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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줄리어드의 명교수’ 강효

[김상현기자의 클래식산책]인기있는 스승-명교사로 칭송 | NEWS+ 1997년 11월20일치

음악 명교사 강효. 이미지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72300511

그는 한번도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다. 
단원들의 연주를 흘러가는 대로 두면서, 악보와 견주어 가며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이거나 지휘자의 포즈로 손을 몇번 휘저었을 뿐이다. 그는 연주 템포에 특히 마음을 쓰는 눈치였는데, 몇 소절에 대한 연주가 끝날 때마다 단원들에게 전자 메트로놈을 들려주었고, 적절한 속도와 현(絃)의 강약에 대해 그들과 토론했다. 그는 시종 웃음을 머금은 얼굴이었고, 연주자들은 그 앞에서 편안한 표정이었다.

11월5일 세종솔로이스츠의 리허설을 지도하는 강효교수(줄리어드음대 바이올린과 교수)의 모습은, 역시 줄리어드의 명교사로 통하는 도로시 딜레이의 촌평을 생각나게 했다.

「그(강효)는 대단한 인내심을 가진 명교수다. 그 인내로써 학생의 재능을 발굴해 내고 기본적인 테크닉을 중시하며, 철저히 훈련시킨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기초에 치중하다 보면 음악성이 소홀하기 쉬운데, 그의 제자들은 기초가 탄탄하고 테크닉이 뛰어날 뿐 아니라 음악적 으로도 지극히 아름다운 연주를 한다. 그의 비장의 무기가 바로 그것이다」(객석 95년 6월호).

강효교수는 유명인사다. 꽤 오랫동안 제자들로부터는 인기있는 스승으로, 평론가들로부터는 명교사로 칭송받고 있다. 일반인과 전문가 그룹 양쪽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드문 일인지 안다면 그에 대한 안팎의 호평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분명해진다.

물론 그의 유명세가 장영주나 장한나의 그것에 견줄 정도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교사나 스승에 대한 통념에 비춰 그렇다는 뜻이다. 교사나 스승은 대체로 화려함이나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다. 본질적으로 「막(幕) 뒤」의 인물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강효교수는 꽤 높은 인지도와 유명세를 얻고 있다.

장영주, 길 샤함 등 ‘스타제지’즐비…유명 실내악단 ‘세종…’지도
 
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장영주, 길 샤함, 김지연, 캐서린 조, 권윤경, 리비아 손, 아델 안소니 등 화려하기 그지 없는 그의 제자 명 단이다. 이들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이미 일가(一家)를 이루기 시작한 명 바이올리니스트들.

『영주나 샤함처럼 비범한 제자들은 하이페츠, 오이스트라흐 같은 옛 대가들에게 기준을 맞춰 놓고 가르친다. 그러다 보면 그들의 단점이나 개선해야 할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의 교육 철학은 딜레이 교수의 평가대로 「기초」를 탄탄히 쌓는 것에서 출발한다.『하나를 얘기해도 제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생이 배운 것을 완전히 소화해 스스로 응용할 수 있을 때까지는 교사의 임 무도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고 그는 강조한다.

그가 중심이 되어 95년 창단한 세종솔로이스츠는 그의 교육 철학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물이라 할 만하다. 한국 출신의 아티스트를 주축으로 미국 일본 등 5개국의 유망 연주가들이 가세한 세종솔로이스츠는 3년 남 짓 기간에 세계 정상급 실내악단으로 급성장했다.

특히 올해 미 아스펜 음악축제에서 가진 세 차례의 공연은 모두 매진될 만큼 성황이었으며 연주회에 대한 평가도 매우 좋았다. 그 덕택에 아스펜 음악축제의 상임 실내악단(Ensemble-in-Residence)으로 선정되는 영예까지 안았다. 『특정 시대나 장르, 작곡가에 치우치지 않고 실내악은 물론 교향곡, 협주곡 등 우리가 소화할 수 있는 모든 곡을 최고 수준으로 연주하고 싶 다』고 강교수는 말한다.

그것이 실내악단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오히려 그러한 시도야말로 다른 연주자들이 가보지 못한 길』이라며 자신감을 보인다.

세종솔로이스츠는 국내기업(삼성문화재단)이 후원한다는 점말고도 「세종」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국의 문화적 위세를 선양하는 효과를 얻고 있 다.

강교수는 『해외에서 연주할 때마다 실내악단의 이름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에 대한 좋은 광고가 된다』면서 『앞으로는 한국 악기와 의 협연은 물론 우리 작곡가의 작품을 적극 연주할 생각』이라고 말한다.

강교수는 1978년 아스펜 음악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으며 그해 줄리어드 예비학교 실내악 교수로 임용됐다. 줄리어드음대의 정교수가 된 것은 85년. 현재 하루 중 절반은 세종솔로이스츠를 지도하는 일에, 나머지 절반은 40여명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할애하고 있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