 있었는데, 약간의 문제를 바로잡느라 처음으로 써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멋진 컬러에 세련된 디자인이 애플에 버금가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무슨 일을 하려 할 때마다 "등록되지 않은/알 수 없는 파일이 실행되려고 합니다. 허락할까요, 말까요?" 식의 질문이 끝도 없이 튀어나온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 질문이 나올 때마다 배경이 되는 화면 전체를 검정으로 바꾸면서, 그 질문 윈도우가 툭 튀어나오는데, 과거의 그 악명높은 '치명적 오류' (fatal error) 파란창이 연상되면서 썩 불쾌했다. 그런 질문도 한두 번이지, 이건 개념도 없고 원칙도 없는 듯했다.
허락할까 말까? 허락할까 말까? 허락할까 말까? ....
문제는 그 질문에 '말까'쪽을 택할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과연 그런 식의 반복적 질문이 윈도우즈 비스타의 보안 수준을 얼마나 높게 잘 유지해 줄지, 나로서는 지극히 의심스러울 따름이었다. (2007/06/20 03:32)
손목받침판은 낙서장? 광고판?
오늘 코스코에 들렀다가 새삼 확인한 것. 윈도우즈용 노트북 컴퓨터의 손목받침 부분은 온통 싸구려 광고로 도배질되어 있다는 것... 뭐 이것도 "valued customer"를 위한 "very important information"이라고 강변한다면 할 수 없지만...
Aspire라는 이름보다 Perspire라고 바꾸는 게 더 낫겠다. 이런 장황한 광고를 읽자면 땀 좀 빼야 할테니...
Best of the Best라고? 누가 그랬는데? 손목이 닿으면서 닳고 벗겨질 광고 딱지가 셋이나 된다. 그것도 오른쪽에만...
왼쪽 광고는 더 가관이다. Designed for your life라고? 노트북이 무슨 인명구조 장비냐? (2007/06/15 19:24)
뻥튀기 윈도우즈
혹시 애플의 TV 광고를 보신 적이 있는지? 마이크로소프트 쪽에서 보면 매우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주 익살맞고 날카로우면서도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는 광고들이다. 특히 이 '뻥튀기 윈도우즈' 광고는 그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광고는 컴퓨터 이용자의 뜻과는 전혀 무관하게 '베타' 버전, 혹은 '트라이얼' 버전이라고 불리는 온갖 실험용 소프트웨어들을 컴퓨터에 깔아놓아, 처음 샀을 때부터 엄청난 속도 저하와 이용 불편을 초래하는 윈도우즈용 컴퓨터들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과장이 아니다. 거짓은 더욱 아니다. 윈도우즈와 맥 두 유형의 컴퓨터를 써본 내게, 그 광고는 실로 절실한 지적으로 보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컴퓨터 칼럼니스트 월트 모스버그도 그 점을 지적했다. 소니 바이오 노트북을 샀는데 온갖 잡다한 '정크' 소프트웨어들로 도배질되어 있더라는 불평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윈도우즈 운영체제가 깔린 신제품 노트북을 열어보라. 손바닥을 놓게 되어 있는 터치패드형 마우스 양쪽 빈공간에, 조금 부풀리면 '빈 자리가 없다'. 무슨 인텔의 엄청난 칩을 넣어놓았다는 딱지, 무슨무슨 윈도우즈 운영체제가 설치돼 있다는 딱지, 무슨 순정부품을 썼다는 딱지, 그 컴퓨터 제조회사만의 날카로운 '비법'을 담았노라는 자랑 딱지 등등... 온갖 네모난 광고 전단들이 손바닥 닿는 부분을 도배해 놓았다. 조금만 쓰다보면 그 딱지들은 닳아서 무슨 글자인지도 모르게 지워지거나 - 그러면 그래도 양반이다, 붙여놓은 끝부분이 일어나 그것을 떼어내면 찐덕찐덕한 접착제가 손바닥 감촉을 아주 불쾌하게 만들기 일쑤이다.
그러면 애플은? 깨~끗하다. 뚜껑을 열면 자판과 커다란 터치패드, 그게 전부다. 무슨 요란한 딱지는 보이지 않는다.
또 한가지. 윈도우즈 비스타는 왜 그렇게나 잡종다양한 버전이 많은가? 비스타홈, 비스타 홈 프리미엄, 비스타 비즈니스, 비스타 얼티밋... 이것 사기 아냐? 하는 짜증과 의심이 퍼뜩 고개를 쳐든다. 그냥 비스타면 비스타지... 혹시 홈 버전, 비즈니스 버전 두 개쯤으로 구별해놓았다면 그래도 참고 봐주겠다. 이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다 소비자 등쳐먹자는 심산이 아니고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면서 성능이 좋기나 하나....
다시 그러면 애플은? 깨~끗하다. 그냥 OSX 하나다. 무슨 프리미엄이니, 프로펫쑈날이니, 얼티밋이니, 하는 'bullshit'형 표현이 없다. 그래도 성능은 끝내준다. fatal error 어쩌구 하는 일도 없고, 프로그램이나 문서 검색을 할 때 윈도우즈처럼 강아지 한 마리 나와 하염없이 고개만 들었다 숙였다 하면서 아무 답도 보여주지 못하는 일 또한 없다. 실시간으로, 검색어를 'Spotlight'에 쳐넣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에 관련된 문서며 프로그램 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환상적이다. 10월에 나올 예정인 OSX 레퍼드 버전 (아래)은 지금의 타이거 버전보다 한 단계 더 비약한 수준이다. 그 주요 기능들을 일별해 보니 입안에 군침이 돈다. :D
컴퓨터 게임이 주업무이거나 윈도우즈용 프로그램만 있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닌한, '일단 써본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지만, 일반 개인용 컴퓨터 생활 수준으로 볼 때, 도대체 윈도우즈를 써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곳 캐나다에 살면서 한국의 몇몇 사이트를 드나들 때마다 참 답답하다. 한국의 지독한 '윈도우즈 편중'이 답답하다. 당장 이 네이버 블로그만 해도, 오직 윈도우즈, 그것도 인터넷익스플로러에만 맞게 디자인되어 있다. 애플 환경으로 쓰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기능이 한둘이 아니다. 도대체 왜 이런 것일까?
약간 논리를 비약하자면, 한국의 컴퓨터 환경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상황 같다. 애플이라는 정말 좋은 (좀더 주관을 섞자면 '환상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뛰어난) 컴퓨터 운영체제가 있는데도 그걸 모른채, 혹은 기업들의 윈도우즈 편중 탓에, 계속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듯이, 오직 윈도우즈에만 매달리는 상황. ...
이제 한국에서도, 그래픽 디자인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 생활에도 애플이 좀더 널리 알려질 때가 됐다는... 생각인데... 슬프게도 그럴 기미가 별로 안보인다. (2007/06/14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