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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얘기

동준이의 발렌타인 데이 선물

한국도 떠들썩할테지만 여기서도 예외는 아니다. 발렌타인 데이. 아무리 그럴듯한 연원을 갖다 붙이고 미화하려 해도, 결국 그 뿌리는 '도저한 상업주의'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까닭에, 나는 이 날이 영 마뜩찮다. 화이트 데이? 그건 아예 끄집어내지도 말자.

'도저한 상업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맘때가 그런 때임을 광고 전단지들이 먼저 알려주기 때문이다. 일단 이번 주말 동안 온갖 술이 다 세일이다. 맥주, 양주, 와인, 샴페인... 또 돌연 보석이며 장신구를 파는 가게들의 전단지가 추가된다. 싸랑하는 그녀에게 바치시라...운운 하면서. 집에 텔레비전이 있었다면 그곳에서 먼저 발렌타인 데이가 멀지 않았음을 지겹도록 주입 받았을텐데, 그런 짜증을 덜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사람의 심리다. 아무리 상업주의 운운 하더라도 아내나 애인에게 뭔가 해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심리적 압박은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내도 무슨 발렌타인 데이는! 이라고 심상하게 말하지만, 나는 그래도 뭔가를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이랄까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한다. 이런 되도 않는 스트레스라니!

그런 불쾌감과 짜증에도 불구하고, 오늘 아침 냉장고에 붙은 하트 카드를 보곤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동준이가 엄마한테 선사한 발렌타인 데이 카드였다. 물론 이 카드를 만드는 데 동준이가 기여한 수준이란 지극히 제한적이었을테고 (아마 '맘'(mom)이라는 세 단어를 동준이가 직접, 선생님의 도움을 받으며 썼을 것이다), 그 8, 9할은 선생님들의 손재주와 재치였을테지만, 그래도 그것을 보는 마음은 흐뭇하고 즐거웠다. 바로 이 사진이다.

언뜻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먼저 좌우로 삐져나온 초록색 장식은 자벌레(인치웜, inchworm)다. 자벌레가 심장을 뚫고 나온 모습이다. 그 아래 표현은 자벌레라는 단어를 절묘하게 사용한 기막한 연서다. "나의 발렌타인인 엄마, 엄마가 제 마음 속에 들어오셨어요 (inched...into)"라는 내용. 

맨 위 왼쪽은 엄마를 안아준다는 내용, 오른쪽의 OX는 뽀뽀를 뜻하는 말. 큰 하트 안에 또 다른 하트가 두 개나 더 들어 있다. 이러는데 엄마가 감동 안할까!

상업주의의 발로일 수도 있다. 아니 그것이 발렌타인 데이를 만든 8할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와는 상관없이, 주는 사람의 마음이 제대로 담기기만 한다면, 발렌타인 데이도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상업주의 없이도. 삐까번쩍한 목걸이나 보석 없이도 말이다. 왜냐하면 주는 마음이 보석이니까. 

업데이트: 발렌타인 데이 전날과 당일, 두 준준이한테서 선물 아닌 선물을 받았다. 아래 사진들... ^^

성준이가 아빠 엄마를 사랑하는 이유: 아빠가 일하러 가니까, 차를 운전해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니까, 케이크를 만들어 주니까...ㅋㅋ

DJ의 하트 풍년 편지 꽂이...같은데, 정확한 용도는 잘 모르겠음.

성준이가 아빠한테 주는 초콜렛 선물. 하트에 이름 쓰는 것만 제가 했고, 나머지 작업은 다 엄마 몫.