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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사

어려서 외국어 배워야 모국어처럼 말한다

이 연구 결과가 - 이 기사 자체가 아니라 - 널리 퍼지면서, 한국의 조기교육, 특히 조기 영어 교육 열풍이 더욱 달아오른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기사를 다시 읽는 기분이 묘하다.

美서 연구“뇌 언어저장소 나이따라 달라…7,8세때 효과만점” | 
NEWS+ 1997년 7월31일치

국내의 영어 조기교육 열풍을 정당화할 수 있을 법한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그에 따르면 7~8세 이전에 제2외국어를 배울 때와 그 이후 어른이 되어 배울 때, 그 내용을 저장 (기억)하는 뇌의 위치가 다르다. 따라서 제2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할 수 있으려 면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

미국 뉴욕에 있는 메모리얼 슬로운-케터링 암센터의 연구진은 활동중인 뇌의 이미지를 잡아내는 첨단 기술을 이용해 이같은 사실을 밝 혀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 제2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어렸을 때 배우는 것과 기능적으로 매우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fMRI(기능 성 자기공명영상장치)실험실장인 조이 허시 연구원은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아주 어릴 때부터 모국어와 함께 제2외국어를 배운 어린이는 이 소질을 뇌의 「단일한」영역에 저장한다. 두 언어의 학 습과정이 같은 영역에서 겹치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배운 경우에는 다르다. 예컨대 고등학교 때 불어를 배울 경우, 뇌는 그 학습과정을 모국어 저장소와는 다른 별개의 영역에 저장한다.

과학전문지「자연」(Nature) 7월10일자에 발표된 이 연구결과는 그 동안 풀리지 않았던 여러 의문들에 해답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학교와 학원에서, 적어도 10년 이상 온갖 방법으로 영어 공부를 하면서도 어학실력은 왜 늘 제자리걸음인지, 오랜 미국 이민 생활로 영어 를 자유로이 구사할 수 있게 된 다음에도 어른들은 왜 끝내 자기 나라의 독특한 액센트를 버리지 못하는지, 그 반면 어린 시절 두 언어 를 배운 사람은 어떻게 각각의 언어를 모국어인양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지….

허시 박사팀의 연구는, 구체적으로 몇 살 때부터 제2외국어에 대한 학습내용이 별도의 영역에 저장되기 시작하는 지 구체적으로 밝히 지 않았다.

그러나 『이전에 이루어진 여러 연구를 종합할 때 저장소의 이행은 대략 7~8세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그녀는 말한다.

사춘기 이후에 배우면 모국어처럼 구사 못해
 
이들의 연구는 새로운 의문을 던진다. 어린이들은 언제 외국어를 가장 잘 배울 수 있을까.

허시 박사는『아직 명확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으며 앞으로 연구해야 할 주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많은 연구자들은 사춘기 이전에 언어를 습득하지 않는 한 누구도 제2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들은 언어를 훨씬 더 쉽게 배운다』고 미 워싱턴대학의 클로스 브랜들 교수(언어학)는 말한다.

허시 박사의 새로운 연구 결과는「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라는 첨단 장비 때문에 가능했다.

『fMRI는 뇌의 일상적인 모습뿐 아니라 활동 양상까지 보여준다』고 허시 박사는 말한다. 연구팀은 2개 국어를 말할 수 있는 건강한 지원자 12명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그 중 6명은 어렸을 때 제2외국어를 습득했고, 나머지 절반은 그보다 어른이 된 뒤에 배웠다.

각각 90초 동안의 fMRI 실험을 하는 동안 연구팀은 지원자들에게 아침과 점심, 그리고 밤에 어떤 일을 하는지「생각」해 보도록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실험에서는 앞에 생각했던 일과를 제2외국어를 써서 관련지어 보도록 했다.

그 결과는 제2외국어를 언제 배웠는지에 따라 확연히 갈렸다. 어른이 되어 제2외국어를 배운 사람들은「브로카의 영역」(Broca's area) 으로 알려진 두뇌영역에서 모국어와 외국어 사용 과정이「따로 떨어져서」 나타났다.

그러나 아기 때 언어를 배운 사람들은 브로카의 영역에서 두 언어의 사용 과정이 실질적으로 「겹쳐서」 나타났다.

또다른 연구팀은 fMRI와 다른 영상 기술을 통해 두뇌가 명사를 동사와 별도로 저장하며, 입말(口語)을 글말(文語)과 분리해 따로 저장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그러나 두뇌가 왜 제2외국어(혹은 명사와 입말)에 대해 별도의 영역을 할당하고 있는지는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어른들은 아기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언어를 습득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고 허시 박사는 말한다.

『그게 아니라면「언어 생산」영역은 한번 정해지면 더 이상 확장될 수 없는 것이어서, 새로 언어를 배우려 할 경우 그에 대한 전용 영 역이 따로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둘 다 가설일 뿐이다.

예일 대학의 존 고어 교수(방사선 및 응용물리학)는 허시 박사팀의 새로운 영상 기술이 『독서장애나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치료 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고 말한다.

통증이나 우울증을 비롯한 두뇌 관련 질병을 치료하는 약제를 개발하는 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촌음을 아껴가며 어학 공부에 매달리는 국내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에게는 다소 절망스러운 소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허시 박사의 책임은 아니다. 김 상 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